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 실험으로 진화 압박 확인…“대어 포획 규제 필요”

 

북반구 고위도 지방에 널리 분포하는 포식 어종인 강꼬치고기. 자연과 달리 낚시는 더 크고 활동적인 개체를 솎아내는 선택 압력으로 작용한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제공

 

낚시꾼은 크고 힘 좋은 물고기를 노린다. 낚은 뒤 놓아주지 않는 방식의 낚시를 계속한다면 그 저수지의 물고기는 더 작고 소극적이어서 낚시에 잘 안 걸리는 형태와 습성으로 바뀔까.

실제로 과학자들이 작은 호수에서 자연 상태로 내버려두었을 때와 낚시를 했을 때 물고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여러 해에 걸쳐 조사했다. 또 물고기에 소형 원격추적장치를 매달아 행동 방식을 알아봤다.

크리스토퍼 몽크 독일 라이프니츠 담수 생태학 및 내수면 어업 연구소 박사 등 국제 연구진은 24일 과학저널 ‘미 국립학술원 회보(PNAS)’에 실린 논문에 이런 현장연구 결과를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낚시는 기본적으로 더 크고 활동적인 개체를 제거하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물고기에게 우호적인 선택으로 작용한다”며 “낚시를 많이 한 곳에서는 더 작고 비활동적이며 소극적이고 낚시에 잘 안 걸리는 물고기가 늘어난다”고 밝혔다.

다윈의 진화론은 이른봄 잔털로 추위를 막는 야생화처럼 자연의 압력에 적응해 생물이 바뀌어 나간다고 설명한다. 잔털을 갖춘 야생화는 그렇지 않은 식물보다 자연의 선택을 받아 번성한다.

연구자들은 낚시도 자연의 선택과 비슷한 압력으로 작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에 나섰다. 독일 브란덴부르크의 면적 25㏊인 소형 호수에서 자연 선택과 낚시 선택의 차이를 4년 동안 조사했다.

낚시에 걸린 강꼬치고기를 건져내는 낚시꾼. 5년 동안의 현장 실험에서 낚시의 영향이 분명해졌다. 필립 차플라 제공

실험 대상은 북반구 고위도 지방에 널리 분포하는 포식 어종인 강꼬치고기였고 물고기의 유전자를 분석해 어떤 물고기가 얼마나 많은 자손을 남겼는지 측정했다.

그 결과 자연은 예상대로 더 크고 대담한 물고기를 선택해 이들이 더 많은 자손을 남겼다. 나이가 많아 덩치가 클수록, 더 활동적이어서 많이 돌아다니는 물고기일수록 성공적으로 번식했다.

반대로 가짜 미끼에 덤벼들어 낚시에 자주 걸린 물고기는 주로 큰 개체였다. 살아남는 것은 주로 작은 물고기이니 낚시는 작고 소심한 물고기를 선택한 셈이다. 몽크 박사는 “큰 강꼬치고기일수록 새끼를 많이 낳으니 자연 선택은 크게 성장하는 쪽을 향한다. 그러나 낚시는 정반대 쪽으로 작용해 작게 머무는 개체를 선호한다”고 이 연구소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연구자들은 낚시가 진화론의 선택 압력으로 작용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낚시는 물고기의 생존율을 떨어뜨리므로 일찍 성적으로 성숙하는 것이 유리해진다. 성장에 투자해 몸집을 키우는 것보다 조숙해 번식을 서두르는 쪽이 유전자를 후손에 남기는 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또 느리게 성장하는 것도 유력한 전략이 된다.”

낚시는 물고기의 크기뿐 아니라 행동 양식에도 선택 압력을 끼친다. 물고기의 행동을 원격추적한 결과 공격적인 물고기일수록 가짜 미끼를 삼킬 가능성이 컸고 더 많이 돌아다니는 물고기일수록 한 자리에 붙박여 있는 개체보다 낚시를 무는 일이 잦았다.

같은 크기의 물고기라도 덜 활발한 개체일수록 살아남을 확률이 커졌다. 연구자들은 “행동 형질은 일부 유전되기 때문에 낚시는 물고기 집단을 더 소극적이고 덜 활동적이며 결국 점점 잡기 힘들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현상은 나아가 “어획량이 장기적으로 감소하고 우리가 모르는 생태적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고 연구에 참여한 로베르트 아를링하우스 훔볼트대 교수는 말했다.

낚시 압력이 전반적인 어족 자원의 쇠퇴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연구자들은 “전통적인 최소 체장 기준만으로는 안 된다”며 “일정 크기 이하뿐 아니라 일정 크기 이상의 큰 물고기 포획도 규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더 근본적인 대책으로 낚시 제한, 허용 수역 순환, 낚시에 취약한 행동 양식의 물고기가 숨을 수 있는 보호구역 설정 등을 제안했다. 조홍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