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 비핵화 목표 ‘부분적 비핵화 하면 부분적 제재 완화’

오바마 ‘전략적 인내’ - 트럼프 ‘빅딜’ 사이 제3의 길 모색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4일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출범 100일 만에 대북정책의 얼개를 공개했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버락 오바마 시절의 ‘전략적 인내’도, 도널드 트럼프 시절의 ‘전부 아니면 전무’도 아닌 실용적 접근법을 취한다는 내용이다. 북한은 때맞춰 미 정부를 비난하는 논평들을 쏟아냈다. 북·미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30일 기자들에게 대북정책 검토가 완료됐다고 확인하면서 “우리의 목표는 여전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 4개 행정부의 노력들이 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한다”며 “우리의 정책은 일괄타결(그랜드 바긴) 달성에 초점을 두지 않을 것이며, 전략적 인내에 의존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의 정책은 북한과의 외교에 열려 있고 외교를 모색하는, 조정되고 실용적인 접근법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한국, 일본, 그리고 다른 동맹, 우방과 매 단계마다 협의를 해왔으며 앞으로 계속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크 밀리 합참의장으로부터 대북정책 검토 결과에 대해 보고받았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했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바이든 정부가 조만간 대북정책을 좀 더 구체적으로 공개할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사키 대변인이 밝힌 대북정책의 특징은 트럼프도 오바마도 아닌 ‘바이든 대북정책’으로 차별화했다는 점이다. 북한을 사실상 방치해 핵능력만 키워줬다는 비판을 들은 오바마의 ‘전략적 인내’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모든 제재 해제를 통째로 맞바꾸려 한 트럼프의 ‘빅 딜’ 방식을 버리고 제3의 접근을 취하겠다는 얘기다. 미 정부의 한 관리는 “트럼프 정부가 ‘모든 것 대 모든 것’, 오바마 정부는 ‘전무 대 전무’였다면 이것은 그 중간쯤”이라고 <워싱턴 포스트>에 말했다. 미 관리는 “미국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한, 조정되고 실용적인 대북 외교 접근법”이라고 말했다.

 

이는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유지하되, 부분적 비핵화와 부분적 제재 완화를 맞바꾸는 단계적 접근법을 취하겠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미 정부 관리는 “특정 조처에 대해 (대북 제재) 완화를 제공할 준비가 돼 있는, 조심스럽고 조절된 외교적 접근법”이라고 말했다. ‘스몰 딜’(작은 합의)을 이어가면서 비핵화로 향해 가는 방식이다.

 

 

미 정부는 또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6월 서명한 싱가포르 합의를 인정한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 고위 관리는 “우리의 접근법은 싱가포르 및 그 이전의 합의들에 기초할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 합의는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의 지속적·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한국전 참전 유해 송환 등 4개 항으로 이뤄져 있다. 위성락 전 러시아 대사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싱가포르 합의를 100% 따른다기보다 미국이 이미 해놓은 합의에 기초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셉 윤 전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바이든 정부가 비현실적인 ‘시브이아이디’(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용어를 사용하지 않은 점, 단계적 접근법과 싱가포르 합의 존중을 시사한 점을 들어 “매우 합리적이고 균형 잡힌 접근법”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것으로 북-미 대화의 문이 조금은 열렸다고 볼 수 있다”며 “지금부터 노련한 외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관건은 북한의 반응이다. 북한은 2일(한국시각) 연쇄 담화를 통해, ‘외교와 단호한 억지력’을 강조한 바이든 대통령의 의회 연설과 북한 인권 상황을 비판한 국무부 대변인의 성명을 비판하며 상응한 대응을 하겠다고 반발했다. 미국이 어떤 대북정책을 내놓더라도 북한이 호응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프랭크 엄 미국평화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트위터 글에서 “북한에 대한 조정된 접근은 새로운 길이 아니다”라며 과거 6자회담 등에서 했던 것이라고 적었다. 이어 “북한이 테이블로 오면 작동할 수 있는데, 문제는 어떻게”라며 압박과 도발의 순환으로 하는 방법과, 새롭고 평화로운 북-미 관계 구축을 위한 포괄적·전략적 노력의 신호를 보내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나친 낙관을 경계했다. 김 교수는 “북한이 미국 발표를 보고 담화를 공개했다고 봐야 하고, 그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실패했으니 미국이 ‘새로운 셈법’으로 나와야 하는데, 북한 입장에서 큰 기대를 안 하기 때문에 말이 사납게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역할도 지켜볼 대목이다. 미·중이 무역·기술·군사 등 전방위에서 경쟁하는 가운데, 대북 경제 지원이라는 지렛대를 쥔 중국이 북-미 대화 분위기 조성에 협력할 것인지는 매우 큰 변수다. 바이든 정부는 대북정책 검토 결과를 한국, 일본 등 동맹과 미 의회에 설명하며 안팎으로 공감대 다지기에 나섰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길윤형 기자

 

문 대통령의 북핵해법, 바이든 설득에 성공한 듯

미 정부, 문 대통령 제시한 ‘싱가포르 합의’·‘단계적 해법’ 사실상 수용
2019년 ‘하노이 결렬’ 이후 북-미 직접대화 재개되려면 고비 넘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마무리한 뒤 공동성명 서명식을 하고 있다. 싱가포르/연합뉴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이 30일 언급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 재검토’ 결과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재가동을 희망해 온 한국 정부의 희망 사항을 상당 부분 받아들인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아직 최종 결과가 공개되진 않았지만, 2018년 6·12 싱가포르 공동선언을 출발점으로 삼아 북-미가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비핵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접근법을 상당 부분 반영한 모양새다.

 

문 대통령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밝힌 것은 지금까지 크게 두 차례였다.

첫번째는 지난 1월18일 진행된 신년 기자회견이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이제 곧 출범할 바이든 행정부에게 “트럼프 정부에서 있었던 싱가포르 (공동)선언은 비핵화와 한반도의 평화 구축을 위해서 매우 중요한 선언이었다. 싱가포르 선언에서 다시 시작해서 보다 구체적인 방안을 이루는 그런 대화 협상을 해나간다면 좀 더 속도 있게 북-미 대화와 남북대화를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어, 미국의 ‘대북 정책 재검토’가 사실상 막바지에 이른 지난 21일 <뉴욕 타임스> 인터뷰에선 “미국과 북한이 서로 양보와 보상을 ‘동시적으로’ 주고받으면서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비핵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30일 나온 사키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과 미 <워싱턴포스트>가 소개한 미국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을 모아 보면, 바이든 행정부가 싱가포르 공동선언을 대화의 출발점으로 삼아 ‘점진적이고 단계적으로 비핵화’를 이뤄내자는 한국 정부의 구상을 상당 부분 수용했음을 알 수 있다.

 

사키 대변인은 지난달 30일 브리핑에서 “우리 정책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의) 일괄타결(그랜드 바겐·빅딜) 달성에 초점을 두지 않을 것이며,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에도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앞선 두 행정부의 접근법을 절충한 ‘스몰 딜’을 통한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을 해 나갈 것임을 강하게 암시하는 말이었다. 이어, 익명의 미 고위 당국자는 1일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우리의 접근은 싱가포르 합의와 다른 이전의 합의들 위에 (성과를) 쌓아가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런 결과를 도출해 내는 과정은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바이든 정부는 싱가포르 합의가 트럼프 때 이뤄진 것이어서 애초 부정적 입장이었는데 정부가 (미국의 생각을 돌리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에게 싱가포르 공동선언은 자신들이 부정해야 하는 전임 행정부의 유산이었다. 또 이 합의에 대해서는 2018년 6월 합의가 공개된 직후부터 미국이 너무 양보했다는 ‘매파’들의 공격이 이어져 왔다. 그렇다고 이 합의를 폐기하면, 미국이 달성해야 하는 최종 목표인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북을 압박할 근거가 사라지게 되는 ‘외교적 리스크’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바이든 행정부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 세계 앞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한 이 성명을 받아들이는 현실적 선택을 한 것이다.

그 다음 난관은 단계적 접근이었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지난 3월23일 브리핑에서 대북 정책을 재검토하며, 트럼프 행정부 시절 대북 정책을 담당했던 당국자들은 물론 1990년대 이후 대북 외교에 관여했던 모든 인물들, 미 행정부 내 여러 부처들, 한·일 등 동맹들을 상대로 의견을 광범위하게 들었다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 때처럼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 아래 북핵 문제를 방치할 수도, 트럼프 행정부 시절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실패했던 것처럼 ‘빅딜’을 통해 북핵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없었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이 두개의 극단을 절충하는 단계적 접근일 수밖에 없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 과정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 시절 북한과 오랜 기간 협상했던 스티븐 비건 전 국무부 부장관으로부터 조언을 받았다고 밝혔다. 비건 전 부장관은 2019년 2월 말 하노이 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주장해 온 단계적 해법을 수용하려는 듯한 태도를 보였지만, 볼턴 전 보좌관 등의 막판 뒤집기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미국이 재검토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순간, 문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다시 한번 강한 어조로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등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대북 정책 재검토의 최종안을 보고하기 직전인 지난 21일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미국이 단계적 접근법을 택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 인터뷰가 실제 미국 정부의 의사 결정에 얼만큼 영향을 끼쳤는지는 불명확하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최종 결론에 한국의 상당 부분 반영된 것은 사실이다. .

 

하지만, 북-미 대화로 향해 가는 앞길은 여전히 첩첩산중이다. 바이든 행정부가 예상보다 유연한 대북 접근법을 택했지만, 의미 있는 대화가 시작될 여건이 성숙돼 있지 않다. 지난 2019년 2월 말 ‘하노이 실패’ 이후 북은 자력갱생을 외치며, 한-미 연합훈련 중지, 첨단 전략자산 도입 금지 등 ‘체제 보장’과 관련된 근본적 요구를 쏟아내는 중이다. 그러나 미국은 한-미 연합훈련은 계속 실시한다는 입장(3월22일 백악관 고위 당국자)이고, 한국 정부 역시 북한이 싫어하는 F-35 등 첨단 전략자산의 도입을 미룰 생각이 없다.

 

결국, 북한은 미국이 완전한 재검토 결과를 공개할 때까지 상황을 관망하면서, 당분간 자신들이 설정해 놓은 자력갱생의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전략적 도발을 걸어올 가능성도 있다. 미 당국자도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북 전략이 “핵 도발에 대한 북한의 단기적 계산법(calculus)을 바꿀 것으로 보진 않는다”고 전망했다.길윤형 기자

 

북, 연쇄담화로 대미 불만 표출...급 낮춰 수위조절

적대시 정책 유지에 강한 실망  “상응한 조치 강구할 것” 밝혀
대통령 대신 ‘미국 집권자’ 표현 낮은수준 예우 “협상 여지” 평가

 

남쪽의 노동절에 해당하는 5·1절을 맞아 북한 각지에서 공연과 체육 경기가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일 보도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 외무성이 2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북정책 방향과 얼개를 비난하는 두건의 공식 담화를 발표했다.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이고 전체주의적 국가 중 하나”라 규정한 국무부 대변인의 ‘북한자유주간 성명’을 겨냥한 “대변인 담화”, 바이든 대통령의 첫 의회 연설을 겨냥한 “권정근 미국국장 담화”가 그것이다. 북한 당국이 바이든 정부를 상대로 관망 태도를 접고 본격적인 ‘밀당’에 나섰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우선 두 대목을 짚을 필요가 있다. 첫째, 북한 외무성의 연쇄 담화가 ‘대북정책 재검토가 끝났다’는 백악관 대변인의 기자회견(현지시각 4월30일) 직후 나왔다는 사실이다. 둘째, ‘미국국장 담화’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 뒤 형식과 내용 모든 측면에서 ‘북한의 첫 공식 견해 표명’으로 간주된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 담화(3월18일)나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기도 한 리병철 노동당 중앙위 비서 담화(3월27일)에 비해 ‘격’이 한참 떨어진다.

요컨대 북한 당국은 지금까지 드러난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에 ‘강력한 불만·실망’을 밝히되, 그 발언 주체를 ‘국장급 실무선’으로 낮춰 수위를 조절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당분간 북한이 미국에 우호적인 견해나 태도를 보일 가능성은 매우 낮다. 다만 5월21일 미국에서 열릴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의 대북정책과 한미 양국의 대북 공조의 방향이 구체적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전략적 대미 군사 행동’의 가능성도 낮으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북은 ‘미국국장 담화’에서 “미국 집권자가 취임 후 처음으로 국회에서 연설하면서 또다시 실언을 했다”며 “그의 발언에는 미국이 반세기 이상 추구해온 대조선적대시정책을 구태의연하게 추구하겠다는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고 짚었다. ‘북핵’은 “미국과 세계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라며 “외교와 단호한 억지”를 천명한 바이든 대통령의 4월28일(현지시각) 첫 의회 연설을 사실상 “대북적대시정책”으로 규정한 셈이다. 앞서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는 ‘당 8차 대회’(1월5~12일)에서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의 열쇠는 미국이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철회하는 데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미국국장 담화’는 “우리는 그에 상응한 조치들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며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은 매우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강대강, 선대선 원칙에서 미국을 상대할 것”이라는 김정은 총비서의 방침에 따라 일단 “강대강” 기조로 미국에 맞서겠다는 예고인 셈이다.

다만 ‘미국국장 담화’의 “미국 집권자”란 표현엔 북쪽의 복잡한 속내가 읽힌다고 전직 정부 고위관계자가 짚었다. ‘대통령’이란 표현을 피해 ‘기분 나쁘다’는 감정을 드러내는 한편으로, 특유의 막말 대신 “집권자”란 표현으로 낮은 수준의 예우와 함께 협상의 여지를 뒀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외무성 대변인 담화’도 4월28일(현지시각) 미 국무부 대변인 성명을 “최고존엄 모독” “대조선적대시정책의 집중적인 표현”이라며 “상응한 조치들을 강구해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고 밝혔다. ‘인권 문제’를 압박 수단으로 앞세우지 말라는 대미 ‘견제구’다.

외무성 연쇄 담화는 “북한에 집중하지 않는 바이든 정부의 주의를 환기하려는 것”이라고 다른 전직 고위관계자는 짚었다. ‘중국 견제’에 대외전략의 기조·초점을 맞춘데다 이란핵 협상으로 바쁜 바이든 정부가 ‘북한’의 존재를 잊을 위험을 차단하려는 선제 행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주장을 빌미로 문재인 정부를 비난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담화’와 외무성의 대미 비난 담화의 연관성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제훈 기자

 

김여정 ‘대북전단 비난 담화’ 속뜻은 “남쪽 때려 미국 움직이기”

 

지난 1월5~12일 열린 조선노동당 8차 대회 주석단에 앉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모습.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오른쪽 뒤로 서 있는 김여정 부부장이 보인다. <조선중앙텔레비전> 연합뉴스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이 일부 탈북자 단체의 일방적 대북전단 살포 주장을 빌미로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며 “상응한 행동 검토”를 2일 밝혔다.

김여정 부부장은 <노동신문> 2면에 실린 개인 담화에서 “얼마전 남조선에서 ‘탈북자’ 쓰레기들이 반공화국 삐라(전단)를 살포하는 용납 못할 도발 행위를 감행했다”며 “남조선 당국은 ‘탈북자’ 놈들의 무분별한 망동을 또다시 방치해두고 저지시키지 않았다. 우리도 이제는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김 부부장의 이런 주장은 사실관계와 명분 측면에서 섣부르고 과도해 보인다. 우선 자유북한운동연합은 4월25~29일 비무장지대(DMZ) 인근 경기·강원도 일대에서 전단 등을 북쪽으로 날려보냈다고 4월30일 주장했으나 ‘물증’은 내놓지 않았다. 더구나 통일부는 4월30일 “개정 남북관계발전법 입법 취지에 맞게 대처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전단 살포 사실이 확인되면 ‘접경지역 주민 생명·안전 보호’를 이유로 군사분계선 일대의 “전단 살포, 확성기 방송” 등에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한 개정 남북관계발전법 24·25조를 근거로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통일부는 2일에도 “정부는 북한을 포함한 어떤 누구도 한반도에서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에 반대한다”고 전제한 뒤 “전단 살포 문제는 경찰 전담팀이 조사하는 만큼 ‘남북관계발전법’이 주민의 생명과 안전 보호를 위한 취지에 부합되게 확실히 이행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상 ‘사실 확인 뒤 처벌’ 방침을 재확인한 것이다. 다만 정부 당국자는 “아직은 전단 살포 주장만 있을 뿐 물증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에 비춰 북쪽이 이날 ‘김여정 담화’와 외무성의 대미 비난 담화를 동시 다발로 발표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전직 정부 고위관계자는 “북쪽은 ‘남쪽을 때려 미국을 움직인다’는 전략을 구사하려는 듯하다”며 “5월21일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쪽의 추가 대남 압박 조처가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짚었다. 이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