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23일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잠정합의안승인이 최종 부결된 뒤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회의 잠정 합의안이 23일 민주노총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부결됐다. ‘부결 때 사퇴라는 배수진을 치고 합의안을 승인받으려 했던 김명환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지도부는 사퇴 절차를 밟게 됐다. 올 연말 차기 지도부 선거가 예정돼 있는 민주노총은 당분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움직일 전망이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제71차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어, 지난달 말 나온 노사정 잠정 합의안 승인 안건을 상정해 온라인 찬반 투표를 벌였다. 이번 합의안에는 노사가 고용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고용보험 사각지대 로드맵을 연내 마련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개표 결과를 보면, 재적 대의원 1479명 가운데 1311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499(38.3%)과 반대 805(61.7%)으로 합의안이 부결됐다.

앞서 주요 산별·지역노조 위원장 등 다수 중앙집행위원들이 잠정 합의안에 해고금지등이 명시돼 있지 않다며 폐기를 요구하고 대의원 800여명이 반대 성명을 내면서, 부결은 어느 정도 예견됐다. 하지만 이번 노사정 대화는 민주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를 거부하며 원포인트 협의 틀을 요구해 시작된 것이었던 만큼, 스스로 대화의 결과물을 걷어찼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 20일 김 위원장은 민주노총 위에 군림하는 정파 상층부가 아니라 대의원 동지들의 결정을 요청드린다는 유튜브 연설에 이어, 대의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승인을 호소했지만 끝내 이들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김명환 위원장은 24일 오후 2시 민주노총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 뜻을 밝힐 예정이다. < 김양진 선담은 기자 >

사회적 대화 다시 걷어찬 민주노총고용위기 대응 난망

김명환 위원장이 23일 노사정 합의안 온라인 찬반 투표가 부결된 뒤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

23일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코로나19 노사정 잠정합의안승인이 부결됨에 따라, 민주노총은 앞으로 정부·사용자와 대화아닌 투쟁으로 코로나19로 위기에 빠진 노동자들을 어떻게보호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숙제에 맞닥뜨리게 됐다. 연말로 예정된 새 지도부 선거에서 강경파가 우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크지만, 우선은 내홍을 추스르는 일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민주노총은 지난 4월 정부와 경영계에 코로나19 고용 위기와 관련한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제안했다. 과거와는 차별화된 사회적 대화의 결실을 맺고자 했던 청와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 회의가 지난 5월 구성됐다. 한달 반 가까이 공전을 거듭하던 노사정 대표자 회의는 지난달 말 어렵게 전국민 고용보험 확대, 고용 유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잠정합의안을 마련했지만, 이는 민주노총 내부의 반발에 부딪쳤다. 산하 지역·산별 노조 대표자로 구성된 중앙집행위원회의 합의안 폐기 요구 등에 맞서 김명환 위원장은 거취를 걸고 임시 대의원대회에서 찬반 투표를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22년 만에 민주노총까지 참여한 노사정 합의가 물 건너간 만큼 정부가 더는 민주노총의 노정교섭 요구에 화답할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진단이 나온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정부 입장에선 민주노총의 요구에 따라 공식 사회적 대화 기구(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두고 별도의 교섭 틀에 참여한 것인데, 민주노총 스스로 합의를 포기한 만큼 정부가 민주노총의 편의에 맞춰주는 일방적인 관계는 더 이상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대화의 끈이 사라진 민주노총으로선, 코로나19가 장기화할 경우 닥칠 고용위기에 대응할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은 고용 위기에 놓인 미조직 노동자들을 보호할 방안은 고용보험 확대 적용이나 업종 전환을 위한 직업훈련 등의 적극적 노동정책의 시행인데, 이는 투쟁을 통해 돌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명환 위원장이 24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사퇴할 예정이어서 민주노총 내부의 진통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사퇴하면 새 위원장 선거가 예정된 연말까지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들어서게 된다. 투표 결과가 압도적 부결로 볼 수 없는데다, 이번 사회적 합의 과정에서 정파·조직 간 불필요한 갈등이 고스란히 대중에 노출된 상황이어서, 비대위 체제 이후 차기 위원장 선거 과정에서도 내분은 계속될 수 있다.

이미 전국민 고용보험 로드맵 수립, 특별고용유지지원금 확대 등 노사정 합의안 내용 일부의 실행에 나선 정부는 다른 내용과 관련한 향후 계획도 조만간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방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별도의 협약식 행사 없이 정세균 국무총리나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 등이 민주노총의 최종 불참 결정과 노사정 합의안의 추진 등에 대한 메시지를 발표할 것으로 전해졌다. < 선담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