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지도자들의 2020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발언하고 있다.

 

2018년 당시 한해를 정리하는 국제기사들 속에는 차르와 황제 처럼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단어가 유독 많았다. 강대국의 치열한 패권 다툼 속에 각국 스트롱맨들의 부상이 집중 조명된 탓인데, 불과 2년 만에 지구촌엔 벌써 권서여무’(권력은 안개처럼 사라진다)의 기운이 짙다. 내년 10월 총선 이후 16년 총리직을 내려놓겠다며 일찌감치 우아한 퇴장을 천명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같은 지도자도 더러 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열흘 붉은 꽃은 없다)의 이치를 받아들이지 못한 세계 최강 스트롱맨들의 2020년은 요란하게 땅에 떨어져 널브러진 붉은 꽃처럼 누추했다.

_______

짐 싸는 트럼프, 형사 소추 위기

미국의 퍼스트맨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13일 대선에서 재선에 실패했다. 안면몰수 대선 캠페인과 불복 소송전에도 불구하고, ‘권불십년’(권력이 십년을 못간다)은커녕 권불오년의 교훈을 남겼다. 그가 4년 뒤 다시 대선에 도전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내년 120일 퇴임 뒤에는 당장 형사처벌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그 동안 현직 대통령 지위를 이용해 형사소추를 피해왔지만, 퇴임과 동시에 자신과 회사의 탈세 등 부적절한 재무처리부터 성폭력, 대통령 직위를 이용한 사익 추구 등 각종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될 전망이다. 트럼프는 나는 나 자신을 사면할 권리가 있다셀프 사면운운하지만 난관이 많다.

셀프 사면보다는 차라리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가 사면해주는 방안이 현실적일지 모른다. 미 전직 대통령이 기소된 전례가 없어, 바이든에게도 트럼프 기소는 정치적 부담일 수 있다. 실제 1974년 제럴드 포드 당시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을 사면한 전례가 있다. 에릭 포스너 시카고대 로스쿨 교수는 정치적 문제로 보자면 (형사소추는) ‘딥 스테이트’(막후세력)가 자신을 붙잡으려 한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강화해 그의 입지만 강화해줄 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워터게이트 때 닉슨에게 결정적으로 불리한 증언을 했던 존 딘 전 백악관 법률고문은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우리는 법치국가다. 대통령도 예외가 될 수 없다며 대통령도 형사소추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면권을 쥐고 있는 바이든 당선자는 대선 이후 줄곧 법무부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트럼프 기소 문제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2018년 중국공산당 192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2중전회)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연설하고 있다. 베이징/신화 연합뉴스

_______

중국 때리던 트럼프는 가도 시진핑은 남는다

주요국 스트롱맨들의 퇴조 속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만큼은 내년에도 건재할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도 올해 코로나19롤러코스터같은 한해를 보냈지만, 조기에 방역에 성공하면서 경기회복의 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건국 70주년을 맞아 한껏 끌어올렸던 중국인의 자부심은 올초 후베이성 우한에서 코로나19가 최초 발병하면서 나락으로 떨어졌다. 초기 대응 미숙에 대한 비판 속에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책임론까지 불거지면서 시진핑도 한때 사면초가와 같은 상황으로 몰렸다.

반전의 계기 역시 코로나19였다. 철저한 통제 속에 극한으로 치달았던 코로나19 상황이 안정을 되찾기 시작한 지난 310일 시진핑은 우한을 전격 방문했다. 코로나19 방역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안팎에 과시하기 위한 행보였다. 이어 48일 자정을 기해 무려 76일동안 봉쇄됐던 우한으로 통하는 길이 열렸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확산일로를 치닫던 시점이다.

코로나19로 사실상 멈춰섰던 중국 경제는 이후 잰 걸음을 놀리기 시작했다. 1분기 -6.8%를 기록했던 경제성장률은 2분기와 3분기에 각각 3.2%5.2%를 기록하며 빠르게 회복세로 돌아섰다. 올해 중국 경제는 3%대의 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코로나19 확산세 지속으로 내년에도 주요 각국 경제가 휘청일 수밖에 없어 보이지만, 중국 경제는 8%대 안팎의 성장세를 보일 것이란 게 세계은행 등의 전망이다. 22018년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철폐하는 개헌을 매듭짓고 종신이 될지 모를 장기 집권의 길을 연 시황제에겐 고무적인 성적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7일 모스크바 외곽 집무실인 노보 오가르요보에서 연말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모스크바/로이터 연합뉴스

_______

차르 푸틴, 면책법은 은퇴 준비?

‘21세기 차르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심상치 않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22일 전직 대통령과 가족은 형사·행정 책임을 지지 않고 체포나 구속, 압수수색 등을 당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법안에 서명한 것이다. 퇴임 뒤 면책 특권은 반역 등 중대범죄 혐의를 하원이 제기하고 상원이 인정하면 박탈되지만, 그 조건이 까다로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책임 추궁은 극히 어려워졌다.

지난 11월 유럽 언론을 통해 푸틴의 건강 이상설이 흘러나왔다. 푸틴이 파킨슨병을 앓고 있으며, 퇴임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였다. 러시아 대통령실은 푸틴의 건강 이상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지만, 전직 대통령 면책 법안을 퇴임 뒤를 대비한 보험으로 해석도 만만치 않다. 건강 이상이 아니고서야, 지난 7월 개헌 국민투표를 통해 2036년까지 장기 집권할 수 있는 길을 연 푸틴이 이렇게 서둘러 면책법을 준비할 이유가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푸틴이 올들어 코로나19 악화 등으로 고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러시아의 감염자는 30만명을 넘어, 미국·인도·브라질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다. 러시아에서 매달 16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고 있는 비정부기구인 레베다를 보면, 푸틴 지지율은 지난 4월 한때 59%까지 떨어졌다.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과 비교하면 낮다고 볼 수 없지만, 푸틴으로선 20005월 첫 대통령 취임 뒤 가장 낮은 지지율이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성탄절이었던 지난 25일 중의원에서 벚꽃을 보는 모임전야제 관련 의혹에 대해 답변하고 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_______

아베, 퇴임 뒤 정치 활동 재개 타격

일본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통산 재임 일수 기준)였던 아베 1아베 신조 전 총리는 지난 828일 돌연 사임을 결정했다. 지병 궤양성 대장염 재발이 이유라곤 하나, 임기를 1년 앞둔 사의 표명에 전 세계가 충격을 받았다. 정작 본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정치 활동 보폭을 넓히며 건재를 과시했다. 아베는 퇴임 뒤 태평양전쟁 에이(A)급 전범이 합사된 도쿄 야스쿠니신사를 두 차례 참배했다. 이달 초에는 우익 인사인 사쿠라이 요시코와 대담에서 일본 평화헌법개정론을 재차 주장하는 등 보수 우파에 호소하는 왕성한 활동을 이어왔다.

복심스가 요시히데 전 관방장관이 후임 총리가 되면서, 아베의 막후 영향력 행사도 당연시 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총리 시절 불거졌던 벚꽃을 보는 모임불법 향응 제공 스캔들로 검찰 조사를 받으며 정치 활동 재개에 급제동이 걸렸다. 비록 사건을 수사한 도쿄지검 특수부가 아베 전 총리는 알지 못했다며 불기소 처분했지만, 전직 일본 총리가 검찰 조사를 받은 것 자체가 하시모토 류타로 이후 15년 만이다. 아베는 916일 총리직에서 물러난지 100일 만인 지난 24일 기자회견에 나와 연신 고개를 조아리며 국민과 국회에 사과했다. 야당이 의원직 사퇴 사안이라고 맹공을 퍼붓고 있는 가운데, 취임 석달 만에 30%대로 주저앉은 자신의 지지율을 방어하기에도 급급한 스가 총리는 아베 전 총리가 설명할 것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조기원 기자, 베이징/정인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