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포스트 코로나, 불안한 징조

 


중국과 유럽의 뿌옇던 하늘이 맑고 푸르게 변했다. 탁했던 강물과 도시의 하천은 몰라보게 맑아졌다. 코로나-19로 변하고 달라진 것들은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다. 한산한 거리, 문을 닫아걸고 텅빈 가게들, 공원조차 사람의 발걸음이 뜸해 쓸쓸했던 뒤안길에 동물들이 대신 살판나서 제 세상을 만난 것 같다는 지난 몇 개월

하지만, 도심엔 마스크를 쓰거나 혹은 쓰지 않은 사람들이 다시 북적이기 시작했고, 문을 연 식당들도 손님 발길이 돌아오고 있다. 트래픽이 사라졌던 도로의 뜸했던 차량들은 차츰 불어나 밀리는 시간대가 늘고 있다. 코로나 방역이 효과적으로 이뤄지면서 새 감염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자 세상은 단단히 쌓았던 벽을 차츰 허물기 시작해 하나 둘씩 예전으로 돌아가는 모양새다.

자연환경과 사회현상의 변화뿐 만이 아니었다. 우울증 환자가 늘고 폐소공포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소식을 들으면, 사람들의 심성과 정신건강에도 심각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볼 수 있다. 바이러스 공포와 사람 접촉에 대한 불신, 생계를 위한 일과 수고의 한계와 무력감,

집안에 쳐박혀 인터넷과 스마트폰, TV에 의지해 살게 되면서 사람들은 뜻하지 않게 비대면의 일상화라는 전혀 달라진 생활방식을 강요당해야 했다. 오프라인 삶의 격리, 사람들과의 관계단절, 활동제약에 따른 불안과 강박은 하루하루 반복되는 소소한 일상의 의미와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했다.

하지만 적자생존의 뛰어난 적응력을 가진 인간이 변화된 환경에 패배로만 머물러 있을 리는 없다. 상상 이상의 코로나 재앙이 긍정적인 또는 부정적인 새로운 삶의 방편들을 모색하게 만들었으니, 앞으로의 세상, 인간의 사고와 삶의 모습은 어떻든 바뀔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면, 이른바 포스트 코로나시대는 어떤 세상이 도래할 것인가. 변화되고 달라진 사람들은 단절을 딛고 일어나 어떤 멋지고 정감있는 관계를 만들어 갈까. 생활은 얼마나 절도있는 편리와 안락을 추구해 나갈 것인가. 세상을 좀 더 살기 좋고 아름답고 안전하며 행복한 곳으로 만들어 가게 될까?


중세의 페스트 이후 전염병은 거의 방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인간의 오만에 코로나 바이러스는 보란 듯 핵주먹을 날렸다.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냄새도 맡을 수 없는 생물과 무생물의 중간적 존재라는 괴물, 전자현미경에 드러낸 모습은 꽃송이로 위장한 듯 신비스럽기까지 한 미물이 무려 17백만 명을 병고에 몰아넣고, 70만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내고있는 상태다. 전 지구적 차단과 격리, 나아가 마비를 부른 이 병원체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의 이기와 오만, 무능과 무력을 절감시켜 주었다.

여기까지 이른데는 사람들의 무분별한 환경파괴와 대자연의 생태계 질서, 생명의 섭리를 무너뜨린 이기적이고 방만한 행태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진단한다. 심상치 않은 기후변화의 징후들, 지구전체에 퍼진 미세플라스틱의 폐해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모르는 게 아니요 잘 알면서도 고치고 멈추지 못하는 인간의 오기와 타락에 준엄한 채찍을 들이댄 게 바로 이 엄청난 코로나 재앙이라는데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코로나 사태 속에 겪는 불편과 자책이 그런 되새김과 교훈을 주는 것은 아마도 창조주의 선한 의도일지 모른다. 너희들로 인해 아프고 병든 지구를 보라, 이기와 교만에 빠져 허우적대는 너희 인간세상의 타락과 사악함의 끝은 어디냐생육하고 번성하며 다스리라고 당부했던 그 분의 배신감이 얼마나 크겠는가. 안타까운 눈물을 삼키며 사랑의 회초리를 든 부모의 심정에 다름 아닐 것이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그런 성찰 위에 긍정적인 새로움으로 변화될 것이라는 자신이 없어서 우울하다. 하늘과 바다가 앞으로도 계속 깨끗해지리라는 보장이 없다. 탐욕스럽던 사람들의 삶이 절제와 청렴으로 바뀔 조짐도 발견할 수 없다. 이전과 달라져 사람들의 악독과 패악이 선하고 착하고 진실된 모습들로 변하리라는 전망도 흐려서 암담하다.

코로나 와중에 차별과 학대의 뉴스들은 더 많아졌다. 지구촌 곳곳에서 서로 할퀴며 죽기살기 극한대립의 행태는 더 심화되어 가는 듯하다. 감염을 방치하던 자들이 백신 선점 경쟁에는 눈에 불을 켠다. 함께 고통과 사랑을 나누자 오염을 줄여보자 지구를 살리자는 외침은 공허하다. 흐뭇한 미담보다 가슴 아픈 소식들이 더 많이 들린다.

하긴, 선악과를 먹은 이후 수많은 단죄와 심판에도 다시 죄악의 늪으로 돌아가곤 하는 인간의 죄성이 어디로 가겠는가. 삯꾼 성직자들이 참회는커녕 오히려 때를 만난 듯 혹세무민하는 세태가 정말 세상 종말의 때가 아닌지 불안하게 한다. 그래서 다신 생각하기도 싫고 욕먹을 망발인지도 모르지만,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2 3의 코로나 사태는 또 오고, 오고야 말 것이라는.

< 김종천 편집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