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부인 멜라니아가 메모리얼 데이(현충일)인 6월25일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있는 맥헨리 요새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미국 국가가 울리는 동안 가슴에 손을 얹고 있다.
[칼럼] 막장 대선이 온다
황준범 워싱턴 틀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3일(현지시각) 대선에서 패배해도 불복할 걸로 본다는 얘기를 미국인으로부터 직접 들은 건 지난해 가을이다. 민주당이 ‘우크라이나 스캔들’ 관련해 트럼프 탄핵 조사 개시를 선언한 직후인 9월 말, 한 싱크탱크 인사는 “트럼프는 탄핵감이지만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서 부결될 것이다. 대선밖에 방법이 없는데, 문제는 트럼프가 대선에서 져도 승복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점이다. 탄핵이든 선거든 그를 백악관에서 끌어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이 말을 트럼프 싫어하는 사람의 냉소 정도로 받아들였지만, 이후 워싱턴에서 트럼프의 대선 불복 가능성에 대한 얘기는 끊이지 않았다.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공개적으로 이를 언급했고, 정치 평론가들은 “이에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지난 19일 트럼프의 <폭스 뉴스> 인터뷰는 개그처럼 여겨지던 얘기를 다큐멘터리 반열로 올려놨다. 그는 대선 결과를 인정하겠느냐는 진행자 크리스 월리스의 집요한 질문에 “지켜봐야 한다. ‘예스’다 ‘노’다 말하지 않겠다”고 확답을 피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국적으로 확대 도입되고 있는 우편투표를 두고 “선거 사기로 이어질 수 있다”며 밑자락도 깔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대선 불복 시나리오를 열심히 그려보고 있다. 트럼프가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플로리다 등 핵심 경합주에서 바이든에게 근소한 차이로 지는 것으로 나왔을 때, 밤새 침묵한 뒤 아침 트위터에 “불법 이민자들이 대거 투표에 참여했다”거나 “우편투표에 조작이 있다”고 주장한 뒤, 기자회견을 열어 불복을 선언하는 경우다. 여기에 공화당이 동조하면서 해당 주를 상대로 재검표를 요구하거나 소송을 걸 수 있다. 조지 부시와 앨 고어가 맞붙어 플로리다주 재검표 소송을 겪었던 2000년보다 훨씬 더 심각한 악몽에 빠져들 수 있다.
이번 미 대선이 악몽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또 다른 이유는, 우편투표 개표가 늦어지면서 선거 이튿날까지도 승자를 모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일부 선거구는 선거일 당일 우편 소인이 찍힌 것까지 인정한다. 지난달 뉴욕, 켄터키 등에서 치러진 의회 예비선거는 개표 완료까지 일주일 이상 걸렸다. 개표가 길어지는 동안, 트럼프와 바이든 지지층이 장외 세대결을 하며 혼란이 커질 수 있다.
미국 민주당의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메모리얼 데이(현충일)을 맞은 25일 부인 질과 함께 델라웨어주 뉴캐슬에 있는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헌화하고 있다.
네거티브 선거운동도 거세질 전망이다. 트럼프 캠프는 사실과 달리 바이든이 경찰 지원금 중단에 찬동한다고 주장하면서, 바이든이 집권하면 무법천지가 될 것이라는 취지의 3가지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예컨대, 경찰에 신고 전화를 하니 자동응답 메시지가 “경찰 지원금이 중단돼 전화를 받을 수 없다”며 살인 등 사건 종류를 번호로 누르라고 한 뒤 “예상 대기 시간은 약 5일”이라고 안내하는 내용이다. 사실을 왜곡하면서 불안과 분열을 조장하는 전략이다. 트럼프는 자신보다 3살 많은 바이든(77)의 정신건강을 대놓고 문제 삼으면서 “인지능력 검사를 해보자”고 비난하고 있다.
트럼프가 대선에 지고도 백악관에 계속 남아 있는 상황이 실제 일어날 가능성은 낮다. 공화당, 그리고 군대가 국민 다수의 선택을 무시하고 트럼프 편에 서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거짓말과 공포 마케팅 또한 지난 4년을 지켜봐온 미국인들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바이든을 노망든 노인으로 몰아가려는 전략도, 오히려 트럼프의 지지기반인 노인층의 이탈을 부르고 있다. 그럼에도 상식을 벗어난 일들이 버젓이 펼쳐지고 있다. 대선을 100일 앞둔 미국의 현실이다.
< 황준범 워싱턴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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