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고한 트랩 대령 역할로 열연… 82세 최고령 오스카 수상 기록도
로마 폭군, 톨스토이,전설의 앵커 등 다양한 캐릭터 연기한 성격파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에델바이스를 부르는 장면.

 

토론토 출신 유명배우 크리스토퍼 플러머가 2월 5일 아침 미국 코네티컷에 있는 자택에서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플러머는 대표작 ‘사운드 오브 뮤직’과 ‘비기너스’를 포함한 수 많은 영화로 알려진 할리우드 원로 배우다

플러머는 1929년 토론토에서 태어났지만 몬트리올에서 자랐다. 그는 캐나다의 세 번째 총리인 존 애벗의 증손자였다.

플러머는 1948년 오타와에 있는 캐나다 레퍼토리 극장에서 ‘심블린’으로 데뷔를 했고, 곧이어 CBC 텔레비션 쇼 ‘오셀로’에 출연했다. 그는 오스카상을 받은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주연 캡틴 폰 트래프를 연기해 에델바이스를 부른 것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또한 2012년 영화 "비기너스"에서의 역할로 82세에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최고령 배우이기도 하다. 영화 ‘용 문신을 한 소녀’, ‘인사이더’, ‘12 몽키즈’, ‘리멤버’, ‘뷰티풀 마인드’ 등에 출연했으며 ‘업’, ‘아메리칸 스토리’, ‘매들린’ TV 시리즈에 목소리 출연을 했다.
1965년 개봉한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플러머는 영국 출신의 명배우 줄리 앤드루스와 함께 주연으로 열연해 한국의 영화 팬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운드 오브 뮤직'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를 배경으로 나치 독일의 지배를 피해 조국을 떠나야 했던 게오르그 폰 트랩 가족 합창단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플러머는 이 영화에서 아내를 잃고 일곱 명의 아이를 홀로 키우는 완고하고 권위적인 트랩 대령 역할을 맡았다.

트랩 대령은 발랄한 성격의 가정교사 마리아(줄리 앤드루스 분)를 만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마리아와 결혼해 가족들과 함께 나치의 지배를 피해 스위스로 망명하게 된다.

플러머는 특히 이 영화에서 감미롭고 서정적인 멜로디의 '에델바이스'를 기타를 치면서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소화해 갈채를 받았다.

AP통신은 "플러머는 50년 넘게 영화계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역할을 했지만, 그를 스타로 만든 것은 트랩 대령 역할이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플러머는 생전 트랩 대령 역할에 대해 "재미가 없고 일차원적"이라며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7년 AP통신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트랩 대령 역에) 유머를 넣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며 "트랩 대령을 비현실적이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던 과정은 고통스러웠다"고 회고했다.

그는 캐나다에서 연기 경력을 시작했지만, 곧 할리우드 영화계와 브로드웨이 연극 무대에도 진출했다.잘생긴 외모에 가벼운 영국 억양까지 가지고 있는 플러머는 남자 주인공 역할에 제격이었지만, 성격파 배우로 기억되길 원했다.

실제로 그는 로마의 폭군 코모두스 황제('로마제국의 멸망'·1964)부터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2009), CBS 시사프로그램 '60분'의 전설적 앵커였던 마이크 월리스('인사이더'·1999)까지 선이 굵은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냈다.

 

평생 100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던 플러머는 '비기너스'(2010)에서 아내와 사별한 뒤 뒤늦게 동성애자임을 고백하는 아버지 역할을 맡아 2012년 84회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당시 82세의 나이로 오스카 트로피를 움켜쥔 그는 최고령 아카데미 수상자로 기록됐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오스카) 당신은 나보다 겨우 두 살 위다. 내 평생 어디에 가 있었던 거냐"고 말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또 셰익스피어 연극에도 다수 출연해 토니상을 두 차례 받았고 TV 드라마 연기로 에미상도 2번 수상하는 등 일생에 걸쳐 개성 있는 연기로 문화계 다방면에 큰 족적을 남겼다.

그는 1962년 영연방 수장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수여하는 캐나다 최고시민 훈장을 받았고, 1986년 미국 무대예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플러머는 토론토 국제 영화제에도 자주 참석했는데 가장 최근에는 2019년 TIFF에서 초연된 라이언 존슨 감독의 '나이프 아웃'에 출연했다.
플러머의 오랜 친구이자 매니저였던 로 피트는 성명을 내고 “플러머는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고 존중하던 사람이었다”며 “그는 캐나다의 국보이고, 그의 예술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감동시켰다”고 애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