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희망사항?  핵협정 복귀협상서 동결자금 문제 부각 의도?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지난달 11일 이란 테헤란을 방문해 압돌나세르 헴마티 이란 중앙은행 총재 등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란의 유엔 분담금 일부를 한국에 동결된 이란 자금(약 7조7000억원)으로 납부하는 방안에 한국과 이란이 동의했다. 하지만 이란 정부가 미국과 협의 절차의 필요성을 언급하지 않는 등 내용을 다소 부풀려 발표해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23일 정례브리핑에서 이란 동결자금을 둘러싼 한-이란 간 협의 결과와 관련해 “현지 시간 22일 유정현 주이란대사와 이란 중앙은행(CBI) 총재 간의 면담에서 이란은 우리가 제시한 방안에 대해 동의 의사를 표명하는 등 기본적인 의견 접근이 있었다. 다만 실제 동결자금의 해제를 위해서는 유관국(미국) 등 국제사회와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소식은 22일 이란 정부 누리집을 통해 먼저 알려졌다. 이란 정부는 압돌나세르 헴마티 이란중앙은행 총재가 전날 유정현 주이란 한국대사를 만나, 한국 내 동결 자산의 이전과 사용 방법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 대사가 “한국은 이란이 한국 내 모든 자산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준비가 돼 있다. 여기에는 어떤 제한이나 제약이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란이 한국 시각으로 22일 밤 늦게 이런 내용을 공개하자, 양국이 이란 동결자산의 처리와 관련해 결정적 합의에 도달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란 정부가 공개한 유 대사의 발언도 이런 해석의 근거가 됐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탈퇴한 뒤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복원하면서 한국 은행 2곳에 동결된 이란 자금이 70억달러(약 7조7천억원)에 달한다.

이날 외교부 쪽 설명을 종합하면, 양국이 ‘동의’한 것은 동결된 이란 자금 ‘일부’의 활용 방안에 대한 세부 절차다. 미국 재무부의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송금 자금의 규모와 흐름을 세세히 적시하고 그에 따라 진행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의견 일치를 봤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란이 유엔 총회 투표권을 회복하려면 내야 하는 최소 분담금(1625만달러·약 180억원)을 한국 내 동결자금으로 대납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외교부는 이달 초 “분담금을 (동결자금으로) 낸다는 것은 (미국과) 협의가 끝났고 굉장히 기술적 부분만 협의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 정부 당국자는 “미국 쪽 은행 한 곳과 얘기가 된 것으로 안다. 미국 은행이 (송금 과정 등) 관련 점검을 하고 있다고 한다”고 전했다.

양국은 유엔 분담금 대납 외에도 동결 자금 일부를 스위스 인도적 교역 채널(SHTA)을 통해 전하는 세부안에도 동의했다고 한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란이 생각하지 못했던 방안을 우리가 제시했고 이란이 동의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2월 본격화한 ‘스위스 채널’은 트럼프 행정부의 승인 아래 이란에 인도적 물품을 수출하기 위해 개설된 통로로, 스위스에서 의약품이나 식량 등 인도적 물품을 구매해 이란에 수출하고 대금은 스위스 은행이 보증하는 방식이다. 지금껏 이란 정부는 이 방안에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과의 협의가 필요하지만 스위스 채널을 통해서는 꽤 큰 규모(의 이전)를 생각하고 있다”며 “이란 쪽에서 만족할 만한 액수”라고 설명했다.

이란이 협의 내용을 부풀려 발표한 데 대해 외교부는 다소 어리둥절해 하는 분위기다. 동결자금 이전 문제에서 결정적 변수인 미국과 협의 절차의 필요성을 빼놓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한 정부 당국자는 “이란의 희망사항을 밝힌 것뿐”이라며 “한국과 이란이 의견 일치를 봤더라도 미국의 동의가 없으면 실행이 안 된다. 합의라고 할 수 없고, 잘 안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해 이란이 ‘이란 핵협정’(JCPOA) 복귀를 둘러싸고 미국과 줄다리기를 벌이는 과정 속에서 동결자금 문제를 부각하려는 의도라거나, 6월 대선을 앞두고 온건파로 분류되는 하산 로하니 정부가 성과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지은 기자

 

이란 “한국과 동결 자산 이전·사용 합의”...한국 부인

한국 외교부 관계자 “미국 등 유관국과 협의 통해야”

 

압돌나세르 헴마티 이란중앙은행 총재가 (21일) 유정현 주이란 한국대사를 만나 한국 내 동결자산 이전과 사용 방법에 합의했다며, 이란 정부가 22일 공식 누리집에 공개한 사진. 이란 정부 누리집 갈무리

 

이란 정부가 한국에 동결된 이란 자금의 이전 및 사용과 관련해 한국 정부와 합의했다고 발표했으나, 한국 외교부는 미국 등 유관국과 협의를 거쳐야 한다며 이란의 발표를 부인했다.

이란 정부는 22일 오후(한국시각 22일 밤)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압돌나세르 헴마티 이란중앙은행 총재가 전날 유정현 주이란 한국대사를 만나, 한국 내 동결 자산의 이전과 사용 방법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란 정부는 “(테헤란) 한국 대사관의 요청으로 이뤄진 이날 회담에서 이란의 (동결) 자산을 이란이 원하는 곳으로 이전하는 데 합의했으며, 이란중앙은행이 서울에 이전을 원하는 자산의 액수와 송금 은행을 통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란 정부는 또 “한국 (유정현) 대사가 ‘한국은 이란이 한국 내 모든 자산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고, ‘여기에는 어떤 제한이나 제약이 없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이란 정부의 발표를 보면, 헴마티 총재는 (이란 자산의 동결 해제 문제와 관련한) 서울의 접근 태도 변화를 환영하면서도 “이란은 다른 나라의 태도 변화와 협력 강화를 환영하지만, 이란중앙은행은 한국의 은행들이 지난 몇 년 간 이란과의 협력을 거부한 것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기 위한 법적 절차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 쪽은 이 부정적인 기록을 지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2018년 미국 정부가 이란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린 이후, 한국에서 동결된 이란의 석유 수출 자금은 총 70억 달러(약 7조6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 외교부는 이란 정부의 협상 타결 발표를 부인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날 밤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란의 동결 자금 해제 문제는 미국 등 유관국과의 협의를 통해야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란은 지난달 4일 페르시아만의 환경을 오염시켰다는 이유로 한국케미호와 한국인 5명 등 선원 20명을 억류했고, 한국에 동결된 석유 수출 대금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이란은 지난 2일 선장을 제외한 선원 19명의 억류를 해제하기로 결정했으나, 오염 조사를 위해 선박 억류는 계속한다는 입장이어서 선원들의 귀환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지난 10일 억류됐던 선원 중 처음으로 한국인 한 명이 건강상의 이유로 귀국했다. 전정윤 김지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