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고발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는 지지난해 세상을 뒤흔든 대특종을 앞에 두고 <뉴욕 타임스> <르몽드> <가디언> <슈피겔> <엘 파이스> 다섯 매체에 손을 내밀었다. 독차지할 수 있는 과실을 함께 누린 것이다. 줄리언 어산지가 추려낸 다섯 매체를 꿰는 공통어는 신뢰다.
이는 위기가 수식어가 된 지 오랜 신문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인터넷과 SNS 시대, 신문과 같은 전통매체의 고민은 깊다. 속보 경쟁도 의미를 잃어간다. 탐사보도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 황색 저널리즘을 추구하기엔 온라인에 재미있는 게 너무 많다. 그나마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해법은 좀더 예민한 잣대로 사실을 준별하는 것이다. 인터넷의 정보 포화에 멀미를 느끼는 이들에게 지갑을 열게 할 유용함을 신뢰 아닌 다른 것에서 찾기는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신뢰는 커녕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는 보도들이 잇따른다.
감사원은 지난 2월26일 카메룬 다이아몬드 광산 의혹에 대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중앙일보>는 다음날 지면에서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통화한 내용을 이렇게 전했다. “제가 언론 경험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수치를 내는 어설픈 짓을 하겠느냐.” 비언론인인 박 전 차관조차 어설프다고 폄하한 그 보도자료를 중앙은 어떻게 보도했을까. 경제면 4단 크기로 후하게 대접했었다. 업체 이름도 제목에 달았다. 이 보도자료를 접했던 한 기자는 이렇게 말했다. “통상적인 외교부 보도자료와 너무 달랐다. 수치가 자세히 적시되는 등 경제부처 보도자료처럼 너무 친절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해 다루지 않았다.”
“그 체형에서 나오기 힘든 MRI.” “박원순 아들이 낸 MRI, 본인 것 맞다.” <동아일보>의 지난 2월22일과 23일치 1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전날 한껏 의혹을 부풀린 뒤 바로 다음날은 강용석 의원이 ‘무리한 주장으로 자충수를 뒀다’며 한발 뺐다. 그렇게 중요하다는 박 시장 아들의 체형 확인 없이 기사를 썼다가 폭로가 엇나간 것으로 드러나자 이번에는 공격의 화살을 매몰차게 강 의원에게 돌린다.
<조선일보>가 고침까지 낸 김정남 이메일 관련 보도(지난 1월17일치 1면 머리기사)는 어떤가. 조선은 보도 사흘 뒤 ‘<월간조선>이 요약해 본지에 전달’ 운운하며 주로 자매 월간지에 책임을 떠넘기는 정정기사를 냈다. 하지만 월간조선 기자가 쓴 허위의 텍스트만 보더라도 ‘김정남 “천안함, 북의 필요로 이뤄진 것”’이라는 조선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이 나오기 어려워 보인다.
「천안함 침몰 사건에 대해서는 “북조선 입장에서는 서해5도 지역이 교전지역이라는 이미지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핵, 선군정치 모두 정당성이 부여되는 것”이라고 했다」가 김정남이 언급했다는 해당 기사 내용이다. 김정남 이메일 내용을 직접 발췌한 대목에 천안함이란 단어는 없다. 제목처럼 김정남이 북의 소행이라고 단정해 밝혔다고 해석하기도 무리해 보인다. ‘북이 했다면 그런 의도였을 것’으로 보는 게 상식적인 해석일 듯하다. 하지만 조선일보의 제목은 달랐다. 사실에 대한 존중 없이 독자의 신뢰를 붙들 수 있을까.
조선일보가 공들여 만들고 있는 지면이 있다. ‘신문은 선생님’이란 신문활용교육(NIE) 면이다. 그 누구도 선생님이 될 자격이 있지만, 정말 신문은 선생님이 되어야 할 이유가 많다.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신문에 실린 내용은 참이다. 정직은 학생뿐 아니라 선생님에게도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내가 일하는 곳을 포함해 모든 신문들이 부끄럽지 않게 선생님이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길 정말 바란다.
<한겨레신문 강성만 문화부장>
<한겨레신문 강성만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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