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시정연설서 첫 선언, 탈석탄 · 재생에너지 확대 재확인
세계 70여개국 탄소중립 선언…환경단체 “이행계획 나와야”
“국제사회와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여,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오전 내년도 예산안 제출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 중립’을 이루겠다고 선언했다. 탄소 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제거량이 상쇄돼 순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다. 국회 본회의장에선 여당 의원을 중심으로 기립박수가 나왔다.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국회의원 252명은 2050년 탄소 중립을 담은 초당적 ‘기후위기 비상선언 결의안’을 통과시켰었다.
국회에 이어 한국 정부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분명히 밝히면서, 이미 같은 선언을 한 세계 70여개 국가와 기후위기 문제 대응 인식을 같이하게 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정부는 그동안 에너지 전환 정책을 강력히 추진해왔지만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어 “석탄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해 새로운 시장과 산업을 창출하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탈석탄과 재생에너지 확대라는 에너지 전환 원칙을 거듭 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또 “그린뉴딜에 8조원을 투자한다”며 △노후 건축물·공공임대주택 친환경 시설 교체 △도시 공간·생활기반시설 녹색전환 △전기·수소차 11만6천대 확대 보급 △전기·수소차 충전소 건설 및 급속충전기 증설 △저탄소·그린 산단 조성 △지역 재생에너지 사업 금융지원 확대 등에 국회 협조를 구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7월 기후위기 문제에 대응하고 경제 성장을 이끄는 한국형 뉴딜의 한 축으로 그린뉴딜 정책을 발표하며 전기·수소차와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 등 에너지 전환 계획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석탄발전 퇴출을 분명히 하지 않아 환경단체로부터 ‘무늬만 그린뉴딜’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환경단체들은 이날 문 대통령의 탄소 중립 선언을 일제히 환영하면서도 구체적 이행계획을 요구했다. 세계적으로 탄소 중립을 추구하는 국제동맹에 70여개 나라가 참여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계획서를 제출한 국가는 17개에 불과하다. 특히 ‘탄소 중립’ 계획서를 제출한 나라는 유럽연합, 마셜제도, 피지, 포르투갈, 코스타리카, 슬로바키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핀란드 등 8곳에 그친다.
문 대통령의 ‘2050년 탄소 중립’ 선언은 최근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7)가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에게 기후위기 문제에 행동으로 나서달라며 호소한 것에 대한 응답으로도 볼 수 있다. 툰베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내가 하는 일을 존중해준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행동으로) 증명해달라. 행동이 말보다 훨씬 의미 있다”고 말했다. 최우리 기자
기후위기 국제대응 동참… 석탄발전 중단 힘 받을 듯
‘최대 75% 감축’서 진일보, 온실가스 감축논의 재점화
2017년 6월 삼척석탄화력발전소건설반대범시민연대 등 강원 삼척지역 주민들이 청와대 인근 서울 신교동 푸르메센터 앞에서 집회를 열어 삼척 적노동에 계획된 포스파워 석탄화력발전소 건설 백지화를 촉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8일 2050년까지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줄이는 탄소중립을 선언한 것은 기후위기라는 전지구적 문제 해결에 한국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동참해야 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다만 산업·수송 등 사회 전체의 대변혁이 필요하기 때문에 국내 반대 여론 설득과 예산 투자를 통해 구체적인 정책과 법제화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과제가 남았다.
2050년 탄소중립 선언은 지난 1년 기후위기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해온 시민사회와 국회, 여론의 요구에 따른 측면이 크다. 환경부가 발족한 ‘2050년 저탄소 사회 비전 포럼’은 2017년 한국 배출량(7억970만t) 기준 2050년까지 최대 75%까지만 감축한다는 초안을 지난 2월 정부에 제출해 비판을 받았다. 탄소중립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4월 총선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공약으로 ‘2050년 탄소중립’을 내세웠고, 지난달에는 민주당뿐 아니라 국민의힘·정의당 의원 등 252명이 2050년 탄소중립을 담은 기후위기 비상선언 결의안을 통과시키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여름 역대 최장기간 장마를 거치며 기후위기에 대한 시민들의 문제의식이 높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한중일 3국 중에 한국만 홀로 대열에서 빠진 것도 부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중국이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지난 26일에는 일본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이번 선언으로 국내 석탄발전 퇴출 속도가 빨라질지 주목된다. 문 대통령은 “석탄발전을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다시 한번 확인했다. 2050년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려면 화석연료에 의존한 석탄발전은 더이상 가동이 불가능해진다. 신규 석탄발전소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정한 수명(30년)보다 먼저 가동을 중단해야 한다. 건설 중단, 조기 폐쇄 등의 주장이 힘을 받게 된다. 5월 정부가 발표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20~2034년) 초안을 보면, 2030년께 한국의 석탄발전은 전체 발전량의 31.4%로 재생에너지 비중(20%)보다 높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석탄발전의 순차적 폐지를 약속했지만, 강릉 안인 1·2호기, 삼척 1·2호기 등 7기의 석탄발전소는 2021~2024년 신규 가동을 시작한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탄소중립이 되려면 이들 석탄발전소를 그대로 둘 수 없다”고 말했다.
올해 안으로 유엔에 제출해야 하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에 대한 논의도 재점화할 수 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박근혜 정부 시절 정해두었던 기존 목표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해 논란이 됐다. 국제사회가 요구했던 ‘2010년 배출량의 45%’보다 훨씬 적은 18.3%에 그치는 양이다. 정부는 5년 뒤인 2025년 수정안을 다시 제출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환경단체는 “다음 정부로 책임을 돌렸다”고 비판한다. 환경 전문가들은 2030년 이전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큰 폭으로 줄이지 못하면 2050년 탄소중립 목표는 실현하기 어렵다고 본다. 문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으로 ‘2030년 기존 목표도 수정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환경부 고위 관계자는 “올해 말 유엔에 제출하는 감축 목표에 반영하는 것이 어려우면, 다음 제출 시기인 2025년에 수정된 목표를 제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최우리 김정수 기자
문대통령 '탄소중립' 선언에 유엔 총장 "매우 고무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28일 '탄소 중립' 선언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즉각 환영의 뜻을 밝혔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대변인은 별도의 성명을 내 "사무총장은 2050년까지 '제로 배출'을 달성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에 매우 큰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두자릭 대변인은 "이는 지난 7월 발표된 한국의 모범적인 '그린 뉴딜'에 이어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매우 긍정적인 발걸음"이라고 극찬했다.
그는 "이번 발표로 세계에서 11번째로 큰 경제국이자 6번째 수출 대국인 한국은 2050년까지 지속 가능하고 탄소 중립적이며 기후가 회복되는 세계를 만드는 데 솔선수범하는 주요 경제국 그룹에 합류했다"고 평가했다.
두자릭 대변인은 "사무총장은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구체적인 정책 조치들이 제안되고 이행되기를 고대하고 있다"며 "여기에는 한국이 개정된 2030 온실가스 국가감축목표(NDC)를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 제때 제출하는 것도 포함된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2021년도 예산안 제출 시정연설에서 "국제사회와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해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며 석탄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등의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한전 "앞으로 해외 석탄화력발전 사업 안 한다" 선언
인도· 베트남 사업은 계속 추진, 나머지 2건은 재검토
한국전력은 28일 앞으로 신규 해외 석탄화력발전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한전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이같이 밝힌 뒤 "앞으로 해외 사업을 추진할 때 신재생에너지, 가스복합 등 저탄소·친환경 해외 사업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현재 진행 중인 4건의 해외 석탄화력발전사업 가운데 인도네시아 자바 9·10, 베트남 붕앙2 사업은 상대국 정부와 사업 파트너들과의 관계, 국내기업 동반 진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계속 추진하기로 했다.
나머지 2건은 LNG 발전으로 전환하거나 중단하는 방향으로 재검토 중이라고 한전은 설명했다.
이를 통해 2050년 이후 한전이 운영하는 해외 석탄화력발전사업은 모두 종료될 것으로 예상했다.
한전은 이런 방침을 2020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반영해 주주 및 이해관계자들에게 앞으로 한전의 친환경 발전 방향을 분명히 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강화와 지속적인 추진을 위해 이사회 산하에 'ESG 추진위원회'를 설치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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