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국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 100% 이상 수두룩
서머스·퍼먼 교수 “실질금리 낮아 국채이자 부담 완화”
“국가부채 비율보다 ‘국채이자비용’ 잣대로 삼아야”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한국과 관련해 재정여력이 있는 만큼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계층에 대한 직접적인 현금지원을 늘릴 것을 권고했다. 사진은 미국 워싱턴에 있는 국제통화기금 본부 건물 모습. 워싱턴/로이터 연합뉴스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세계 각국 정부가 지난해부터 재정을 대규모로 풀면서 과연 이런 규모의 재정지출이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 관심을 끌고 있다. 국가마다 차이는 있지만 재난지원금 지급, 모기지와 월세 지불유예, 단축근무제 지원 확대, 실업수당 인상과 기간 연장, 세액공제 확대, 무이자 대출 또는 대출 보증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1930년대 대공황 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규모의 경기부양책이다.
이미 주요국의 국가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를 넘는 곳이 속출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달 발표한 ‘재정 모니터’(Fiscal Monitor) 자료를 보면, 미국은 지난해 128%를 넘긴 것으로 추정됐고, 영국 110%, 캐나다 116%, 프랑스 115% 등이다. 전통적으로 재정긴축 정책에 집착해온 독일도 70%다. 선진국 평균은 122%다. 국제통화기금에선 과거 경험치를 기반으로 선진국은 70%, 신흥국은 60% 수준을 상회하면 부채 과다 상태로 간주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선진국 대부분이 이미 임계치를 넘어선 상태다. 신흥국 중에선 중국과 인도가 각각 65%, 85%이고 브라질은 95%다. 브릭스(Brics) 국가 중 러시아(21%)만 제외하고 모두 임계치를 넘었다.
우리나라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집계 기준으로, 2018년 40%에서 2020년 48%로 높아질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2018년 우리나라와 비슷했던 호주의 국가부채 상승률보다는 낮다. 호주는 2018년 41%에서 2020년 63%로 급상승하고 있다. 호주는 우리나라 금융당국에서도 비교 대상으로 꼽는 나라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재정 상태에 접어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런 상황에서 재정 확대 정책은 지속가능할까? 일부 경제학자들은 저금리 기조가 지속될 경우 정부부채가 급증한 상태에서도 확대 재정정책은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논리는 이렇다. 부채가 늘더라도 금리가 매우 낮으면 부채 원리금 부담이 완화된다는 것이다. 수식으로 표현하면 이렇게 된다. r-g <0. 여기서 r은 이자율, g는 경제성장률이다. 경제성장률이 이자율보다 높으면 부채가 늘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높아 조세수입이 늘어나면 원리금 상환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경제성장률이 앞으로 몇년간 정체한다고 가정할 경우 관건은 이자율의 향방에 달려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저명한 경제학자들인 래리 서머스 교수와 제이슨 퍼먼 교수가 지난해 11월 이런 주제를 다룬 공동논문을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이들은 초저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국가채무의 지속 가능성 여부를 재는 잣대로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미국의 경우 장기 실질 금리(TIPS·물가연동국채 10년물 기준)가 2000년에 4.3%에서 2020년 초반에 -0.1%로 4%포인트 이상 하락했다고 소개하면서, 미국의 경우 장기 실질 금리가 1.3% 미만이라면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150%까지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미국 TIPS 10년물 기준 실질 금리는 올해 2월 현재는 -1% 수준이다. 다른 주요국들도 추세는 대체로 비슷하다.
두 교수는 국가채무의 지속 가능성을 재는 새로운 측정 지표로 ‘GDP 대비 실질 국채이자비용 2% 미만’을 제시했다. 이들은 “미래는 알 수 없고 실질 금리 하락의 정확한 이유는 명백하지 않지만, 실질 금리 하락은 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반영한다”며 “이는 1970년대 인플레 이후 발생했던 것과 같은 심오한 재정정책 및 거시경제정책에 대한 사고의 변화를 요구한다”고 밝혔다.
올해 국제금융시장에선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가 오르면서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금리가 높아지면 주식 같은 위험자산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지는 게 기본적인 이유다. 천문학적인 재정지출에 따른 각국 재정의 지속가능성 여부도 배경 중 하나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한국의 경우는 어떨까. 서머스 교수와 퍼먼 교수가 논문에서 논의한 내용을 바로 적용할 수는 없다. 기축통화국인 미국과 달리 한국은 외부 충격에 노출될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더 크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국의 재정여력을 평가할 때 참고는 할 수 있다. 나라살림연구소가 지난해 분석한 결과를 보면, 한국도 금리가 낮아지면서 국채이자 부담이 그렇게 크게 늘지 않았다. GDP 대비 국채이자 비용은 지난해 1.0% 수준으로 10년 전인 2010년의 1.2%보다도 오히려 낮은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의 평가도 주목할 만하다. 이 기구는 한국을 방문해 진단한 결과를 지난 1월27일 보도자료를 통해 내놨다. 그 내용이 상당히 흥미롭다.
“2021년 예산은 확장적인 재정정책 기조를 적절하게 유지하고 있으나, 피해를 입은 근로자와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택적인 이전지출(targeted transfer)을 늘리고, 회복을 뒷받침하는 공공투자 계획을 가속화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올해 예산안 대비 재정적자 규모가 다소 늘어나더라도 향후 몇년에 걸쳐 점진적인 재정건전화로 이를 상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국제통화기금도 한국에 대해선 재정여력이 있는 만큼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계층에 대한 직접적인 현금지원을 늘릴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 눈이 띈다. 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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