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합의·정부 전향적 태도로 4·3특별법 개정안 통과... 의미는?

희생자 위자료 지원, 수형인 명예회복, 추가조사 등 담아
“6개월 진행 정부 용역 중요”… “과거사 해결 모델 돼야”

 

한국 현대사 최대의 비극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제주4·3 희생자들에 대한 배·보상 성격의 위자료 지원 등을 담은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이 지난 26일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번 개정안 국회 통과는 김대중 정부 시절 4·3특별법 제정, 노무현 정부 ‘제주4·3 진상조사보고서’ 발간과 대통령의 사과에 이은 4·3 문제 해결을 위한 커다란 진전으로 평가된다.

28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만난 오임종 제주4·3유족회장은 “이번 4·3특별법 개정안 국회 통과로 대한민국이 모범적인 인권국가로 거듭날 것이다. 4·3 영령님들을 해원해드리게 돼 눈물이 난다. 이제 진정한 명예회복을 위한 걸음이 시작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제주4·3평화기념관 내외벽에 4·3특별법 개정안 국회 통과를 환영하는 대형 펼침막이 내걸렸다.

이번 전부 개정안에는 그동안 유족들의 숙원이었던 희생자 배·보상, 군사재판과 일반재판 수형자 재심을 통한 명예회복, 트라우마센터 설립 등 4·3 미해결 과제들이 포함됐다.

지난 20대 국회에서도 4·3특별법 개정은 논의됐지만, 희생자 배·보상과 군사재판의 무효화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정부는 4·3희생자 약 1만5천명에게 다른 과거사 사건에 적용된 수준의 배·보상금을 지급할 경우 1조3천억원 이상 재원이 필요하다며 난색했고, 4·3 당시 ‘군사재판의 무효화’도 사법 판단을 입법부가 무효로 하게 되면 사법체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며 반대했다.

2019년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 참석한 한 유족이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각명비 앞에서 절을 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제주4·3의 완전한 해결’을 내걸었고,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3추념식에서 정치권과 국회에 4·3특별법 개정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당부하면서 개정안 논의에 물꼬를 텄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만나 협조를 당부하고,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은 ‘군사재판 무효화’ 대신 ‘직권 재심’이라는 대안을 찾으면서 논의가 급진전해 여야 합의를 통한 국회 통과라는 결실을 맺게 됐다.

개정안은 국가가 희생자로 결정된 사람에게 위자료 등 특별한 지원을 강구하며, 필요한 기준을 마련하도록 했다. 또 이를 위해 국가는 위자료 등 재정지원을 위한 연구용역을 수행하고, 지원방안 마련을 부대 의견으로 달았다. 앞으로 6개월 동안 정부 용역이 실시된다.

유족들이 제주4·3평화공원 내 위패봉안실에서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위패를 찾고 있다.

수형인들 명예회복과 관련해서는 재심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총리실 산하 제주4·3위원회가 직권 재심 또는 일괄 재심을 법무부에 권고해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추가 진상조사와 4·3트라우마 치유사업도 포함됐다.

양조훈 4·3평화재단 이사장은 “여야 합의로 통과된 데 대해 큰 의미를 두고 싶다. 배·보상과 수형인 명예회복 문제는 큰 산을 넘는 것이나 다름없다. 4·3의 완전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허영선 제주4·3연구소장도 “우리나라의 다른 과거사 해결의 전범을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 6개월 동안의 용역이 4·3 문제 해결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이날 현재 4·3위원회가 결정한 희생자는 1만4533명, 유족은 8만452명이다. 허호준 기자

 

2000년 4·3특별법 제정 이후 21년 만에 전부 개정
희생자 위자료 지원·군사재판 수형자 무효화 조치

 

제주4·3사건 특별법 개정안이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고 있다.

 

제주4·3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제주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26일 오후 국회를 통과했다. 4·3 사건 발생 73년 만에, 제주4·3특별법이 제정된 지 21년 만에 4·3 문제 ‘완전 해결’의 9부 능선을 넘었다는 평이 나온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어 제주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을 재석의원 229명 중 찬성 199명, 반대 5명, 기권 25명으로 통과시켰다. 이번 전부 개정안 통과는 1999년 12월 김대중 정부에서 4·3특별법 국회 통과 이후 가장 의미 있는 4·3 문제 해결의 진전으로 받아들여진다.

제주4·3특별법은 2000년 1월 제정·공포됐으며,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발간되고, 대통령의 공식 사과 등이 있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도 2차례나 추념식에 참석했으며, 사과와 함께 희생자 및 유족 지원 등을 약속한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제주4·3 60주년 추념식에 참석해달라는 요구를 거부했으며, 박근혜 대통령도 4월3일을 국가추념일로 지정했을 뿐 추념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제주4·3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26일 오후 국회 제384회 임시회 제7차 본회의에서 찬성 199명, 반대 5명, 기권 25명으로 통과됐다.

개정안은 국가가 희생자료 결정된 사람에 대해 위자료 등의 특별한 지원을 강구하고, 필요한 기준을 마련토록 했다. 또 4·3 당시 수형 생활을 한 이들의 명예회복과 관련해 4·3 희생자에 대한 특별재심 규정을 신설하고, 위원회가 직권으로 재심 청구를 법무부장관에게 권고할 수 있도록 해 명예회복의 길을 열었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와 함께 추가 진상조사, 희생자 및 유족의 신체적, 정신적 피해 회복을 위해 4·3트라우마 치유사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 정부가 수행할 희생자들에 대한 위자료 지원과 수형인들에 대한 일괄 재심, 추가 진상조사 등이 과제로 남게 됐다.

제주4·3유족회와 제주도의회, 4·3 관련 단체들은 이번 전부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위해 국회 앞과 제주도내 주요 도로에서 손팻말 시위 등을 벌여왔다.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전국시·도의회의장협의회 등은 공동건의문과 결의안 채택을 통해 힘을 보탰다.

이날 전부 개정안 처리 현장에는 원희룡 지사와 좌남수 도의장을 비롯한 도의원들과 4·3관련 단체 관계자들이 국회를 찾아 현장을 지켜봤다. 전부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제주시 을)과 같은 당 소속 제주지역 송재호·위성곤 의원을 비롯한 원희룡 지사와 4·3유족회와 관련 단체 관계자들은 이날 오후 4시 국회 본청 앞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이번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환영했다.

개정안을 제안 설명한 오영훈 의원은 “오랜 세월 동안 희생자와 유족들이 마음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다. 73주년 제주4·3 추념식 전에 전부 개정안이 통과돼 기쁘다”고 말했다.

원희룡 지사는 “4·3특별법 제정까지 52년, 또 한 걸음 내딛는데 21년의 세월이 걸렸다. 우리가 만들어 온 이 길이 4·3의 완전한 해결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제주도교육청, 제주도의회, 4·3평화재단, 4·3연구소 등은 일제히 논평과 성명을 내고 국회가 여야 합의로 4·3특별법을 통과시킨 데 대해 적극적으로 환영했다. 4·3연구소 등 관련 단체들은 “위자료 지원을 위한 정부의 용역과 후속 조치가 올바로게 진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오임종 4·3유족회장은 “이번 개정안 통과로 4·3 영령님들을 해원해 드릴 수 있게 돼 눈물이 난다. 국가가 잘못된 공권력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면서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과 명예회복의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허호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