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뇌는 양육·공감, 남자 뇌는 사냥·논리시대착오적인 뇌 설명 눈총

최근엔 성별 구분 없이 뒤섞인 상태 강조한 모자이크 뇌개념으로 진전

 

여자의 뇌는 양육을 잘하기 위해 공감과 의사소통에 더 적합하게 진화해왔고, 남자의 뇌는 사냥을 잘하기 위해 논리나 체계를 이해하는 데 더 적합하게 진화해왔다.’ ‘아빠의 공감 및 소통 능력이 부족하면 아빠와 자녀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초래될 수 있다. 따라서 아빠는 엄마에게 공감과 소통 방법을 배워야 한다.’

지난 4월 말 교육부는 아버지를 위한 자녀 교육 가이드라는 주제의 카드 뉴스 이미지를 공식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올렸다. 해당 카드 뉴스는 아버지를 돕는 실질적인 지침을 주기보다 아버지가 자녀를 교육하며 어려움을 겪는 이유를 남녀의 공감 및 의사소통 능력의 차이에서 찾았다. 그리고 이러한 남녀 차이가 뇌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설명했다. 여성과 남성은 정말 다른 뇌를 가지고 태어날까? 그러한 뇌의 차이가 여성과 남성의 능력 및 성향 차이를 결정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민 라즈나한 연구팀의 논문에 수록된 이미지. 22~35살 남녀 488명씩의 뇌를 분석해 하나의 뇌 표면과 단면으로 그려낸 그림이다. 윗줄은 좌뇌와 우뇌의 표면이고, 아랫줄은 각각 좌뇌와 우뇌의 단면이며 좌와 우는 세로축을 중심으로 대칭된다. 파란색의 회백질 영역에서는 통상 여성이 남성보다 부피가 크게 나타나며 주황색 영역은 반대로 남성이 여성보다 부피가 더 크게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나의 뇌 이미지에 여성의 뇌와 남성의 뇌에서 상대적으로 회백질이 발달한 부위를 함께 표시함으로써 남녀의 뇌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해부학적 차이는 남녀의 능력 차이를 설명하는 원인이기보다 성별에 따라 다르게 외부의 영향을 받은 결과일 수 있다. 출처 펍메드(PubMed, https://doi.org/10.1073/pnas.1919091117)

 

남성의 뇌가 여성의 뇌보다 우월할까

여성의 뇌와 남성의 뇌는 크기부터 달라 보인다. 남성의 뇌가 여성의 뇌보다 클 확률은 84%이고 여성의 뇌가 남성의 뇌보다 클 확률은 16%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남녀 집단의 평균 차이를 보여주는 수치일 뿐이다. 어떤 사람의 성별 정보만으로 그 사람의 뇌 크기를 맞힐 수 없으며 반대로 뇌 크기만 보고 뇌 주인의 성별을 가릴 수 없다. 남성이 여성보다 평균적으로 키가 크지만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보다 키가 크지는 않듯이 말이다. 실제로 남녀 뇌의 크기가 비슷할 확률은 48%나 된다.

남녀 뇌의 크기 차이를 중요하게 다루는 이유는 뇌가 클수록 지능과 같은 특정 능력이 우월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성의 뇌가 여성의 뇌보다 대체로 더 크다는 것은 남성이 여성보다 대체로 더 똑똑하다는 것을 뜻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2018년 영국 에든버러대학교 심리학과의 스튜어트 리치 교수 연구팀은 영국 바이오뱅크가 보유한 여성 2750, 남성 2466명의 뇌 자기공명영상(MRI) 데이터로 남녀 뇌의 차이를 분석했다. 그 결과, 뇌의 전체 크기는 남성이 여성보다 컸으나 대뇌피질(대뇌 표면 신경세포)은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더 두껍게 나타났다. 그러나 이 연구는 이러한 차이에도 남녀 사이에 평균적인 지능 차이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결론짓는다.

2016년 미국 에머리대학교 도나 메이니 교수가 제시한 남녀 신장, 뇌 크기, 해마 크기 차이 그래프. d는 두 집단의 평균 차이를 뜻하는 효과 크기(숫자가 클수록 두 집단의 차이가 큼), 델타(Δ)는 중복된 영역의 비율을 의미한다. 남녀 뇌의 크기 차이는 연구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비슷하다. 출처 영국 국립 의학 도서관(https://doi.org/10.1098/rstb.2015.0119)

지능이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남녀 뇌의 우열을 가릴 수 없다면 남녀 뇌가 서로 다른 특성을 갖는다는 주장은 어떨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비유처럼 여성의 뇌와 남성의 뇌가 서로 다른 능력과 성향에 특화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올해 7월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정신건강연구소의 발달뇌유전학자 아민 라즈나한과 그의 연구팀은 남녀 뇌의 차이를 해부학 관점에서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에서 남성의 뇌는 후두엽·편도·해마가, 여성의 뇌는 전두엽 피질과 섬엽이 각각 다른 성별의 뇌보다 평균적으로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전자는 시각과 기억력에 관련된 부위로, 후자는 의사결정과 미각, 자기조절 등과 관련된 부위로 알려져 있다.

누군가는 이러한 분석 결과를 두고 그래서 남자는 시각 정보를 잘 기억하고 여자는 자기 견해를 내세우기보다 합의를 잘 이끌어내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특정한 뇌 부위가 크다는 사실이 곧 해당 뇌 부위와 연관된 기능이 우월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는 없다. 이는 단지 해당 뇌 부위에 회백질(신경세포가 모여 회백색을 띠는 부분)이 더 많다거나 뇌의 주인이 그 부위와 관련된 기능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학습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더욱이 이러한 해부학적 차이는 남녀의 능력 차이를 설명하는 원인이기보다 성별에 따라 다르게 외부의 영향을 받은 결과일 수 있다. 라즈나한 연구팀은 신경 가소성, 곧 환경의 영향을 받아 변화하는 뇌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았다. 복잡하게 난 도시의 길을 모두 외워야 하는 런던의 택시 기사의 뇌에서 기억력과 연관된 부위인 해마가 다른 사람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크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는, 남녀 뇌의 차이가 남녀가 수행한 사회적 역할의 영향을 받은 결과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모자이크 뇌 개념을 제안한 페미니스트 신경과학자 다프나 조엘 교수. (출처 : 미국 하버드대학교 젠더과학연구소 인터뷰, https://projects.iq.harvard.edu/gendersci/joelqa)

 

페미니스트 신경과학과 모자이크 뇌의 탄생

사람들은 콩팥이나 폐의 성차보다 뇌의 성차에 관심이 많다. 뇌의 성차에 관한 과학 지식은 곧잘 성차를 보여주는 결정적 지식으로 간주되어 사회적 성 인식을 재확인하거나 정당화하는 데에 사용된다. 실제로 라즈나한 연구팀의 분석은 발표 직후 그들의 의도와 무관하게 남학교와 여학교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로 쓰였다.

이는 과학적 사실이 기존의 성 인식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오용되는 전형적인 사례인 한편, 과학 연구가 결코 사회적 가치와 무관하게 수행될 수 없다는 현실을 드러내는 사례이기도 하다. 유럽과 북미, 오스트레일리아의 여성 과학자와 페미니스트는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뉴로 젠더링 네트워크라는 연구자 모임을 만들었다. 20103월 스웨덴 웁살라대학교 젠더 연구 센터가 스웨덴 연구위원회의 지원으로 다양한 학문적 배경과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를 모아 국제 학회를 개최한 것이 계기였다.

뉴로 젠더링 네트워크가 추구하는 페미니스트 신경과학의 목적은 뇌의 차이를 무조건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분법적으로 단순화된 성 인식에 부합하는 과학 지식을 재생산하기보다 뇌의 성차에 관한 새롭고 세밀한 서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위해 더욱 엄격한 과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자고 제안한다. 가령 뉴로 젠더링 네트워크의 일원이자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의 신경과학자인 다프나 조엘은 중첩되는 부분이 많은 남녀의 뇌를 모자이크 뇌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보자고 말한다. 모자이크 뇌란 대부분 인간의 뇌가 흔히 여성의 뇌와 남성의 뇌의 특성으로 구분되는 여러 특징이 한데 뒤섞인 상태라는 점을 강조한 표현이다.

2015년 조엘이 이끄는 연구진은 성인 1400명의 뇌 자기공명영상을 근거로 인간의 뇌를 116개 부위로 나누고, 그중 남녀 차이가 가장 큰 상위 10개 부위를 골라 각각 여성형, 남성형으로 분류했다. 이는 연구진이 새롭게 고안한 분석 방법이었다. 여성의 뇌와 남성의 뇌라는 구분이 실재한다면 남녀의 뇌에서 여성형 부위와 남성형 부위의 성별 분포가 둘 중 하나로 일관되게 관찰되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한 일관성을 보인 뇌는 전체 가운데 6% 정도에 불과했다. 인간의 뇌를 두 성별로 나누기에는 너무나 적은 수치다. 조엘은 뇌를 정량적으로 측정해 뇌의 차이를 규명하는 자신의 연구가 뇌를 두 성별로 나누어 특징을 기술하는 기존 연구보다 더 과학적이라고 주장한다.

교육부의 카드 뉴스는 성 역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강화한다는 거센 비판을 받고 곧 삭제되었다. 그 비판은 이 뉴스가 전달하는 사회적 편견을 향한 것인 한편, 편견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 과학에 대한 것이기도 했다. 뇌의 차이에 관한 연구가 성별 범주에 머무르는 한 교육부와 같은 사례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이제는 아직 드러나지 않은 뇌의 차이를 새로운 방식으로 밝히는 과학이 필요하다. < 임소연 숙명여자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