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가소성’ 이야기…한소원 교수 체험기 '변화하는 뇌'
"늙어서 뇌가 굳었나 봐."
나이가 들면 수시로 이런 말을 되뇌곤 한다. 새로운 배움이나 새로운 관계를 놓고 주저할 때 애꿎은 뇌를 탓하며 하릴없이 물러서고 만다. 정말로 나이 들면 머리가 안 돌아가는 걸까?
서울대 심리학과 한소원 교수는 신간 '변화하는 뇌'로 이런 통념이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나이 들면 누구나 무조건 머리가 굳을 거라고 낙심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책의 열쇳말은 '뇌 가소성'이다. 이는 나이 먹을수록 뇌가 굳는다는 일반의 인식과 달리 학습, 운동, 사회적 관계 등 새로운 경험으로 뇌에 긍정적인 변화를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음을 뜻한다.
본디 뇌는 예측불허의 환경에서 살아남도록 설계돼 있다. '가소성(可塑性)'이라는 단어가 말해주듯, 뇌는 마치 숲속에 새로운 길을 내는 것처럼 신경세포 간의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내며 변화한다.
신기한 건 그 본성상 뇌가 불확실한 환경에서 더 열심히 활동한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것을 알고자 하는 학습,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구별되는 취미생활, 다양한 방식의 예체능 활동, 사회적 교류나 타인을 위한 봉사 등이 뇌의 연결망을 새롭게 바꿔주며 삶에 원동력을 불어넣는다.
이 책은 암 투병에서 안면인식장애까지 저자 개인의 자전적 고백을 담아 뇌 가소성을 풀어나간다는 점에서 유다른 심리학서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유방암 3기 진단을 받은 것은 4년 전 가을이었다. 나는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암 선고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한 교수는 암 진단과 투병 생활 속에 건강하게 학생들을 지도하고 연구하는 학자로 돌아오기까지 과정을 책의 첫머리에서 담담하게 들려준다.
이번 저서는 단순히 학술적인 설명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뇌 가소성의 정체와 효능을 쉽고 편안하게 풀어내줘 더욱 눈길을 끈다. 이론을 몸소 실천해온 인생 여정이어서 그의 설명이 더욱 생생하게 와닿는다고 할까.
스마트 에이징(smart aging)을 연구해온 저자는 "뇌는 경험할수록 변화하고 스스로 회복한다"며 "유산소운동이 뇌의 백질을 늘리고 인지기능을 향상시킨다. 나이가 들어도 뇌를 개발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지속적인 학습과 운동, 사회적 활동을 통해 나이가 들어서도 발전과 개발을 지속할 수 있다는 얘기다. 뇌 가소성은 어렵고 먼 주제가 아니라 모든 인간이 공통적으로 소유하는 '내 몸과 삶'의 연결고리라 할 수 있다.
실제로 한 교수도 공부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삶을 살아왔다. 학자로서의 일상 외에 합창단에 가입해 노래를 부르고, 예술활동과 운동을 즐기고 있는 것. 공감과 교류가 뇌의 가장 본능적이고 기본적인 사회적 기능이어서다.
"무엇보다 춤을 추는 것이 즐겁다. 춤은 뇌를 젊게 해주는 운동이다. 감각능력과 균형을 향상시키고 공간 인지능력과 기억 능력에도 도움을 준다. 음악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은 도파민 보상체계를 활성화시킨다."
저자는 노화를 동반하는 뇌의 손실을 되돌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이와 같은 유산소운동을 추천한다. 성인이 유산소운동을 꾸준히 할 때 인지기능과 직접 관련된 뇌 영역의 부피가 증가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1주일에 2회 이상의 근력운동을 꼭 하고, 유산소운동도 2시간 반에서 5시간가량 중강도에서 고강도로 할 것을 권유한다. 그만큼 신체 활동은 근육과 마찬가지로 물리적 구조를 가지고 있는 뇌의 발달에 필수적이다.
노인과 젊은이의 행복을 비교한 연구로 볼 때 예상과 달리 노인의 행복감이 더 크다는 대목도 눈길을 끈다. 생명의 한계를 인정하게 되면 모든 것을 다하려 애쓰기보다 정말 중요한 것을 선택해 집중하게 되며 이것이 곧 행복을 느끼는 가치체계에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이란다.
책은 '한계를 인정하면 왜 행복해질까?', '불확실함을 먹고 자라는 뇌', '뇌는 춤추고 노래하고 운동하는 삶을 원한다', '사람은 죽기 전까지 발전한다' 등 모두 4부로 구성돼 있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학에서 인지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오클라호마주립대에서 심리학 교수로 10여 년간 일한 뒤 귀국해 현재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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