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28일 중미 온두라스에서 쿠데타가 발생, 마누엘 셀러야 대통령이 코스타리카로 추방되는 정변이 일어났다. 세라야가 권좌에서 쫓겨난 배경을 보면 “그래도 싸다”는 말이 이해됐다. 그는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장기집권을 겨냥한 개헌을 추진, 국민투표를 강행하려다 투표일 새벽 전격적으로 권좌에서 쫓겨났다.
이 경우 어느 쪽이 옳고 정당한 것일까. 자신의 집권연장을 위해 주변의 압도적 반대에도 귀를 막고 개헌을 밀어부친 게 잘 한 일인가. 대통령의 일방독주를 막으려 무력을 써서라도 몰아낸 쿠데타 세력이 정당한가?
그로부터 20일 뒤 제헌절인 2009년 7월17일, 토론토 한인회에 유례없는 정변이 일어났다. 회장이 불법 무효라던 임시총회가 회관에 몰래 잠입한 이들에 의해 개최돼 회장과 이사회를 즉각 업무정지 시키고 임시운영위원회라는 정관에도 없는 비상기구가 설치됐다. ‘임운위’는 회장단과 이사회는 물론 선관위 역할도 하는 무소불위의 기구였다. 한인회에 계엄령이 선포된 것이다.
차기회장 선거를 놓고 여러 잡음과 ‘미운 털’이 박혔다지만, 그렇다고 멀쩡한 ‘법적기구’를 일거에 와해시켜 버린 초법적 행동을 ‘속시원하고 멋지다’고 박수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 ‘초법행동’에 나선 이들 가운데는 한인사회에서 명망있다고 알려진 이들이 포함됐기에 더욱 아연했을 수 밖에-.
세계 각지 한인단체들이 내분으로 낯뜨거운 것은 알려진 일이로되, 토론토에서 또 다른 희한하고 괴이쩍은 사례를 만들어 기록에 남겼으니 동조자나 반대자나 모두 개운할 리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실협에서 마침내 사단이 벌어져 동포사회에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왜 우리 한인들은 그렇게 밖에 못하나” 하는 자조의 소리들이 새어나온다. 참으로 실망스럽고 한심하다는 실소와 자괴의 탄식들이다.
짚어보면 양비(兩非)일 수밖에 없다, 최근의 몇몇 양상만을 보자. 선거에 후보를 내지않아 단독을 허용해 놓고는 당선은 못마땅해 했다. 총회인준 요구에 당당히 임했으면 될 일을 감정만 돋웠다. 이런저런 시비에 아량으로 대화의 성의를 보일만도 했다. 총회에서 적법하게 의결했으면 물리력이 아닌, 적법하게 사임과 퇴거를 시키면 됐다. 서로 감정을 접고 대승적으로 한발짝씩 물러날 여지도 찾아야 했다. 밤낮 먹고살기에 매달리는 수천 회원들의 처지부터 최우선으로 헤아려야 했다.
그런데 ‘너 죽고 나 살자’는 적개심만 나도는 전쟁터다. 상대방에 귀를 막고 감정적인 일방 독주만을 외치며 충돌을 향해 마주 달렸다. 마침내 한바탕 ‘코피가 터진 뒤’ 실협은 이제 마비와 분열, 그리고 와해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어느 쪽이 잘했고 못했다거나, 정당과 불법을 따지는 것은 전체 실협 회원들의 몫일 것이다. 그러나 설령 법관의 판단에 의지한다 할지라도 그 것은 지금 시점에서 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한시라도 급히 민주적 상궤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사태는 우리가 과연 민주 질서의 틀 안에서 살고 있는지 조차 의구심을 낳았고, 회원 분란을 자초했으며, 한인사회에 실망을 안긴 큰 말썽이기 때문이다.
잘했고 정당하다 해서 절차와 방법이 폭력적·독선적이어서는 평가를 받을 수 없다. 비록 잘 못했어도 피고인이 존중받고 절차와 방법에 정당성을 두는 게 민주주의다. 정해진 규칙과 질서를 지키며 순리에 따름이 대명제다. 과연 작금의 실협 사태는 질서와 절차와 상식과 순리가 통용되고 있는가, 모두가 자문해 볼 일이다. ‘비정상’을 바로 잡겠다며 결과적으로 비정상적 방법에 의존한다면, 그야말로 ‘비정상’이며 ‘비민주’ 가 아닌가.
실협은 일부의 소유가 아니다. 1천여 회원이 있고, 그 뒤에는 10만여 한인 동포들이 있다. 양측은 어서 속히 감정을 접고 대화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세상에 승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걸음씩 물러나 회원과 동포들의 걱정과 자존심을 헤아려 달래주어야 한다. 속은 상할 테지만, 상식과 순리로 돌아가야 뒷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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