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여권 단일후보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왼쪽)과 야권 단일후보로 국민의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맞붙게 됐다.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보수 야권 단일후보로 확정됐다. 이로써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오 후보 간 여야 맞대결이 완성됐다. 국민의힘은 이번 선거에 승리해 정권교체로 가는 길을 열겠다고 다짐했고, 민주당은 오 후보의 서울시장 성과를 문제 삼으며 ‘낡고 실패한 시장’과의 한판 승부를 별렀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은 23일 두 후보의 경쟁력과 적합도를 묻는 단일화 여론조사를 벌인 결과 오 후보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누르고 단일후보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오 후보가 당내 경선에서 나경원 전 의원 등을 누른 뒤 보수 지지층이 제1야당 후보에 결집한 흐름이 이번 승리의 요인으로 분석된다.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안 후보는 이번엔 단일화 문턱에 걸려 본선 출마를 접게 됐다. 공직선거법 규정에 따라 두 후보의 구체적인 득표율은 공개되지 않았다.

오 후보는 이날 최종 야권 단일후보 발표 직후 연 기자회견에서 “저는 단일화로 정권을 심판하고 정권교체의 길을 활짝 열라는 시민 여러분의 준엄한 명령을 반드시 받들겠다”고 밝혔다. 또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 무산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일을 떠올리며 “지난 10년을 무거운 심정으로 살았다. 가슴 한켠에 자리한 무거운 돌덩이를 이제 조금은 걷어내고 다시 뛰는 서울시로 보답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성원해달라”고 했다.

안철수 후보도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서울시민 여러분의 선택을 존중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며 “야권의 승리를 위해 힘껏 힘을 보태겠다. 국민께서 바라시는 정권교체의 교두보를 함께 놓아가겠다”고 밝혔다. 안 후보는 앞으로 오 후보 쪽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지원에 나설 예정이다. 오 후보와 안 후보는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누가 이기든 승리한 후보의 공동선대위원장을 맡고, 후보 간 정책을 공유하는 등 공조를 이어가며 궁극적으로는 서울시 공동운영에 합의한 바 있다.

민주당은 ‘서울의 미래 박영선’과 ‘낡고 실패한 전직 시장’ 구도를 짰다. 박 후보는 이날 서울 양천구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한국기자협회 초청 토론회에서 오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확정된 데 대해 “예상했던 일이라 크게 의미 두진 않는다”며 “엠비(MB·이명박 전 대통령)와 똑 닮은 후보가 되어서 두손을 불끈 쥐게 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이어 “상대 후보는 조건부 출마부터 시작해 계속해서 말을 바꾸고 있고, 콩밭에서 다른 일을 하려다가 그 일이 안 되니까 서울로 돌아온 재탕, 삼탕 후보”라며 “시대는 새로운 서울시장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재보선 선거운동은 25일부터 시작되며 사전투표는 다음달 2~3일 실시된다. 서영지 장나래 기자

 

민주, 오세훈에 날선 성명 8개…“미래와 과거의 대결” 공세

 "서울시 나눠먹기" 인물 구도 부각 · 지지층 결집 공들이기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왼쪽)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서울시당 대회의실에서 열린 ‘박영선 캠프 2030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에서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야권 단일후보로 결정된 23일,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 쪽은 오 후보를 비난하는 논평 8개를 무더기로 쏟아냈다. 야권 단일화 과정 자체를 공격하는 “‘서울시 나눠먹기 단일화’의 커튼콜, 관객은 외면할 뿐이다”, 무상급식에 반대했던 경력을 지적하는 “낡은 행정의 달인 오 후보는 보육공약을 낼 자격이 없다”, 내곡동 땅 보상과 관련한 “‘도돌이표 거짓말’을 멈춰라” 등 ‘네거티브 패키지’였다. 박 후보는 남편 명의로 도쿄에 아파트를 구매한 것을 놓고 ‘진정한 토착왜구’, ‘야스쿠니 뷰’ 등의 표현으로 비난했던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 등을 공직선거법 위반 및 모욕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민주당의 이런 날 선 반응엔 위기감이 배어 있다. 정권심판론 확산으로 한층 불리해진 여론 지형 속에서 제1야당 소속인 오 후보와 일대일로 겨뤄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실제 민주당 내부에선 오 후보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보다 더 ‘벅찬 상대’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단 국민의힘은 소속 정당의 오 후보로 단일화가 이뤄짐으로써 거부감 없이 조직력을 총동원할 조건이 갖춰졌다. 102석을 갖춘 제1야당 국민의힘은 원내 3석인 국민의당보다 인적 네트워크와 물리적 기반이 단연 월등하다. 더욱이 오 후보는 출마 선언 이후 내내 여론조사에서 고전하다 이달 초 당내 경선에서 나경원 후보를 꺾으며 이변을 일으켰고, 이번에도 대선 주자급인 안 후보를 물리침으로써 상승 흐름을 굳혔다.

컨벤션 효과를 고스란히 거둘 수 있는 상황이다. 박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오 후보의 확장성을 강점으로 꼽았다. 그는 “오 후보는 그동안 여론조사에서도 국민의힘 다른 후보보다 중도층의 지지를 많이 받았다. 안 후보와 단일화하면서 그 효과가 더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재선 경력이 있는 오 후보를 경쟁자로 맞이한 민주당은 ‘과거와 미래의 대결’을 내세우며 ‘인물 구도’를 부각시켰다. 박 후보는 이날 오 후보로 야권 단일화가 이뤄진 데 대해 입장을 묻자 “구도 자체가 서울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박영선 시장이냐, 낡고 실패한 시장이냐의 싸움”이라며 “특히 오 후보는 무상급식으로 아이들 차별하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낡은 사고를 계속한다”고 말했다. 또 “광화문광장, 세빛둥둥섬 이런 것은 서울시민과 공감대를 형성해서 한 것이 아니고 전시행정을 한 것”이라며 “서울시민들이 원하는 혁신과 개혁을 이룰 후보가 누구겠냐”고 했다.

서울 지역의 한 민주당 의원은 “지금까지는 보수 야권 단일화 이슈가 박 후보를 덮고 있었는데, 이게 정리되면서 인물 구도가 설정됐다. 오 후보는 2011년 서울시장에서 물러난 뒤 10년간 정치권 외곽에서 떠돌았고, 박 후보는 최근까지 국회의원,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을 하면서 달려왔다. 박 후보의 성공과 오 후보의 실패를 부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핵심 지지층 결집에도 더욱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 캠프는 이해찬 전 대표 및 문재인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인사들을 더 많이 포진시킬 계획이다. 박 후보 선대위의 또 다른 관계자는 “박 후보가 오늘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를 방문했던 이유도 범여권 응집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우리 진영이 총동원되고 있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안철수 ‘제3세력 한계’ 절감…야권 재편과정 재기 노릴듯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후보가 2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회견장을 나서고 있다.

 

2017년 대선 패배 뒤 줄곧 내리막이다. 체급을 낮춰 재도전한 서울시장의 꿈마저 신기루처럼 날아가버렸다. 2~3주 전만 해도 당선이 가장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였기에 단일화 레이스 막판에 허용한 역전극은 더 쓰라리다. 이제 동지는 얼마 없고, 그의 곁엔 해지고 빛바랜 ‘새정치’의 깃발만 나부낀다. 정치인 안철수에게, 4·7 재보선 이후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동지는 얼마 없고, ‘새정치’ 낡은 깃발만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후보는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단일후보로 확정된 뒤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많은 분이 야권의 서울시장 단일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한국 정치가 바뀔 수 있단 희망 보셨을 거라 확신한다. 서울시장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만, 저의 꿈과 각오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기성의 낡은 정치를 이겨내고, 새로운 정치로 대한민국을 바꾸겠다는 저 안철수의 전진은 외롭고 힘들더라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12월20일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한 안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으며 당선권에 근접했다. 지난 1일 금태섭 전 의원과의 ‘제3지대’ 단일화에서 승리한 뒤 서울시장이란 최종 목적지에 한 걸음 더 다가갔지만, 제1야당 국민의힘과의 ‘두 번째 단일화’에선 패배했다. ‘윤석열 파동’과 ‘엘에이치 투기 스캔들’을 거치며 격화된 정권심판론이 그에겐 도리어 악재가 됐다. 문재인 정권 심판을 위해선 힘있는 제1야당 후보를 서울시장에 당선시켜야 한다는 심리가 야권 지지층에 확산된 결과였다.

국민의당과 안 후보로선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오 후보가 상승세를 타는 동안, 단일화 협상에 시간을 허비하며 ‘골든 크로스’(지지율 역전)를 허용한 게 뼈아픈 패착이었다. 티브이(TV) 토론과 정책 발표 등에서도 제1야당의 조직력을 넘어설 개인기를 보이는 데 실패했다는 평가도 있다.

오세훈 당선 땐 제3지대 입지 급격히 축소

안 후보의 서울시장 도전은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두번째다. 앞서 그는 2011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사퇴로 치러진 재보궐 선거에서 유력 후보로 거론됐지만,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하고 출마하지 않았다. 2018년에는 바른미래당 후보로 서울시장 선거에 나와 완주했지만, 박원순 시장과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에 밀려 3위에 그쳤다. 그 사이 그는 유력 대선주자이자 한국 정치를 혁신할 ‘새정치의 아이콘’에서 중도와 보수에 양다리를 걸친 ‘이만저만한’ 차기 주자로 위상이 하락했다.

안 후보는 일단 단일후보가 된 오 후보의 선거 운동을 돕는 데 주력한 뒤 야권 재편과 2022년 대선 준비 과정에서 존재감 회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선 이번 단일화 과정에서 제3지대의 한계를 절감한 안 후보가 결국엔 약속했던 합당을 통해 제1야당에 편입하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 다수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단일 후보가 되는지와 상관없이 국민의힘과 합당을 추진한다고 밝혔기 때문에 이를 피한다면 더 옹색해질 것”이라며 “윤석열 전 검찰총장 등과 제3지대를 도모하는 경로도 있겠지만 결국 자의적인 결정보단 환경에 따라 움직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물론 단일화 과정에서 오 후보와 박빙 승부를 벌였고,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적지 않은 지지율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그의 대선주자로서의 가치가 죽지 않았다는 시각도 있다. 안 후보는 이날 결과 발표 전 <시비에스>(CBS)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제가 정말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는 것이 내년 대선에서의 정권교체다. 그래서 저는 어떤 역할을 하든 대선에서 야당 후보가 당선되는 데 모든 역할을 다할 생각”이라고 했다. 서울시장이 안 된 만큼, 그가 생각하는 ‘역할’에서 ‘대선 후보’는 상수라고 보는 게 상식이다.

그의 구상에서 ‘대선후보’는 여전히 상수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국민의힘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해 ‘탄핵정당’의 꼬리표를 떼어내면, 가뜩이나 좁았던 제3지대의 입지는 더 축소될 수밖에 없다”며 “이런 상황들을 고려하면, 안철수 대표는 국민의힘 안으로 들어가 대선을 준비하며 재기를 노릴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김미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