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한반도 평화 위협 받았을 때
남북미 대화 통한 국면전환 상기시켜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왼쪽)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과 만나 접견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을 처음으로 만난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를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을 만나 “대통령에 취임한 2017년도의 한반도 상황은 전쟁의 먹구름이 가득 덮고 있었다고 할 정도로 평화가 위협받는 상황이었다”며 “다행히 양국이 잘 협력해서 지금까지 평화를 잘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언급한 ‘전쟁의 먹구름’과 ‘평화가 위협받는 상황’ 등은 취임 첫해였던 2017년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으로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에 갈등이 격화되며 한반도 평화가 위태로웠던 상황을 가리킨다. 문 대통령이 4년 전 상황을 언급한 것은 한-미 간 협력 속에 위기를 수습하고 싱가포르 선언 등을 이끌어낸 점을 상기시키려는 뜻으로 보인다. 이에 블링컨 장관은 “미국 쪽은 대북정책 검토 과정에서 열린 자세로 동맹국인 한국과 계속해서 긴밀히 소통해나가겠다고 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또 바이든 대통령은 4월 화상으로 개최될 예정인 기후정상회의에 문 대통령의 참여를 고대한다고 블링컨 장관은 전했다. 블링컨, 오스틴 두 장관은 이번 방한이 “바이든 대통령의 직접적인 결심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접견에서 미얀마 사태 등에 대해서도 의견을 나눴다. 문 대통령은 “40년 전 광주 민주화운동 등 군부 독재에 저항하며 민주주의를 이룩한 경험이 있는 우리 국민들로서는 미얀마 국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에 더욱 절실히 공감하고 있다”며 “미얀마 국민들의 평화적인 시위에 대한 폭력적 진압과 자유에 대한 억압을 강력히 규탄하는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 등 미국 쪽은 한국 정부의 관여에 대해 감사하다고 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또 문 대통령은 미국 애틀랜타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총격 사건에 대해 안타까움과 피해자 가족에 대한 깊은 위로의 뜻을 전했고, 한국계 희생자에 대한 미국 쪽의 애도 메시지에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이완 기자

 

블링컨 ‘싱가포르 정상회담’ 언급 않아…한-미, 대북·대중 시각차

   정의용 “북미협상 재개 희망”에도 블링컨 “북 핵위협 감축” 더 강조
  ‘중국 역할론’ 꺼내 다자접근 선호... 한미 연합훈련 축소 반대 분명히

 

로버트 랩슨 주한 미국대사 대리와 정은보 외교부 한미 방위비분담금 협상대사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가서명식을 진행한 가운데 함께 참석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

 

“바이든 신행정부의 대북 접촉 노력을 지지한다. 북-미 간에 비핵화 협상이 조속히 재개되길 희망한다.”(정의용 외교부 장관)

“미국과 동맹에 대한 북의 미사일·핵 위협을 감축시키고 북한 주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조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뒤 처음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의는 향후 미국 정부의 대북·대중 정책 방향을 확인해볼 수 있는 중요 시험대였다. 미국의 외교·국방 정책을 좌우하는 블링컨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어떤 대북·대중 메시지를 쏟아내는지에 따라 내년 5월 임기를 마치는 문재인 정부는 물론 차기 정권의 대외정책이 큰 제약을 받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7일 한-미 외교장관 회담, 18일 2+2 회의 뒤 이뤄진 기자회견에서 나온 미국 쪽 발언을 모아보면 한국 정부의 지향과 ‘적잖은 괴리’가 확인된다.

 2+2 회의 뒤 회견에 나선 두 나라 장관들은 다 같이 ‘철통같은 한-미 동맹’의 의미를 강조했지만 적잖은 부분에서 이견이 드러났다. 블링컨 장관은 한-미 동맹에 대해 “동북아, 인도·태평양 및 세계의 평화 안보 및 번영의 핵심축”이라는 입장을 다시 강조하며 “우린 동맹을 재확인할 뿐 아니라 더 발전시키기 위해 왔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두 핵심 관료가 첫 순방지로 한국을 택할 만큼 미국이 한-미 동맹을 중요시한다는 점을 일깨우며, ‘중국 견제’로 요약되는 미국의 외교정책에 더 적극적으로 협력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다만, 정 장관은 미국 등 4개국 안보 협력체인 쿼드에 대해선 “직접적 논의가 없었다”고 확인했다.

초미의 관심사인 대북정책과 관련해 한국 정부는 2018년 6월12일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기초해 조속히 북-미 대화를 시작하면 좋겠다는 뜻을 거듭 밝혀왔다. 미국의 두 장관은 “북핵 문제는 시급한 사안이며 양국 간 긴밀한 공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유산인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대해선 방한 기간 내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블링컨 장관은 싱가포르 공동선언에 포함된 ‘한반도 비핵화’ 대신 ‘북한 비핵화’란 용어를 고수했다.

이에 반해 정 장관은 17·18일 이틀 연속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진전을 위해 계속 협력해 나갈 것”이라며 꼬박꼬박 ‘한반도 비핵화’란 용어를 사용했다. 결국 공동선언에 한반도 비핵화란 용어는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한반도 비핵화라 하면 주한 미군기지와 한국에 들여오는 전략 자산도 확인해야 하니 (미국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은 또 “연합훈련·연습을 통해 모든 공동 위협에 맞서는 연합준비태세를 유지”한다고 선언하며, 트럼프 행정부 때 북-미 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연기 또는 축소했던 연합훈련을 원래대로 시행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 대신 강조한 것은 북한의 ‘인권 문제’와 북핵 문제 대응을 위한 ‘다자적 접근’이었다. 블링컨 장관은 17일은 물론 18일에도 “북 주민들이 압제적인 정권 아래서 인권유린을 당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더라도 트럼프 행정부 때와 달리 인권을 문제 삼으며 고강도 압박을 할 것임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블링컨 장관은 이어 북핵 문제 해결에 한·일 등 동맹국뿐 아니라 “중국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는 견해를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북-미 간 양자 협상이 추진되며 모습을 감췄던 ‘중국 역할론’을 재차 끄집어낸 것이다.

또 다른 갈등 지점은 중국 문제였다. 블링컨 장관은 17일 “우리는 세계에서 민주주의의 위험한 침식을 목격하고 있다”며 중국이 홍콩·대만·신장·티베트·남중국해 등에서 벌이고 있는 ‘강압적 태도’를 강도 높은 어조로 언급했고, 18일에도 “우리는 중국의 공격적이고 권위적인 행동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 논의했다. 세계적인 민주주의 후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반민주주의에 대항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18일 오후 <연합뉴스티브이(TV)>에 출연해 “미-중 간 하나를 택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그런 접근법은 불가능하다. 미·중이 우리한테 그런 요구를 해 온 적 없다”고 말했다. 길윤형 김지은 기자


중 관영매체 “한국, 미국의 중국 봉쇄전략에서 약한 고리”

   “중국 위협론 한국에 안먹힐 것” 경제·정치적으로 긴밀히 연계
    경기회복·남북관계 등 중국 도움 필요 “중 봉쇄 거리두기 가능”

 

동맹국을 앞세워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의 봉쇄 전략에서 한국이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중국 쪽에서 나왔다. 한-미 외교 국방장관(2+2) 회담 뒤 발표된 공동성명 내용과 맞물려 눈길을 끈다.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18일 “미국이 부풀리고 있는 ‘중국 위협론’이 일본과 달리 한국에겐 먹혀들지 않을 것”이라며 “경제·정치적으로 중국과 긴밀히 연계된 한국은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 봉쇄를 위한 아시아 동맹과 거리 두기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이어 신문은 “한국의 이같은 움직임은 반중국 봉쇄 전략에 적극 가담할 뜻을 드러낸 일본과 대조된다”며 “한국은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에서 ‘약한 고리’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즈용 푸단대 조선한국연구센터 주임은 신문에 “한국 입장에서 볼 때, 바이든 행정부의 아시아 전략은 여전히 ‘미국 우선주의’를 중심에 두고 있다”며 “동북아에서 미국의 이익만 추구할 뿐, 한국의 이익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한국은 여러 구조적 딜레마에 직면해 있으며, 침체된 경기 회복과 남북관계 복원 등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중국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쪽 전문가들이 한-미 2+2 회담에서 중국 관련 문제가 아닌 한-미 군사동맹 강화와 북핵 등 한반도 문제가 핵심의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본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실제 이날 회담 뒤 발표된 공동성명을 보면, “역내 안보환경에 대한 점증하는 도전”, “규범에 기초한 국제질서를 훼손하고 불안정하게 하는 모든 행위에 반대” 등의 언급만 있을 뿐 중국은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았다.

다즈강 헤이룽장성 사회과학원 동북아연구소장은 <글로벌 타임스>에 “바이든 정부가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자세를 취하면서 한-미 연합훈련을 부각시킨 것이 한국을 수세적 위치로 내몰았다”며 “이로 인해 한국은 일본과 달리 미국의 대중 포위 전략에서 더욱 거리를 두면서, 한반도 문제 대응과 관련해 중국 쪽으로 좀 더 기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앞서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7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의 대중국 봉쇄 전략에 적극 가담할 뜻을 밝힌 일본을 맹비난했다. 자오 대변인은 “중국의 굴기부흥을 억제하겠다는 이기적 사익을 얻기위해, 일본은 미국의 전략적 속국을 자처했다”며 “주저없이 신의를 저버렸고, 중-일관계를 파탄시켰으며, 지역 전체의 이익을 팔아넘겼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미-일은 냉전적 사고에 사로잡혀 의도적으로 집단대결을 부추기고 있다”며 “반중국 ‘포위권’을 구축하려는 것은 시대의 조류에 역행하는 처사이며, 지역 내 혼란과 충돌만 불러올 뿐”이라고 덧붙였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