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층 자녀들 부정 입학시킨 국내 입시브로커 등 4명 입건

다니지도 않은 국내 과학고 성적증명 만들어 미국 대학 제출

학부모에 수억원 뒷돈 요구미 대학관계자 매수 시도 정황도

 

일부 유학 전문 학원은 비뚤어진 아이비리그 보내기방법을 전수한다고 한다. 서울에서 열린 유학박람회의 모습.

 

한국 부유층 자녀들이 가짜 고등학교 성적증명서를 제출하는 등의 방법으로 미국 명문대에 합격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국내 입시 브로커가 개입해 미국 대학 관계자한테 수억원의 뒷돈을 건네려 시도한 정황도 확인됐다. 지난해 할리우드 스타 등 부유층이 유명 사립대에 거액을 주고 자녀를 입학시켜 논란이 된 이른바 미국판 스카이캐슬사건과 유사한 수법으로, 한국 학생들이 이렇게 합격한 사례가 알려진 건 이번이 처음이다.

13<한겨레>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서울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이런 수법으로 한국 학생들을 미국 명문대에 입학시킨 혐의(사기, 업무방해)로 정아무개(31)씨 등 4명을 불구속입건했다. 경찰은 이들을 이달 중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정씨 등은 국내 중소기업 사장 아들 씨 등 최소 3명을 2016~2017년 위조한 고교 성적증명서를 이용해 미국 뉴욕대와 컬럼비아대 등에 합격시킨 혐의를 받는다. 201612월 뉴욕대 스턴경영대 합격 통보를 받은 씨는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이들은 씨가 국내 과학고에서 3년 내리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는 내용의 성적증명서를 뉴욕대에 제출했다. 정씨는 앞서 유출된 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SAT) 문제를 씨한테 주며 답을 외우게 하고, 대학 입학 에세이(자기소개서)를 대필하기도 했다.

정씨가 미국 대학 관계자를 매수하려 시도했을 가능성도 있다. 정씨는 기여입학제로 합격한 것이어서 대학에 기부금을 내야 한다며 학부모에게 적게는 15천만원에서 많게는 9억여원을 요구했다. 하지만 미국 대학의 기여입학제는 학생의 가족이 같은 대학 동문일 경우 가산점을 주는 제도로, “일정 금액을 대가로 합격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정씨 주장과 같은 방식의 입학 제도는 없다. 뉴욕대 관계자도 <한겨레>에 보낸 전자우편에서 기부금을 받고 합격증을 주는 제도는 없다고 밝혔다.

2016년 정씨에게 동업 제안을 받았다는 한 에스에이티학원 원장은 “(정씨가) 대학 입학사정관 등에게 돈을 줘서 합격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별로 구체적인 금액도 언급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학부모에게 받은 돈을 실제로 대학에 뇌물로 줬을 가능성과 학부모를 속이고 동료 브로커들과 나눠 가졌을 가능성을 모두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자세한 사항은 확인해주기 어렵다고 말했다.

씨 등 2명은 정씨의 금전 요구에 응하지 않으며 해당 대학에 입학하지 않았다. 미국 고등학교를 나온 나머지 1명은 과학고 성적증명서를 이용해 실제 컬럼비아대에 입학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씨는 2014년께부터 입시 컨설팅 업체에서 일하며 고위 공직자나 대기업·중소기업 오너 자녀의 미국 대학 입시를 맡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13<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서류를 위조한 일이 없다고 사실관계를 부인했다.

 

미국 고교 졸업하고 가짜 과학고 성적 증명자소서 대필까지

SAT문제 빼내 답만 외우라 주문, 자소서는 대필 조금 지어냈어

1년반만에 뉴욕대 등 2곳 합격증 돈 요구 거절하자 입학은 취소돼

 


띠링~’

201542일 새벽 3시 지호(가명·당시 18)한테 페이스북 메시지 한통이 도착했다.

너 컨설팅받을래? 합격 보장이야. 100% 꽂아주는 거야. 입학사정관하고 네트워킹해서 무조건 보장.”

지호가 2년 전 서울 강남구의 한 유학원을 다닐 때 진로상담을 담당했던 정아무개(31)씨였다. 정씨는 학원을 그만둔 뒤 싱가포르에 있는 패스웨이 컨설팅이란 입시 컨설팅 업체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성적과 상관없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시켜줄 수 있다는 정씨의 말은 언뜻 허무맹랑하게 들렸다. 지호는 성적이 중요한 것 아니냐고 거듭 물었다. 정씨는 점수도 만들어준다. 칼리지보드(미국 대학입학자격시험 SAT 주관 기관)에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2년 뒤 뉴욕대 스턴경영대와 존스홉킨스대에서 합격증이 날아왔다. 뉴욕대 스턴경영대는 미국 경영대 중에서 최상위권으로 평가된다. 지호 어머니는 아들 성적이면 50위권 대학만 가도 만족하겠다고 생각하던 차여서 (합격 소식이) 정말 기적 같았다고 했다.

기적은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또 정씨가 말한 입학사정관 네트워킹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한겨레>는 정씨와 지호네 가족의 진술, 그들이 주고받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대화 내용을 비롯해 뉴욕대, 고등학교, 입시업계 관계자 등의 증언을 바탕으로 정씨의 미국 대학 불법 컨설팅을 재구성했다.

답만 외우면 된다”, “채팅 기록은 지워

20151022일 정씨와 지호가 쓰는 공용 이메일 계정에 알림이 떴다. 11월에 치르는 에스에이티 시험을 보름 남겨둔 때였다. 정씨는 이 이메일 계정의 내게 보내기기능을 이용해 중요한 자료를 공유하곤 했다.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면 자신이 언제든 수신·발신 내역을 직접 삭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정씨가 보낸 파일은 에스에이티2 수학 기출문제 15개 세트였다. 에스에이티는 미국 대학들이 지원자의 성적을 평가하는 데 활용하는 시험이다. 과거에 나온 문제가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출제되는 문제은행 방식이어서 기출문제를 공개하지 않는다. 바꿔 말해 기출문제를 빼돌려 문제와 답을 외우면 고득점을 노릴 수 있다는 뜻이다. 정씨는 <한겨레>와 만나 아는 브로커를 통해 기출문제를 구했다. 2000만원이 들었다지호에게는 문제랑 답만 외우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런 사실은 당시 두 사람의 대화 내용에서도 확인된다.

쌤이 주신 수학2 문제 이해 안 가는 것도 있는데 답을 외우라고 해서 문제에 대한 답을 그냥 외웠어요.”

외우세요. 그리고 화학도 있지? 화학도 그렇게 봐. 아니면 물리 할래? 아예 문제 세트를 통째로 올릴까? 온갖 거 다 있어. 마음먹으면 프랑스어도 가능함. (중략) 아 참, 채팅 기록 지워줘.”(20151028)

타이에서 요리 배워브로커가 꾸며낸 자기소개서

입시 브로커 정씨의 손길은 에스에이티 문제 유출에서 멈추지 않았다. 미국 대학 원서 제출 시즌이 되자 정씨는 지호의 인적사항을 모두 넘겨받은 뒤 제출 과정을 직접 진행했다. 에세이(자기소개서)도 정씨가 대필했다.

에세이 나 지금 쓰려 하는데 그냥 대필해주면 되지? 내가 이야기 지어내?”

에세이는 그냥 쌤이 끝내시기로 했잖아요.”(20151028)

근데 조금 지어내야 하는데 괜찮지?”

당연하죠.”

아버지 이야기 쓰고 막 팔아먹었어.”(20151030)

그렇게 정씨가 작성한 에세이에는 ‘(지호가) 2016년 여름 타이 우돈타니 현지 시장에 직접 찾아가 커리 요리법을 배웠고, 한국의 맛을 가미해서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모두 거짓이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영향을 받았다거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생각 등도 정씨가 직접 지어냈다. 정씨는 지호 아버지가 기업을 경영한 덕에 지호가 자라면서 얻은 이점이 무엇인지도 꾸며 썼다. ‘아버지가 경영인이어서 한국과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거주했다. 일에 매진하신 아버지 덕분에 이사 갈 때마다 더 큰 집과 더 좋은 학교로 옮길 수 있었다는 식이다.

뉴욕대=80만 달러뒷돈 거래 있었나

201612월 지호는 뉴욕대와 존스홉킨스대 합격증을 받아들었다. 몸이 좋지 않아 에스에이티 시험을 몇차례 놓치고, 늦게나마 본 시험에서도 원하는 점수가 나오지 않은 지호로선 놀라운 결과였다.

하지만 합격증은 공짜가 아니었다. 1231일 새벽 3시께 지호 어머니는 정씨가 보낸 메시지를 받았다. “통화가 필요합니다. 금액에 관한 부분입니다. 일반적으로 뉴욕대 스턴은 80만불, 존스홉킨스대는 50만불입니다. 16일 전에 통화 시간 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돈을 지급하지 않으면 합격도 없던 일이 된다는 것이었다.

정씨는 지호 부모한테 기여입학제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한겨레>를 만난 정씨는 사실 로비에 쓰려던 돈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입학사정관으로 일했던 사람들, 아니면 대학교 이사회 통해서 (로비를) 하는 거예요. (미국 입시비리 주범) 릭 싱어처럼 코치를 매수하거나. 보통 중간에 브로커가 있죠. 어쨌든 현직 입학사정관한테 영향이 가도록 하는 게 핵심이죠.” 윌리엄 릭 싱어는 학생 서류를 위조하고 대학 관계자를 매수하는 방식으로 미국 상류층 자녀들을 명문대에 합격시킨 사실이 드러나 지난해 재판에 넘겨진 입시 브로커다. 정씨는 입학사정관한테 돈을 주는 게 주가 되는 건 아니다. 합격시킬 명분을 만들어줘야 된다. 에스에이티 점수를 만들고 에세이를 써주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정씨에게 동업 제안을 받은 적 있는 한 국내 에스에이티 학원 원장은 일부는 자신이 챙기고, 나머지는 대학에 뇌물로 줬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정씨가 하는 게 기본적으로 학교 관계자와 거래를 하는 건데, 서류상 학생의 스펙이 좋을수록 단가를 낮출 수 있다고 했다스펙을 조작해서 본인이 챙기는 몫을 늘리고, 나머지는 대학 관계자에게 줬을 것이라고 했다.

 

과고 성적증명서, 학교장 추천서 위조

지호 어머니는 고민 끝에 뉴욕대와 존스홉킨스대 진학을 포기했다. “정 선생한테 두 대학을 포기하겠다고 말하니 이미 기부금의 10%를 자기 돈으로 선지급했다면서 화를 내더라고요. 이렇게 거래를 파투 내면 다음부터 그 대학과 거래하기 어려워진다고도 했어요.”

정씨는 돈을 내지 않았으니 합격이 취소될 것이라고 했고, 그 말은 현실이 됐다. 이 과정에서 정씨가 뉴욕대에 위조된 고교 성적증명서와 추천서를 낸 정황도 발견됐다. 이듬해 3월 뉴욕대에서 온 전자우편에는 지원 서류에 허위 사실(fraudulent material)이 발견돼 합격을 취소한다고 적혀 있었다. 뉴욕대 관계자는 당시 지호한테 “(당신이) 한국의 과고 성적증명서와 학교장 추천서를 냈는데 모두 가짜인 게 적발됐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고교를 다닌 지호는 난생처음 듣는 얘기였다.

과고 관계자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실제로 미국 현지 대학 쪽에서 확인차 연락이 와서 그런 학생이 입학한 적도, 재학한 적도 없다고 확인해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정씨는 처음엔 서류 위조 자체를 부인하다 나중엔 당시에 지호가 다녔던 유학원에서 위조했을 수도 있다. 뉴욕대 합격은 지호 쪽에서 동시에 두 대학에 보증금을 넣어놨기 때문에 취소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에 그가 담당한 씨와 씨 등 두 학생도 과고 재학생으로 둔갑돼 미국 대학에 합격한 것을 고려하면 그의 해명은 신빙성이 떨어진다. 정씨가 담당한 학생 중 최소 3명이 같은 학교의 가짜 성적증명서로 대학에 합격한 셈이기 때문이다.

법정에서도 기여금 입학 여러번 진행해주장

정씨는 20172월 지호 쪽을 상대로 4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뉴욕대 합격에 대한 보수 2억원과 지호 누나의 대학원 에세이를 첨삭해준 보수 등을 달라는 취지였다. 정씨는 소장에서 미국 대학은 기여입학이라는 비공식적 제도를 두고 시행하고 있다. ‘기여금을 지급받고 입학을 승인하고 있다“201612월 중순경 뉴욕대 비즈니스스쿨로부터 80만달러를, 존스홉킨스대학으로부터 50만달러를 기여금으로 지급하는 조건으로 합격증명서를 전달받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뉴욕대 입학처는 <한겨레>의 사실관계 확인 요청에 기부금의 대가로 합격을 보장해주는 제도는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없다고 밝혔다.

정씨가 대놓고 거짓말을 한 셈이지만 법정에서는 쟁점이 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5(재판장 유석동)는 지난해 11뉴욕대와 존스홉킨스대의 경우 각 약 8억원, 5억원 이상의 기여금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입학 허가를 받았던 것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다만 기여입학 추진에 관하여 사전에 피고(지호네)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지호네가 정씨한테 12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양쪽 모두 항소해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정씨는 법정에서 이런 기여입학을 여러번 진행했다고 진술했다. 당시 진술기록을 보면 “2015년 이전에 원고의 컨설팅으로 미국 대학에 기여금 입학을 한 학생이 있느냐는 질문에 정씨는 기여는 미국 대학에 들어갈 때 일반적으로 돈이 필요하다 보니까 필요에 따라 있었다고 대답했다. 지호네 쪽 변호사가 다시 “(기여금 입학을 진행한 학생이) 2명 이상이냐고 묻자 정씨는 그렇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