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판사이면서 재판권 행사 방해 등 중대한 범행”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이 2018년 9월12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전·현직 판사들이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사법농단 의혹 관련 사건 가운데 첫 유죄 판결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재판장 윤종섭)는 23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실장)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와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에게는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이규진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2018년 8월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민걸 전 실장과 이규진 전 상임위원은 양 전 대법원장 등과 함께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지위 확인 소송에 개입하고, 상고법원 도입 등 사법정책에 비판적인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려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이규진 전 상임위원은 대법원의 위상을 강화하고 헌법재판소를 견제하기 위해 양 전 대법원장 등과 함께 헌재 파견 법관을 이용해 헌법재판소 내부의 사건 정보와 동향을 수집한 혐의도 받고 있다.
심 전 법원장은 옛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사건 항소심이 법원행정처가 원하는 방향으로 판결될 수 있게 특정 재판부에 배당한 혐의를 받고 있다. 방 전 부장판사는 법원행정처 요구를 받고 자신이 담당하던 옛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 행정소송 사건의 선고 결과와 판결 이유를 누설한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이민걸 전 실장에 대해 “공개적으로 법원행정처가 추진하는 사법정책에 다른 의견을 밝힌다는 이유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주도하던 소모임을 해소시키려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의견에 동의해 (소모임) 중복가입 해소 조치 공지를 게시하게 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규진 전 상임위원에 대해서도 “헌재 파견 법관에게 직무 범위에서 벗어나 헌재 사건 정보와 자료를 전달하게 했고, 사법정책실 심의관에게 정당한 직무 범위에서 벗어나 재판독립에 반하는 위법부당한 보고서를 3차례나 작성·보고하게 했다”며 “이 전 상임위원이 스스로 판사이면서 재판권 행사를 2차례나 방해하는 등 중대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짚었다.
이번 1심 판결은 공소사실 중 상당 부분이 겹치는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임 전 차장 등의 사법농단 관련 남은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와 유해용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각각 무죄를,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과 임성근 전 부장판사는 1심에서 각각 무죄를 선고받았다. 조윤영 신민정 기자
‘사법농단’ 이민걸 · 이규진 유죄…양승태 · 임종헌 재판 영향 줄까
1심, 재판개입 혐의 등 인정, 양승태 재판에도 영향 줄 듯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돼 기소된 전직 판사들이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사법농단 의혹 관련 사건 가운데 첫 유죄 판결이다.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사법농단 의혹 핵심 피고인들과 공모 관계도 상당 부분 인정돼 향후 이들의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재판장 윤종섭)는 23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실장)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와 심상철 전 서울고법원장에게는 각각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가 “기록 검토와 판결서 작성에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애초 지난달 18일 예정이었던 1심 선고를 두 차례 연기한 뒤 내놓은 첫 유죄 판결이다.
재판부는 이민걸 전 실장과 이규진 전 상임위원이 임 전 차장 등과 함께 상고법원 도입 등 사법정책에 비판적인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시키기 위해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자 탈퇴 조처’를 공지하게 한 혐의 등을 인정했다. 또 이규진 전 상임위원이 박 전 처장 등과 함께 헌법재판소의 위상이 높아질 수 있는 한정위헌 취지의 위헌제청 결정을 직권 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로 다시 결정하게 하고, 옛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1심 재판에 개입한 혐의 등도 유죄로 판단했다. 이규진 전 상임위원이 헌법재판소를 견제하기 위해 헌재 파견 법관에게 헌법재판소 내부의 사건 정보와 동향을 수집하게 한 혐의에 대해선 양 전 대법원장, 고영한·박병대 전 처장, 임 전 차장과의 공모 관계를 일부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민걸 전 실장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추진하는 사법정책에 공개적으로 다른 의견을 밝힌다는 이유로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주도하던 소모임을 해소시키려는 임 전 차장의 의견에 동의해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 해소 조치 공지를 게시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규진 전 상임위원에 대해서도 “헌재 파견 법관에게 직무 범위에서 벗어나 헌재 사건 정보와 자료를 전달하게 했고, 사법정책실 심의관에게 정당한 직무 범위에서 벗어나 재판독립에 반하는 위법부당한 보고서를 3차례나 작성·보고하게 했다”며 “이 전 상임위원이 스스로 판사이면서 재판권 행사를 2차례나 방해하는 등 중대한 범행을 저질렀다”고 짚었다.
반면 재판부는 심상철 전 법원장의 무죄를 선고하며 “옛 통진당 국회의원 행정소송 사건 항소심 배당이 이례적으로 이뤄졌다”면서도 “심 전 법원장이 법원행정처가 원하는 방향으로 판결될 수 있게 특정 재판부에 배당하는 데 관여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방 전 부장판사가 법원행정처의 요구를 받고 자신이 담당하던 옛 통진당 비례대표 지방의회의원 행정소송 사건의 선고 결과와 판결 이유를 누설한 혐의에 대해서도 “방 전 부장판사의 의견에 불과해 직무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한편 두 전직 법관에 대한 이번 1심 유죄 판결은 공소사실 중 상당 부분이 겹치는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처장, 임 전 차장 등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양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처장의 재판을 맡은 재판부는 지난달 법원 정기 인사에서 부장판사 3명으로 구성된 대등재판부로 재편됐다. 재판은 다음달 7일 재개될 예정이다. 이날 선고한 재판부가 심리 중인 임 전 차장의 재판은 오는 29일 열린다. 같은 재판부가 헌재 파견 법관에게 헌재 내부 사건 정보와 동향을 수집하게 하고, 국제인권법연구회를 견제하기 위해 중복가입 해소 조치를 시행하는 등 임 전 차장의 공모 혐의를 인정한 만큼 임 전 차장의 재판에서도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사법농단 연루 법관들을 기소한 검찰 수사팀은 이날 입장문을 내어 “사법행정권자의 위헌적인 재판 개입 행위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유죄를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수사팀은 다만 “재판독립을 침해한 사법행정권 남용 등 다수의 범죄사실에 대해 다양한 법리적·사실적 쟁점이 심리됐고, 그 판단 결과에 따라 유무죄가 갈렸다”며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신광렬·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와 유해용 변호사는 항소심에서 각각 무죄를,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과 임성근 전 부장판사는 1심에서 각각 무죄를 선고받은 바 있다. 조윤영 신민정 기자
[사설] ‘사법농단’ 판사들 첫 유죄 판결, 사필귀정이다
잇따른 ‘제 식구 감싸기’ 속 단죄 의미
집행유예 형량은 국민 눈높이 못 미쳐
향후 재판에선 더 엄격한 잣대 세워야
‘사법농단'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진 전직 판사들에게 첫 유죄 판결이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는 23일 이민걸(왼쪽)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 이규진(오른쪽) 전 대법원 양형위 상임위원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각각 선고했다. 연합뉴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벌어진 ‘사법 농단’으로 기소된 고위 법관들에 대한 재판에서 처음으로 유죄 선고가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윤종섭 부장판사)는 23일 재판 개입 등 혐의를 받는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게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2017년 초 불거진 사법농단 사건에 대한 사법적 단죄가 4년 만에야 처음 이뤄진 것이다.
사법농단 사건은 대법원과 박근혜 정부의 부적절한 유착과 재판 거래 등 사법부의 일탈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고영한·박병대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고위 법관 14명이 기소됐다. 그러나 이제까지 선고가 이뤄진 6명이 모두 무죄판결을 받았다. 심지어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을 제기한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에 개입한 행위조차 “헌법 위반이지만 직권남용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를 받았다. 급기야 국회가 나서 임 부장판사를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소추했다.
이처럼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로 재판을 통한 사법농단 단죄는 불가능한 게 아니냐는 절망감마저 느껴지던 터라 이날 유죄 선고는 각별하게 다가온다. 재판부는 이민걸 전 실장이 국회의원 재판과 관련해 담당 법관의 심증을 파악하거나 이규진 전 상임위원이 옛 통합진보당 지방의회 의원들의 지위 확인 소송 재판에 개입한 행위 등이 재판권 방해로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재판 사무의 공정성에 관한 의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중대한 범행”이라고 지적했다.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판결과는 다른 태도다. 또 법원행정처가 법원 수뇌부에 비판적인 법관들의 모임을 와해시키려 한 행위도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범행의 심각성에 비춰볼 때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은 여전히 국민 눈높이에 못 미친다. 이날 함께 재판을 받은 2명의 법관에게는 또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집행유예 이유로 해당 행위를 주도한 게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과 임종헌 전 차장이라는 점 등을 들었다. 이들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최고위층 연루자들은 아직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들의 재판은 물론 이미 1·2심에서 무죄가 나온 법관들의 향후 재판에서 법원은 더욱 엄격한 잣대를 세워야 한다.
법원 수뇌부가 정치권력과 유착해 재판을 의도대로 주무르고 일선 법관들을 사찰한 사법농단은 재판의 독립이라는 헌법 가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법원의 신뢰 기반을 허물어버린 중차대한 사건이다. 법원 스스로 뼈를 깎는 자세로 엄단해야만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아울러 헌법재판소도 임성근 부장판사에 대한 탄핵심판을 엄정하고 신속하게 진행해 헌법적 단죄를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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