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창원의 프로파일링…정치와 종교의 잘못된 만남 ]
전광훈 손잡고 힘 키운 보수세력, ‘공통의 이익’ 위해 서로 이용
대형교회 행사에 여야 의원들 대거…정치·종교 유착 이젠 바꿔야
지난해 3월20일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오른쪽)가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서 열린 원로들과의 면담에 참석해 전광훈 대표회장과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0년 8월15일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기이하고 불행한 광복절 중 하나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전광훈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인물로 대표되는 일부 개신교 세력과 김문수·민경욱·김진태·차명진 등 전직 보수정당 국회의원은 물론 극우 성향 보수단체·유튜버·논객들이 총출동하고 전국에서 전세버스 등을 이용해 몰려든 보수 성향 시민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채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무차별적으로 전파했기 때문이다.
그 파장과 후유증은 엄청나다. 대구 신천지, 서울 이태원 집단감염 위기를 겨우 이겨내고 조심스럽게 일상을 찾아나가던 대한민국이 제 기능의 상당 부분을 멈추며 얼어붙어 버렸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격상으로 노래방·피시방 등 ‘고위험군’ 업종의 영업이 금지되고 결혼식을 포함한 모든 50인 이상 실내 모임도 금지됐다. 각급 학교의 2학기 등교 등 학사 일정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일부 언론에서 “미꾸라지 한 마리(전광훈)가 대한민국을 흙탕물로 만들었다”는 비판적 표현을 하기도 했다.
전광훈 키운 황교안과 보수정당
사실 전광훈이라는 사람 혼자서는 이렇게 나라를 뒤흔들 영향력이나 역량, 업적, 지위 등을 하나도 갖추지 않았다. 오히려 학력위조 논란, 공개적인 성희롱·성차별 발언 등으로 대중적인 조롱과 희화화 대상에 불과했다. 그러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이명박 장로를 찍지 않으면 생명책에서 지우겠다”는 발언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 일선에 뛰어들었고, 정치와 종교를 연결하는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후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돼 유죄판결을 받았고,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장 자리를 둘러싼 다툼으로 민형사상 소송을 벌였다.
대한민국에는 정치와 권력의 힘을 빌려 교세를 확장하려는 대형교회 중심의 개신교 세력과, 종교의 힘과 영향력을 빌려 지지율을 높이고 선거에 승리하려던 정치세력이 있었다. 전광훈은 그 사이를 중재하고 연결하면 커다란 이익과 영향력이 생긴다는 점을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보수 정치세력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장기간 집권하면서 ‘북한의 위협’, ‘빨갱이’, ‘종북 좌파 세력의 준동’ 등 색깔론 ‘매카시즘’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위기를 탈출해왔다. 대형교회 중심의 보수 개신교 세력 역시 ‘신앙을 빙자해 돈을 번다’, ‘교회를 사유화하고 세습한다’는 비판과 교회 내 성폭력 의혹 등이 불거질 때마다 ‘종북 좌파의 음모’, ‘반기독교 세력의 공격’ 등을 내세우며 위기를 탈출해왔다. 두 세력 간 ‘공통의 이익’과 ‘공동의 적’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를 필요로 했다.
보수 개신교 세력은 최근에는 성소수자(동성애), 이슬람 출신 외국인, 차별금지법이라는 3가지 공격 목표를 추가하며 교인들을 선동해왔다. 종교인 과세 폐지라는 현실적 이익은 밑자락에 깔았다. 그에 부합해 ‘교회의 도구’가 되겠다고 손을 내민 사람이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였다. 황 대표는 2019년 3월20일 한기총을 찾아가 전광훈을 만난 자리에서 전씨가 “총선에서 자유한국당이 200석을 하면 이 나라를 바로 세우고 제2의 건국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는 정치 개입 발언을 하는데도 흡족한 표정으로 듣고만 있었다. 이후 광화문에서 열린 반정부 집회 단상에 전광훈, 황교안이 함께 올라 손을 잡고 서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모습이 수차례 언론과 방송에 공개됐다. 보수 기독교계 대표자로서 공식적 지위와 정치적 영향력을 갈구하던 전광훈에게 날개가 달린 것이다.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오른쪽 둘째)가 지난해 11월20일 청와대 분수대 인근에서 열린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주최 집회를 찾아 총괄대표인 전광훈 목사(오른쪽)의 연설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전광훈은 2019년 청와대 앞 집회에서 “지금 대한민국은요, 문재인은 벌써 하나님이 폐기처분 했어요… 대한민국은 누구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냐. 전광훈 목사 중심으로 돌아가게 돼 있어. 기분 나빠도 할 수 없다. … 나는 하나님 보좌를 딱 잡고 살아. 하나님, 꼼짝 마. 하나님,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 내가 이렇게 하나님하고 친하단 말이야. 친해”라는 신성모독 발언까지 거침없이 내뱉는 지경에 이르렀다. 급기야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감염 위협을 막으려는 당국의 노력마저 비웃으며 “야외 집회 현장에서는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는다. … 코로나19에 걸려도 애국이다. 걸렸던 병도 낫는다” 등 망언을 계속하며 신도들을 현혹하고 가짜뉴스를 전파했다. ‘문재인 타도’, ‘민주당 공격’이라는 공통의 목적에 경도된 보수정당은 전광훈과 극우 개신교 세력과 거리를 벌리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정부의 방역 노력도 폄하하다 결과적으로 전광훈의 엉터리 주장에 힘을 보태는 역할을 했다. 급기야 ‘2020년 8월15일 코로나19 집단감염 및 전파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요승 라스푸틴’은 부패한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몰락을 급속히 앞당긴 인물로 꼽힌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나 학교에서도 태도불량 등으로 쫓겨난 그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음주, 폭력, 절도, 성범죄 등 각종 문란한 생활을 일삼아 ‘방탕한 사람’이라는 뜻의 ‘라스푸틴’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신의 계시를 받았다면서 아픈 사람들에게 은밀한 치료를 하고 다녔는데 효험이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러시아 황실에서 찾게 되었다. 혈우병 증상으로 괴로워하던 황태자가 라스푸틴을 만난 이후 통증이 완화되자 알렉산드라 황후의 절대적인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 영향력을 이용해 세금으로 사리사욕을 채우고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하는 등 국정을 농단하게 된다. 결국 민심이 이반해 제국은 급격히 몰락하게 되었다.
진보정치에도 손 뻗는 보수 개신교
1960~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정경유착과 개신교 교단 문란화 배경에는 최태민 목사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순사였던 그는 해방 후 불교청년회 회장 및 승려가 되었다가 스스로 불교·기독교·천도교를 종합하여 영세교라는 종교를 창시해 사이비 교주가 된다. 그러다가 어느새 기독교 목사를 자처하고 라스푸틴과 유사한 ‘신비한 치유능력’을 내세워 당시 모친을 잃은 슬픔에 빠져 있던 박정희 대통령 가족, 특히 둘째 딸 박근혜에게 접근해 신임을 얻는다. 그는 그 영향력을 내세워 대한구국선교회를 설립해 개신교계를 친정권 성향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하고 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 등을 세우고 총재 지위에 올라 각종 인사와 이권에 개입하며 막대한 부정축재를 했다. 30여년 뒤 최태민의 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은 다시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 역할을 하며 국정농단을 일삼다 보수정권의 몰락을 급속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라스푸틴과 최태민, 최순실은 집권세력의 환심을 산 후 ‘비선실세’ 역할을 하며 국정을 농단했다면, 전광훈은 야당 권력과 야합해 이익을 추구하다 사회불안과 무질서를 조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야당 권력이 부와 권력을 오래 독점해온 전통적인 대한민국 보수세력을 대표하고 있어 역사적 맥락에서 보자면 궤를 같이한다.
과거에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등 진보적 종교단체는 진보적인 정당들과 가까웠고, 보수 개신교·가톨릭·불교 단체와 성직자는 보수정당과 가까운 양분 구도가 명확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권의 탄핵과 보수 정치의 몰락 이후 이런 구분은 많이 변하고 불명확해졌다. 전광훈과 한기총 등 극우적 개신교 단체와 성직자들은 한편으로는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 등 친박 성향의 보수 정치인들과 연대 및 협력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독자적인 기독교 정당을 창당해 활동을 펼쳐 나갔다. 반면 다수의 대형교회 목사 등 보수적인 개신교 목회자들은 여야 및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정당과 정치인들과 교분을 넓히며 종교인 과세 반대, 차별금지법 입법 저지 등 정치활동을 전개해왔다.
국회에서 대형교회 목사들이 주최하는 기도회 등에 유력 여야 국회의원들이 대거 참석하고, 유명 대형교회의 주요 행사와 예배에 여야 유력 의원들이 대거 참석하는 풍경은 이미 일상이 되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정을 추진하는 등 민주당의 대표 정책 중 하나였던 차별금지법에 대해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공개적인 반대 의사를 표명하거나, 보수적인 인사들을 초청해 반대 토론회를 여는 현상이 나타난 배경에도 이러한 보수 개신교계의 ‘민주당 공략’이 있음을 어렵지 않게 추정할 수 있다.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종교인 과세 입법에도 적극적 혹은 소극적으로 반대해왔고 그 결과 원안에서 상당히 후퇴한 입법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국립공원 입장료, 사찰 문화재 지정 등 국회를 상대로 한 민원이 많은 것은 불교도 마찬가지다. 개신교의 정치력에 밀려 사찰 이름을 딴 지하철역 명칭이 변경될 위기에 처하는 등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서도 정치권력과 연대와 협력이 필요했다. 천주교, 원불교 등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으로는 유사한 상황에서 유사한 행태를 보였다. 국회에 왜 그리 종교인들이 자주, 많이 드나들고 종교행사가 왜 그리 많은지 답을 찾다 보면 도달하는 결론이다. 작고한 유력 정치인의 추모식 등에는 고인의 종교와 상관없이 3~4개 종교의식이 번갈아 진행되는 참으로 기이한 모습도 종종 목격된다.
정치에 종교는 ‘행사장’이자 ‘표밭’
각종 선거 때마다 각 정당과 후보자들은 거의 모든 주요 종교시설을 찾아 종교의식에 참가하고 예를 올린다. 이미 보도되었지만, 주류 기독교계가 이단으로 지정한 ‘신천지’ 행사에 국회의원들이 축사나 축전 등을 보내는 일까지 발생했다. 신도 수가 많고 영향력이 크다면 이단도 가리지 않는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20대 국회에서 4년간 의정활동을 하면서 발견한 사실 하나는 대한민국 정치에서 종교는 결코 신앙과 믿음의 영역이 아니라 표와 지지를 얻는 ‘행사장’이자 ‘표밭’이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러한 ‘종교적 모럴해저드’가 박근혜와 최태민·최순실, 황교안과 전광훈 같은 ‘정치와 종교 간의 잘못된 만남’의 환경적 요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정교분리는 현대 민주국가의 필수 요건 중 하나다. 원시사회의 제정일치, 중세시대의 신성국가 등 정치와 종교가 섞이고 합칠 때 예외 없이 양쪽 모두 썩고 타락해 멸망에 이르렀다. 정치인 개인이 어떤 종교, 어떤 신앙을 가지든 그 자유는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공적 영역인 정치가 특정 종교단체나 종교인(들)의 영향을 받고 그들의 이익을 위해 활용된다면 그 자체로 이익충돌이며 부정부패다.
반대로, 오직 신과 교리에 바탕해 영원의 진리와 평화를 추구해야 할 종교가 현실 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개입하고, 편을 든다면 그 자체로 구도와 구원, 신앙의 순수성을 잃은 타락이다. 라스푸틴과 최태민, 최순실 그리고 전광훈의 예에서 보듯 정치와 종교가 야합하면 결국 양쪽 모두가 타락해 정치는 명분과 공정성 등 대의를 잃게 되고 종교는 믿음과 철학 그리고 구원을 저버리게 된다. 무엇보다 나라는 혼란스럽게 되고 국민은 고통을 받게 된다. 정치와 종교, 이제 이별할 때가 되었다.
▶필자= 표창원: 전직 국회의원이자 ‘범죄 프로파일러’인 표창원 박사가 의원으로서 보고 듣고 겪은 사실과 언론과 정부, 대중 등 정치 환경, 정치인 언행의 동기와 의도 등을 종합·분석해 독자들에게 보고한다. 한국 정치의 병리현상을 해부하고, 문제의 원인을 추적해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국민을 위한 국회와 정치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염원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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