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국 연구진, 슈퍼전파 등 과학적 근거 제시

공기전파 전제로 보완한 새 공중보건책 촉구

 

    공기전파를 코로나19의 주요한 감염 경로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가 공기 전파 여부다.

지난해 초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되자 세계보건기구를 비롯한 각 나라의 보건당국과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비말에 의한 전파를 기준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을 마련했다. 학계에서는 입자 크기 5마이크로미터(1㎛는 0.001mm)를 기준으로, 이보다 큰 것은 비말, 작은 것은 에어로졸로 분류한다.

 

기침이나 재채기, 호흡 등을 통해 몸 밖으로 배출되는 비말 입자는 수초 안에 땅에 떨어지며 보통 2미터 이상을 날아가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기준인 1.8미터(또는 2미터)는 이를 근거로 한 것이다.

 

감염자와 상당한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도 감염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공기 전파 가능성이 크게 부각됐지만, 기존의 비말 전파 경로를 전제로 한 지침은 그대로다. 지난 3월 세계보건기구(WHO) 지원을 받아 진행한 ‘체계적 문헌고찰’에서도 샘플 부족을 이유로 공기 전파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경우, 지난해 10월 ‘때때로 공기를 통해 전파될 수 있다’는 대목을 추가하기는 했지만, 역시 여전히 대면접촉시 호흡기 비말을 통한 확산을 가장 일반적인 감염 경로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여러 국제학술지에서 공기 전파를 주된 경로로 보고 공중보건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 트리샤 그린할프(Trisha Greenhalgh) 교수(1차보건의료)가 이끄는 6명의 영국, 미국, 캐나다 공동연구진은 지난해 이후 발표된 논문들 중에서 20여편을 골라 검토한 결과를 토대로 ‘코로나19의 공기 전파를 뒷받침하는 10가지 과학적 이유’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의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랜싯’에 발표한 짤막한 논평 논문에서 코로나19가 주로 공기를 통해 전파된다는 것을 시사하는 일관되고 강력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제 연구진이 첫손으로 꼽은 공기전파의 증거는 콘서트장, 요양원 등 실내에서의 슈퍼전파 사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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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치지도 않았는데, 기침·재채기도 안했는데

 

연구진이 제시한 첫번째 증거는 슈퍼전파다. 연구진은 합창단 콘서트장, 크루즈선, 도축시설, 요양원, 교정시설 집단감염자들의 행동과 상호간 접촉, 실내 공간 크기, 환기시설 등 여러 요인을 분석한 결과, 비말이나 다른 매개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원거리 전파가 사실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런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은 에어로졸 전파가 주된 원인임을 강력히 시사한다고 주장했다.

 

둘째는 격리된 호텔 안에서 방이 달라 서로 직접 마주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코로나19가 전파됐다는 점이다. 셋째로 꼽힌 것은 기침이나 재채기를 하지 않은 사람들에 의한 무증상 또는 증상 발현 이전 전파가 전 세계 모든 코로나19 감염 사례의 적게는 3분의 1, 많게는 약 60%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실제로 대화 중에 입밖으로 배출되는 입자들을 조사한 결과, 에어로졸 입자는 수천개에 이르는 반면 입자 크기가 큰 침방울은 극히 소수였다는 점이 공기 전파를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건물의 통풍구는 공기전파의 주요 통로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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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마가 된 비말 · 에어로졸 구분 기준

 

실외보다 실내 전파 사례가 더 많고 실내 환기시설이 있을 경우엔 전파율이 떨어진 점, 개인보호장구 등 비말 감염 예방 조처에 집중한 병원 시설 내에서도 감염이 이뤄졌다는 점, 코로나19 동물 감염 사례에서 동물 우리가 통풍구로 연결돼 있었다는 점도 공기 전파 근거로 제시됐다.

 

연구진은 코로나19 환자가 있는 병원의 공기 필터 및 건물 통풍구에서 바이러스가 검출된 사실을 들어 “이러한 곳에는 에어로졸로만 도달할 수 있다”며 이것 역시 공기 전파 증거로 꼽았다.

 

코로나19 감염자가 입원한 병실, 감염자가 타고 있던 차의 실내 공기에서 감염력 있는 바이러스가 검출된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증거로 제시됐다. 실험실에서의 실험 결과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공기 중에서 최대 3시간 동안 감염력이 유지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반감기는 1.1시간이었다.

 

연구진은 마지막으로 공기 전파 가설을 반박할 수 있는 일관되고 강력한 증거를 제시하는 연구나, 호흡기 비말 등 다른 전파 경로가 주된 경로라는 점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없다는 점을 추가로 지적했다. 연구진은 덧붙여 실험 결과를 근거로, 에어로졸과 비말의 정확한 경계선은 100㎛(마이크로미터)이며 5㎛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에어로졸과 비말의 기존 기준이 도그마가 됐다고 비판, 환기가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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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독 중심서 실내 환기 등 에어로졸 중심으로

 

“전체적인 증거들을 올바로 보지 않고 일부 공기 샘플에서 직접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공기 전파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과학적 오류”라는 게 연구진의 결론이다. 연구진은 “다른 전파 경로가 있을 수 있지만 지배적인 전파 경로는 공기전파로 보인다”며 보건당국에 지체없이 그에 상응하는 조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또다른 국제학술지 ‘브리티시메디컬저널’(BMJ)도 지난 14일 ‘코로나19가 공기전파를 재정의했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기본적으로 입자 크기나 명칭에 관계없이 입자를 흡입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에어로졸을 흡입하는 것”이라며 실내 환기와 마스크 품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설은 환기를 통한 실내 공기 질 개선은 다른 호흡기 바이러스 감염이나 알레르기, 새집 증후군 감소 등의 다른 이점도 수반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지난 2월2일 사설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주로 공기를 통해 전염된다는 증거가 확실하다”며 세계 보건당국에 최신 지식을 반영해 지침을 새로 마련하고, 물체 표면 등의 소독보다 환기 개선 등 에어로졸을 중심에 둔 공중보건에 더 역점을 둘 것을 촉구한 바 있다. 곽노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