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 이기는 핵심 기능이나 누적되면 생리적 붕괴…야생상태서 첫 확인

 

케냐 암보셀리 국립공원에서 개코원숭이 암컷이 주변을 살펴보고 있다. 스트레스가 심한 개체일수록 수명이 짧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먹고 털고르며 평화롭게 사는 개코원숭이에게 무슨 스트레스가 있을까. 요금 고지서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일 처리 마감 시간이 닥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들도 다양한 스트레스를 겪으며 또 그 강도가 심할수록 수명이 짧은 것으로 드러났다.

 

페르난도 캄포스 미국 텍사스대 샌안토니오 캠퍼스 교수 등은 20여년 동안 케냐 암보셀리 국립공원에서 암컷 개코원숭이를 연구했다. 특히 연구자들은 242마리의 원숭이로부터 무려 1만4000여 점의 배설물을 확보해 그 속에 든 스트레스 호르몬인 당질 코르티코이드를 분석했다.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여러 가지 역경에 더 자주 부닥치는 개체일수록 또는 더 강한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는 개체일수록 일찍 죽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번 연구는 만성적인 스트레스 호르몬 노출이 생존율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첫 직접 증거”라고 밝혔다.

이번 장기 연구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영장류 행동 데이터와 1만4000점이 넘는 최대 규모의 배설물 시료가 확보됐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배설물은 혈액이나 침보다 원숭이의 평균적인 스트레스 호르몬 수준을 채취 과정에서 영향을 받지 않고 알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번 연구에서 평생 노출되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상위 90%인 원숭이는 하위 10%인 원숭이보다 5.4년 일찍 죽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코원숭이 암컷의 평균 수명은 19살이어서 강한 스트레스가 수명이 4분의 1을 줄이는 셈이 된다. 연구자들은 “이런 수명 단축은 새끼 1∼2마리를 덜 낳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원숭이가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는 어떤 상황에 놓이는지 또 유전적으로 얼마나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지에 달렸다. 연구자들은 스트레스 호르몬 수준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너무 덥거나 건조할 때 성장했는지 등의 환경적 요인, 무리 규모가 너무 작아 늘 외부 위협에 시달리거나 너무 커 내부 갈등이 심하거나 등의 사회적 요인, 임신을 자주 하는가 같은 개별적 요인을 꼽았다.

문제는 스트레스가 생존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점이다. 역경이 닥치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대량 분비되지만 그 덕분에 도망칠지 맞서 싸울지 결정하고 심장을 빠르게 박동시켜 근육에 힘을 비축할 수 있다.

스트레스는 포식자나 경쟁자뿐 아니라 기근과 가뭄, 질병, 기생충, 육아, 무리 안 지위 유지 등과 관련해서도 생긴다. 스트레스 호르몬은 이런 역경에 맞서 면역체계와 대사 등 몸의 핵심 기능을 조절해 대응한다.

그러나 끊임없이 역경에 대응하는 일은 대가를 요구한다. 비상대응 체계를 유지하는 일은 힘들고 피로가 쌓인다. 연구에 참여한 수잔 앨버트 미국 듀크대 교수는 “스트레스 반응을 만성적으로 활성화하다 보면 더는 면역체계와 몸의 유지 관리를 지탱하기 힘든 생리 환경이 되고 만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개코원숭이에게도 새끼를 기르고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일은 포식자를 경계하고 먹을 것을 찾는 일 만큼 스트레스를 부른다. 페르난도 캄포스 제공

이제까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사회적 고립과 낮은 사회경제 지위가 스트레스 호르몬 수준과 관계가 있으며 심혈관 질환과 당뇨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또 쥐 등 실험동물을 이용한 연구에서는 스트레스와 사망률 사이의 관계가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생존에 꼭 필요한 야생에서 만성적 스트레스가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논란거리였다. “이번 연구는 사람을 비롯해 영장류에서 어떤 개체는 왜 다른 개체보다 장수하는지 설명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사이언스 어드밴시스’는 밝혔다. 조홍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