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개발에 이 한몸 기꺼이” 4만명 신청

대부분 “다른 생명 구하고 의학발전 기여”

 

영국에서 세계 처음으로 코로나19 인체유발시험이 시작된다.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병)을 선언한 지 한 달 뒤인 지난해 4월 미국에서 원데이수너(1Day Sooner, ‘하루 더 빨리’라는 뜻)라는 이름의 단체가 등장했다. 이 단체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해 자신의 몸을 시험 대상으로 삼을 의향이 있는 사람들을 웹사이트를 통해 모집하기 시작했다. 백신 개발 기간을 하루라도 단축하려면 스스로 바이러스에 감염될 사람들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일반적으로 백신 임상시험에서는 개발 중인 약과 위약을 무작위로 주사한 뒤 일상생활 속에서 병원체에 감염되는지 여부를 지켜본다. 따라서 백신 효능을 확인하려면 상당한 기간이 지나야 한다. 하지만 백신 주사 뒤 바이러스에 의도적으로 노출시키면 백신 효능을 훨씬 빨리 확인할 수 있다. 이를 인체유발시험(human challenge)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시험은 생명을 위태롭게 할지도 모르는 위험성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윤리적 논란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단체 웹사이트에 인체유발시험 신청 의사를 밝힌 자원자 수는 24일 현재 세계 166개국 3만9천명에 이른다.

 ‘원데이수너’ 웹사이트에 등록한 인체유발시험 자원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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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헌혈·사후 장기기증 등록 비율 높아

 

이들은 왜 위험을 무릅쓰고 인체유발시험에 손을 번쩍 들었을까?

미국 존스홉킨스대, 럿거스대, 조지타운대 연구진이 원데이수너 출범 초기인 지난해 4~5월에 등록한 1911명을 대상으로 인체유발시험에 자원한 이유를 조사한 연구 결과를 최근 사전출판논문집 ‘메드아카이브’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비교를 위해 참여 의향을 밝히지 않은 999명을 대조군으로 뽑아 이들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번 조사의 배경에는 인체유발시험에 자원하는 이유가 보상금 유혹을 떨치기 어려울 만큼 경제적 여건이 어렵기 때문인지, 또는 위험에 대한 인식이 비정상적으로 낮기 때문인지를 알아보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 두가지는 윤리적 논란의 주요 근거다.

연구진은 그러나 조사 결과, 우려와는 달리 이들의 자원 동기는 취약한 경제력이나 위험 인식이 아니라 매우 높은 이타심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자원자들의 대다수는 “다른 사람들을 돕고 생명을 구하고 싶다”는 것(95.9%)과 “의학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것(79.2%)을 자원 동기로 꼽았다. 또 둘 중 하나는 “무력감을 떨치고 뭔가 긍정적인 일을 하는 것같아서"(46.6%)라고 답했다.

자원자들의 이런 답변은 이들의 과거 이타적 행동과도 부합했다. 이들은 일반인 대조군보다 과거에 기부, 헌혈, 골수기증 등록, 사후 장기 기증 등록을 한 비율이 훨씬 높았다. 자원자들은 또 정직, 겸손 같은 개인적 특성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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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행동에선 위험 추구, 건강·도덕에선 위험 회피 성향

 

그렇다면 혹시 기본적으로 위험에 둔감한 성향 탓에 인체유발시험에 자원한 것은 아닐까?

연구진은 설문 분석 결과, 그렇지 않았다고 밝혔다. 자원자들은 대조군에 비해 금융 투자, 여가 활동, 사회 규범 같은 사회적 행동에서는 더 위험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건강과 안전, 도덕과 도박 영역에서는 위험 회피 성향이 더 컸다. 위험 추구 성향은 사회 규범에서, 위험 회피 성향은 도덕과 도박 영역에서 더 두드러졌다.

연구진은 또 보상금이 인체유발시험에 자원하는 동기일 수도 있다는 일각의 우려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의 분석에 따르면 교육과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인체유발시험 참여 가능성이 높았다. 세계 최초로 코로나19 인체유발시험을 하는 영국은 자원자들에게 격리 기간과 이후 1년간의 추적 기간에 대한 보상으로 4500파운드(약 700만원)를 보상한다는 방침이다.

인체유발시험은 백신 개발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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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젊은이 90명에게 세계 첫 코로나19 인체유발시험

 

영국은 지난 2월 윤리위원회로부터 인체유발시험을 승인받은 뒤 “몇주 안에 18~30세의 젊고 건강한 자원자 90명을 대상으로 인체유발시험을 시작한다”고 밝힌 바 있다. 연구팀은 자원자들의 코에 바이러스 소량을 뿌린 뒤 14일 동안 병원에 격리한 상태에서 검사를 진행한다. ‘비비시’에 따르면 이번 시험은 바이러스가 코 안에서 어떻게 번식해 나가고, 증상 발현 전 인체는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주목적이다. 시험에 사용할 바이러스는 지난해 봄 영국에서 유행한 바이러스다. 연구팀은 추후엔 자원자들에게 시판중인 백신을 접종한 뒤, 새로운 바이러스 변이주에 노출시켜 백신이 어떤 효능을 발휘하는지도 살펴볼 계획이다.

첫 시험 그룹에 뽑힌 노샘프턴대 분자생물학부 학생 앤토니 스패그놀리(22)는 ‘신화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시험에 자원할지를 두고 두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냥 옳은 일인 것 같다. 나는 꽤 건강한 사람이다. 위험한지도 알고 인체유발시험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도 알고 있다. 그런 것들이 자원 동기다. 그리고 예컨대 당신도 알다시피, 가난한 나라에 백신을 더 빨리 전달하고 개발 기간을 앞당기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은가."

앞서 세계보건기구는 2020년 5월 자원자의 위험을 최소화하고 공공신뢰를 유지하는 것 등을 내용으로 한 코로나19 인체유발시험 지침을 발표한 바 있다.

백신 개발을 위한 인체유발시험이 코로나19에서 처음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 인플루엔자(독감), 말라리아, 콜레라, 장티푸스, 뎅기열, 지카바이러스 백신 개발 때도 활용한 바 있다. 인류 최초의 백신이라 할 18세기 말의 천연두 백신도 건강한 사람을 바이러스에 감염시키는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왔다. 곽노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