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원대 합의금 vs 미 10년 수입금지… SK 배터리 ‘사면초가’

미 대통령 거부권 검토기간 2달 내 합의여부가 마지막 선택지

 

 SK이노베이션 미국공장 건설지.

 

에스케이(SK)이노베이션이 사면초가에 빠졌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소송에서 완패를 받아들면서 수조원대 손해를 피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미 대통령의 거부권이 마지막 협상 카드로 남아 있지만 업계는 이마저도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본다. 이번 소송이 향후 에스케이의 배터리 사업에 끼칠 파장이 주목된다.

14일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은 대통령 검토 기간 동안 협상을 끝내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60일간 국제무역위 결정을 검토한 뒤 정책상의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거부권을 발동하지 않은 채 기한이 끝나면 ‘10년 수입금지’ 등의 조처는 즉시 효력이 발생한다. 기아의 니로 EV 판매도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앞으로 두달은 에스케이가 어느 정도 협상력을 가질 수 있는 마지막 시기”라고 말했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이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는 기대는 크지 않다. 2013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삼성-애플 사례와는 달리, 이번에는 국제무역위가 이미 공익을 고려한 일종의 구제책을 내놨기 때문이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의 거래처인 독일 폴크스바겐과 미국 포드는 각각 2년과 4년의 유예기간을 받았다. 그 안에 대체 공급사를 찾으라는 취지다.

미국 업계의 시선도 다르지 않다. 최종결정 직후 포드와 폴크스바겐 모두 빠른 합의를 촉구하고 나선 이유다. 포드의 짐 팔리 최고경영자는 지난 11일 트위터에서 “두 공급사가 자발적으로 합의하는 것이 미국 제조사와 노동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이익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폴크스바겐도 입장문을 내어 “궁극적으로는 두 공급사가 법정 밖에서 합의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거부권 행사를 언급한 건 아직까지 브라이언 켐프 조지아주지사뿐이다.

 

증권가에서는 최종결정으로 인해 합의금 규모가 더 커질 것으로 본다.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스위스(CS)는 최근 보고서에서 “(최종결정 이전에는) 엘지(LG)화학이 2조∼3조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제 합의금은 최소 5조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엘지에너지솔루션도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한웅재 법무실장은 지난 11일 간담회에서 “에스케이의 기술 탈취로 인한 피해는 유럽, 한국 등 다른 국가에서도 발생했다고 판단한다”며 “(다른 국가에서도 소송을 제기할지는) 기본적으로 에스케이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에스케이이노베이션으로서는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모양새가 됐다. 수조원의 합의금을 내게 되면 아직 적자 단계인 배터리 사업이 동력을 잃을 위험이 있다. 지난해 배터리 사업의 매출은 약 1조6000억원, 영업손실은 약 4000억원에 이른다. 당장의 금전적 손실 외에도 위기 요인이 많다. 오랜 기간 이어진 불확실성으로 완성차 업체와의 관계가 악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회사 관계자는 “최근 거론되는 액수를 실제로 물면 사업 존속 여부가 불투명해진다”며 “두 기업이 협력하면서 엘지도 보상받을 수 있는 안을 제시한 뒤 답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