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등 매년 600여명 숨져

40~80%가 ‘자연사’…부검 안 이뤄져 법의학적 조사 불발

 

카타르 건설 현장의 외국인 노동자. EPA 연합뉴스

 

2022년 월드컵 개최국 카타르에서 최근 10년 동안 이주노동자 670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카타르는 2010년말 월드컵 개최권을 획득했고, 이후 이주노동자들의 대규모 사망 문제가 지속적으로 논란이 돼 왔으나 별다른 조처를 취하지 않고 있다.

22일(현지시각) 영국 <가디언>은 2010년 12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자체 조사한 결과, 카타르로 이주한 인도, 네팔,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5개국 출신 노동자 중 6751여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인도 출신 노동자가 2711명으로 가장 많았고, 네팔 1641명, 방글라데시 1018명, 파키스탄 824명, 스리랑카 557명이었다. 케냐와 필리핀 등 다른 국가 출신 노동자들은 조사되지 않아, 실제 사망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카타르는 2010년 말 월드컵 유치 뒤 축구장 7개를 새로 만들고, 공항과 고속도로, 호텔, 신도시 등 수십 개의 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를 짓는 데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출신 200만명의 이주노동자가 동원됐다. 인구 290여만명인 카타르에는 정식 시민권자가 40여만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외국 출신 체류자들이다. 카타르 인구는 2000년 59만명에서, 2015년 203만명으로 늘었고, 현재 290만명까지 증가했다.

이주노동자의 대규모 사망은 일찍부터 논란이 됐다. 월드컵 유치 2년째인 2014년 초 인도와 네팔 출신 노동자가 각각 900여명, 300여명 사망해 ‘개최권 박탈’ 주장까지 나왔고, 2019년에는 인도·네팔 출신 사망자가 2700여명 사망한 것으로 조사돼 논란이 됐다.

카타르 정부는 이주노동자의 규모에 비례해 사망자가 발생하며, 사망자 중에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도 포함돼 있다는 입장이다. 카타르 정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우리는 모든 죽음을 막으려 노력하고 있다”며 “이주노동자에게 1급 의료보호를 제공하고 있고, 제도 개선을 통해 사망률이 줄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카타르 정부는 노동자 사망과 관련해 사인 등을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고, 그나마도 투명하게 밝히거나 공유하지 않는다. 노동자를 보낸 국가도 마찬가지로 정보 공개에 소극적이다.

부실하게나마 공개된 자료를 보면 사망자의 40~80%는 사인이 심정지나 호흡 장애로 인한 ‘자연사’로 기록되지만, 정확한 사인을 알기 위한 부검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인도 출신의 경우 80%가 자연사였고, 작업장 사고는 4%, 도로사고 10%, 자살 6%였다. 네팔 출신은 48%가 자연사였고, 작업장 사고 9%, 도로사고 16% 등이었다.

전문가들은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20~50대인데, 이 나잇대 노동자들은 심정지 등으로 인한 자연사가 많지 않다고 지적한다. 한 낮에 섭씨 50도를 넘는 작업 현장에서 별다른 보호장비 없이 10시간 이상 일하다 사망한 경우, 이를 자연사라고 부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국제 인권단체 등은 2014년부터 자연사의 경우 부검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으나, 카타르 정부는 7년째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멀리 떨어진 유가족의 동의를 얻기 어렵고, 종교적 이유 등으로 부검을 꺼린다는 것이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트워치의 히바 자야딘 연구원은 “카타르 당국에 돌연사 등 의심스러운 모든 죽음에 대해 법의학적 조사를 할 수 있도록 법률 개정을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현준 기자


이주 노동자들 피로 짓는 카타르의 월드컵 경기장

‘카팔라’ 족쇄 묶인 이주노동자,  4년새 인도출신만 1000명 숨져
‘2022 카타르 월드컵’ 유치 뒤 노동착취 참혹…실질적 노예 생활

 

2010년 233명, 2011년 239명, 2012년 237명, 2013년 241명, 2014년 2월 현재 37명…….

카타르 도하 주재 인도대사관이 지난 2월 공개한 카타르내 인도인 사망자 숫자다. 인도대사관은 카타르에 거주하는 인도인이 30만명에 이르는 점을 고려할 때 사망 규모는 ‘통상적 수준’이라고 주장했지만, 국제 인권·노동단체는 이주노동자의 ‘죽음의 행렬’을 보여주는 수치라고 말한다. 카타르내 인도인의 절대 다수는 젊고 건강한 남성 이주노동자들이다. <가디언>은 카타르 통계청 자료 등을 인용해 2010년을 기준으로 15살 이상의 카타르 이주노동자 가운데 남성이 89%이고, 전체 이주노동자 중 15~44살 연령대의 청장년층이 85%라고 전했다.

2010년 12월 월드컵 개최권을 따낸 전후로 카타르 정부는 경기장과 인프라 공사 등 초대형 건설 프로젝트를 무더기로 쏟아냈다. 그리고 4년 남짓한 시간이 흐르는 동안 대체로 젊고 건장한 인도 노동자 1000명 가량이 숨졌다. 카타르에서 일하던 네팔 노동자도 2012년과 2013년에만 380명이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노동조합연맹(ITUC) 등은 이들 사망자 가운데 대다수를 건설 노동자로 추정한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인골탑’ 아래서 열린다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카타르 인구는 2001년만 해도 60만명에 불과했는데, 10여년 만에 3배 이상 불어났다. 2000년대 들어 자원개발·건설 사업 규모를 늘린데다 월드컵을 유치한 뒤 초대형 건설 프로젝트들을 추진하면서 이주노동자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카타르 통계청은 2013년 인구를 190만명으로 추정했는데, 이 가운데 카타르 국적자는 15%도 안되는 25만명 수준이다. 160만명 이상이 외국인이고, 거의 대부분이 이주노동자다. <뉴욕타임스>는 “카타르 국적자 한명당 거의 5~6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있는 셈”이라고 전했다. 이주노동자는 주로 남아시아 빈곤국 출신인데 인도, 파키스탄, 네팔, 이란, 필리핀, 이집트, 스리랑카 등의 순으로 많다.

문제는 이주노동자 절대 다수가 ‘카팔라 시스템’(후원자 제도)이라는 중동 지역 특유의 족쇄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카팔라는 건설·가사도우미 등 비숙련 이주노동자에게 주로 적용하는 제도로, 노동자의 지위를 사실상 고용주의 ‘노예’ 신분으로 떨어뜨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카타르뿐만 아니라 사우디아라비아·레바논·아랍에미리트·바레인 등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들에서 뿌리내리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카타르가 최악이라는 평을 듣는다. 예컨대 이주노동자가 되려면 반드시 카타르 국적자인 고용주가 스폰서가 돼야 한다. 일단 입국하면 고용주의 허가 없이는 일터를 바꿀 수 없다. 심지어 고용주의 허가 없이는 출국도 불가능하다. 게다가 카타르 고용주를 연결해주는 인력중개업체에 3~6개월치 월급을 뜯기는 조건으로 빚을 지고 오는 사례도 흔하다. 이러다 보니 거짓 계약조건에 속아서 입국했거나 고용주가 계약조건을 지키지 않아도 되돌아갈 길마저 막혀 있는 경우도 많다. <뉴욕타임스>는 “테레사 단테스라는 29살의 필리핀 여성은 입국 전에 가사도우미로 매달 400달러를 받고 식사와 방도 따로 준다고 해서 계약서에 서명했지만, 막상 입국해 보니 고용주는 250달러밖에 주지 않았다”며 “식사도 하루에 한끼 집주인 가족이 먹다 남은 것을 줬고, 계약과 달리 고용주의 장모와 여동생 집까지 청소할 것을 요구받았다”고 전했다.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중 하나인 알 와크라 스타디움

건설 노동자들은 6월만 넘으면 녹아내릴 듯 뜨거운 사막 기후 속에서 건설 현장에 투입되지만 노동환경은 참혹하다. 카타르 노동법상 하루 10시간 이상 노동은 안되고, 기온이 최고 50℃까지 치솟는 여름철 오전 11시30분부터 오후 3시 사이에는 일을 시키는 게 금지돼 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이런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한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주노동자들이 50℃를 오르내리는 한낮에도 쉬지 못하면서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고 있고, 안전모 같은 기본 보호장비조차 지급받지 못하는 사례가 허다하다고 전했다. 건설 노동자의 임금은 한달에 150~450달러에 불과하지만, 이마저도 체불되거나 아예 떼먹히는 사례도 많다. 노동자 기숙사에 에어컨은 없거나 대부분 고장나 있고, 전기나 수돗물조차 들어오지 않는 열악한 곳들도 발견됐다. 이러다 보니 젊고 건강한 노동자도 건강이 악화하면서 툭하면 추락 사고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카팔라 족쇄에 묶인 노동자들은 저항할 길이 없다.

카타르 월드컵을 앞두고 최근 이주노동자의 떼죽음에 대한 국제사회의 논란이 커지자 카타르 정부도 제도 개선 뜻을 밝히긴 했다. 하지만 카타르의 노동인권 의식은 워낙 낮다. 카타르에 노동법이 생긴 건 2000년대 중반의 일이고, 최저임금제도도 없다. <뉴욕타임스>는 카타르대학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계약서를 쓴 노동자의 4분의 1도 계약서 내용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했고, 275달러 미만의 월급을 받는 노동자의 42%는 계약서가 지켜지지 않았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부유한 소수의 카타르 국적자가 저임금으로 이주노동자들을 노예처럼 고용하고 편히 사는 데 익숙해진 국민 의식도 심각한 걸림돌이다. 카타르의 1인당 총생산(GDP)은 2011년 기준으로 9만8900달러다. 하지만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저소득층인 점을 고려하면 카타르 국적자의 1인당 총생산은 69만달러에 이른다. 카타르인 가구의 95%는 가사도우미를 고용하고, 절반 이상이 두명 이상의 가사도우미를 둔다. 카타르인 10명 가운데 9명은 카팔라 시스템이 약화되는 걸 원치 않는다. 카타르 노동부 관계자는 <뉴욕타임스>에 “카타르 시스템은 변화해야 한다”면서도 “개혁은 천천히 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정세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