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동훈 검사장 수사가 계속돼야 하는 이유
갓 시작한 수사 중단권고 비상식적, 공모혐의 가려야
양창수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열린 ‘검·언 유착' 사건 수사심의위 주재를 위해 청사로 들어가며 손가락으로 ‘V’자를 그려보이고 있다.
대검찰청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지난 24일 ‘검·언 유착’ 사건 수사에 대해 ‘이동재 전 <채널에이(A)> 기자는 계속 수사·기소하고 한동훈 검사장은 수사 중단·불기소하라’는 의견을 내놓은 것은 곱씹어볼수록 설득력이 떨어진다.
우선 한동훈 검사장 관련 수사는 대검과 수사팀 갈등으로 한동안 진척이 없다가 이제 막 시작됐는데 이를 중단하라고 한 것부터가 상식적이지 않다. ‘수사 계속 여부’ 심의는 수사가 어느 정도 진행돼 판단 근거가 생겨야 가능하다. 그러나 한 검사장은 수차례 소환 통보에 불응하다가 수사심의위가 열리기 불과 사흘 전에야 첫 조사를 받았다. 수사팀은 이 1차 조사마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지난달 16일 압수한 한 검사장 휴대전화는 비밀번호 해제 비협조로 아직 포렌식이 진행되지 못했다. 이 사건의 성격상 휴대전화 포렌식은 수사의 기초다. 이조차 막혀 있는 상황에서 한 검사장 수사를 중단하라는 건 사건의 실체도 파악하지 말고 덮으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수사심의위가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에 대해 정반대 처리 의견을 낸 것은 그 자체로도 모순된다. 둘 사이에는 여러 차례 접촉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공모를 했는지, 아니면 사건과 관련 없는 만남이었는지를 확인하는 건 이 전 기자의 혐의를 확정하는 데도 필수다. 이들에 대한 수사를 분리할 수 없다는 얘기다. 더구나 이 전 기자는 휴대전화를 초기화하는 등 이미 증거를 광범위하게 인멸한 상태다.
한 검사장은 수사심의위에서 이번 수사가 ‘권력이 반대하는 수사를 진행한 데 대한 보복’이라는 취지로 항변했다고 한다. 검사라면 이런 ‘정치적 프레임’ 뒤에 숨을 게 아니라, 먼저 수사에 협조해 사실관계를 밝힘으로써 무죄를 입증하는 게 옳은 태도다. 한 검사장이 사건 초기부터 떳떳하게 수사와 조사에 임했으면 윤석열 검찰총장의 ‘측근 감싸기’ 논란도 이렇게 불거지지 않았을 것이다.
수사심의위의 판단은 이처럼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은데도 수사 중단과 불기소 의견의 구체적 근거와 논리를 제시하지 않았다. 위원 구성과 논의 내용도 여전히 ‘깜깜이’다. 이런 수사심의위가 한 줄짜리 심의 의견으로 주요 사건의 향방에 영향을 미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대검과 수사팀이 맞부딪친 이번 사건을 대검 주도의 수사심의위에서 다룬 것도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수사팀은 미진한 부분에 대한 수사를 신속히 진행하고 한 검사장도 수사에 협조하기 바란다. 일단 수사부터 제대로 하고 사실관계를 명확히 한 뒤 처리 방향을 정하는 게 순리다. 수사팀이 <채널에이>를 통해 이 전 기자의 휴대전화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당사자에게 직접 영장을 제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원이 24일 압수수색 취소 결정을 내렸는데, 수사팀은 수사 절차상 흠결을 남기지 않는 데도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검언 공모’ 입증 꼬였지만…중앙지검 ‘한동훈 추가 수사’ 의지
수사심의위 ‘불기소 권고’에 수사팀 “한 검사장 비협조로 지연”
‘검·언 유착’ 의혹 수사가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사심의위)의 한동훈 검사장(법무연수원 연구위원)에 대한 수사 중단 및 불기소 권고로 다시 기로에 놓였다. 이동재 전 <채널에이(A)> 기자 구속영장 발부를 동력 삼아 한 검사장과의 ‘공모’ 여부 입증에 수사력을 집중하려 했던 수사팀으로서는 적지 않은 부담을 안게 된 것이다. 한 검사장과 이 전 기자 쪽은 수사심의위 결과로 ‘검-언 유착 수사가 무리했다는 것이 드러났다’는 입장이지만, 수사팀은 대검과의 갈등과 한 검사장의 비협조로 상당 기간 중단됐다가 재개된 수사인 만큼 이번 권고와 별개로 추가 수사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수사팀 “추가 수사 필요”…한동훈 “보복 수사”
이번 수사의 핵심은 이철 전 밸류인베스트코리아 대표에 대한 협박성 취재의 ‘주체’가 누구냐다. 이 전 기자의 단독 행위인지, 한 검사장과 공모한 결과인지가 밝혀져야 하는 셈이다. 이 전 기자가 이 전 대표 대리인을 만나 한 검사장의 말이라 암시하며 녹취록을 보여주고, 후배 기자에게 “한 검사장이 ‘나를 팔아’라고 했다”는 진술 등이 나왔지만 이는 ‘직접 증거’가 아닌 모두 ‘전언’ 형태였다. 한 검사장과 이 전 기자가 직접 나눈 대화였던 ‘2월13일 부산고검 대화록’에 관심이 쏠렸던 이유다.
그러나 대화록 전문이 공개된 뒤 법조계에서는 ‘공모로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이 전 기자가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여권 인사들이 연루된 의혹을 취재한다고 하자 한 검사장은 “그건 해볼 만하지”라거나 “그런 거 하다가 한두 개 걸리면 되지”라는 등의 발언을 한다. 동시에 한 검사장은 “유시민씨가 어디서 뭘 했는지 나는 모른다. 관심 없다”고도 했다. 한 검사장이 이 전 기자의 취재 계획에 기계적으로 호응한 것이지, 구체적인 반응은 없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저 두 문장만으로는 한 검사장과의 공모가 있었는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수사심의위에서 다른 근거가 없었다면 위원들을 설득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짚었다.
서울중앙지검은 수사가 미진한 상황이 오히려 추가 수사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취지로 수사심의위에서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4일 한 검사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된 뒤 대검찰청과 서울중앙지검 사이의 전문수사자문단 구성을 두고 갈등이 이어지고, 이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지휘·감독을 배제하는 수사지휘를 내린 뒤 윤 총장이 이를 마지못해 수용하는 과정에서 한달 정도의 시간이 허비됐기 때문에, 핵심 피의자인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가 충분히 이뤄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수사팀은 수사심의위의 의결 결과가 알려진 뒤 “한 검사장으로부터 압수한 휴대전화 포렌식에 착수하지 못하고 피의자 1회 조사도 완료하지 못한 상황을 고려해 ‘수사 계속’ 의견을 개진했음에도 수사심의위가 수사 중단 및 불기소를 의결한 점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이 전 기자가 구속되고 한 검사장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하는 국면에서 수사 중단을 권고해버린 것이어서 수사팀 입장에서는 부당하다고 느낄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 검사장은 수사심의위에서 “이번 수사가 ‘권력에 반대한 수사를 진행한 자신에 대한 보복’이라는 취지로 위원들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검사장은 지난해 7월부터 지난 1월까지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을 지내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관련 수사와 유재수 감찰무마 의혹 수사 등을 지휘했다. 한 검사장은 수사심의위의 질의 과정에서 “저는 이 위원회가 저를 불기소하라는 결정을 하더라도, 법무부 장관과 수사팀이 저를 구속하거나 기소하려 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이 광풍의 2020년 7월을 나중에 되돌아볼 때 대한민국의 사법시스템 중 한곳만은 상식과 정의의 편에 서 있다는 기록을 남겨주시면, 억울하게 감옥에 가거나 공직에서 쫓겨나더라도 끝까지 담담하게 이겨내겠다”고 호소했다고 한다.
공모 여부 수사 계속 ‘촉각’
서울중앙지검은 “지금까지의 수사 내용과 법원의 이 전 기자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취지, 수사심의위 심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앞으로의 수사 및 처리 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 김동현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피의자가 특정한 취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검찰 고위직과 연결하여 피해자를 협박하려 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자료들이 있다”며 이 전 기자 구속영장을 발부한 만큼, ‘검찰 고위직과의 연결’ 여부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형사31단독 김찬년 판사는 24일 검찰이 휴대전화를 위법하게 압수수색했다는 이 전 기자의 주장을 일부 인용했다. 압수수색 영장 집행 전에 이 전 기자 쪽에 일시와 장소 등을 통지하지 않았고, 포렌식 과정에서도 이 전 기자 쪽의 영장 제시 요구를 거부했다는 이유였다. 다만 검찰이 압수한 이 전 기자의 휴대전화와 노트북은 이미 초기화가 완료돼 유의미한 증거가 들어있지는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은 “기본적으로 압수가 적법하게 이뤄졌다는 입장이다. 법원의 결정 취지를 검토하고 반환 및 불복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임재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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