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전투 격전지에서 미군기지 건설용 매립재 채취 추진

일본 정부 "채취 장소 미정…유골 안 들어가도록 눈으로 확인"

 

일본 오키나와(沖繩)현 소재 미군 후텐마(普天間) 비행장. 일본 정부는 이 비행장을 대체할 군사 시설을 건설하겠다며 오키나와 헤노코(邊野古) 연안을 매립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 [교도=연합뉴스]

 

일제 강점기 희생된 조선인 유골이 섞인 토사가 일본 오키나와(沖繩)현 미군 기지 공사에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유해 수습 운동을 벌여 온 일본 시민단체는 한국·미국 유족과 힘을 모아 공사 중단을 촉구할 계획이다.

오키나와 본섬 남부에 있는 미군 후텐마(普天間) 비행장을 같은 섬 중부 헤노코(邊野古) 연안으로 옮기는 사업이 진행 중인데 일본 정부가 공사 계획을 일부 변경하겠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오키나와의 미군 해병대 기지인 '캠프 슈와브' 인근 바다에서 매립 공사 등이 진행 중이다. 일본 정부는 후텐마 비행장을 대신할 새로운 기지를 이곳에 건설 중이다 [교도=연합뉴스]

 

전쟁 희생자 유해가 다량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채취한 토사 등을 매립재로 사용할 가능성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일본 방위성은 오키나와의 미군 해병대 기지인 '캠프 슈와브' 앞바다를 매립해 후텐마 기지를 대체할 새 비행장을 만들고 있는데 연약한 지반을 개량하기 위해 매립재 종류 등을 바꾸겠다며 작년 4월 21일 오키나와현에 공사 계획 변경 승인을 신청했다.

 

7일 연합뉴스가 계획서의 세부 내용을 확인해보니 2차 대전 말기에 벌어진 오키나와 전투 현장인 오키나와 본섬 남부 이토만(絲滿)시와 야에세초(八重瀨町)가 매립용 토사 등을 채취할 장소로 기재돼 있었다.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 공사 매립재 채취 장소

 

오키나와에서는 1945년 미군과 일본군 사이에 격렬한 지상전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주민, 일본군, 미군 등 약 20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산(오키나와현 집계)된다. 희생자 중에는 한반도에서 동원된 조선인도 포함된다.

 

희생자 유해 수습이 미흡해 이토만을 비롯한 격전지에서 발굴이 계속 진행 중인 상황이다. 변경된 공사 계획이 승인되면 유골이 섞인 토사가 매립용으로 투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유해를 수습해 유족에게 돌려주는 운동을 하는 현지 시민단체 '가마후야'(ガマフヤ-) 등은 일본 정부의 공사 계획 변경에 반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토사 등을 어디서 조달할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계획서가 "적정한 조사를 거쳐 채취 장소 등을 결정한다"며 여지를 남긴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기존 계획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이토만과 야에세가 변경된 계획서에 파쇄된 암석을 채취할 후보지로 명시된 것을 보면 결국 이 지역에서 채취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2019년 2월 15일 일본 오키나와(沖繩) 기노자손(宜野座村)의 미군의 옛 민간인 포로수용소 주변 유골 발굴 현장에서 오키나와의 시민단체 '가마후야'의 구시켄 다카마쓰(具志堅隆松) 대표가 유골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계획서는 이토만과 야에세에서 파쇄된 암석 3천160만㎥를 채취하는 방안이 기재돼 있다. 이는 오키나와현 내부에서 조달할 파쇄석(4천476만㎥)의 약 70% 해당한다.

 

구시켄 다카마쓰(具志堅隆松·67) 가마후야 대표가 올해 3월 단식 투쟁까지 하며 반대에 나서자 기시 노부오(岸信夫) 방위상은 "개발 전에 유골이 없는지 육안으로 사전 조사를 하고 유골이 잠들어 있을 가능성이 있는 호(壕·구덩이)가 있는 장소는 개발하지 않는 등 유골을 배려하며 사업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맨눈으로 유골 유무를 파악하는 것이 현실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오랜 기간 방치된 뼈는 전문가가 아니면 식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채취할 토사 등의 양에 비춰보면 유해가 포함됐는지 철저히 확인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가마후야는 한국 단체인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02-2139-0462)를 통해 오키나와 유골 발굴 및 DNA 감정에 참여할 한국인 유족을 모집하고 이들과 힘을 합해 일본 정부에 매립 계획 취소를 요구할 계획이다.

 

한국인 희생자 이름: 키나와(沖繩)현 이토만(絲滿)시 소재 '평화기념(祈念:이뤄지기를 비는 것)공원'에 한국인 전쟁 희생자 이름을 새긴 비석인 각명비(刻銘碑)가 설치돼 있다.(위) 각명비에는 히코산마루 피격 사건으로 희생된 명장모(왼쪽 하단) 씨와 김만두(오른쪽 하단) 씨의 이름도 새겨져 있다.

 

이들은 미국 유족 참가자도 모집한다.

오키모토 후키코(沖本富貴子) 오키나와대 지역연구소 특별연구원이 현대사 연구자 다케우치 야스토(竹內康人) 씨가 발간한 명부 자료와 자체 조사를 토대로 분석한 바에 의하면 오키나와 전투에 조선인 3천461명이 군인이나 군속(군무원에 해당)으로 동원됐고 이 가운데 701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노무 동원된 이들이나 일본군 위안부로 동원된 이들을 제외한 숫자다.

기록으로 파악되지 않은 이들을 포함하면 실제로 동원되거나 사망한 조선인은 이보다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피가 스며든 흙으로 군기지 만드는 건 인도적으로 용납 불가"

'유골반환 운동' 헌신한 구시켄 "한미 유족, 반대 목소리 내달라"

 

구시켄 다카마쓰(具志堅隆松) 가마후야 대표 [연합뉴스]

 

"유골이 섞인 토사를 군사기지 건설을 위해 매립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일본 시민단체 '가마후야'(ガマフヤ-)의 구시켄 다카마쓰(具志堅隆松·67) 대표는 조선인 등의 유골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는 토사를 미군 기지 건설 공사에 투입하려는 일본 정부 계획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오키나와(沖繩) 전투 희생자의 유골을 수습해 유족에게 돌려주는 운동 앞장서고 있는 구시켄 대표는 이런 공사 계획이 "잘못된 것"이라고 전화와 서면으로 연합뉴스에 의견을 밝혔다.

 

2020년 2월 9일 일본 오키나와현 모토부초의 한 주차장 부지에서 일제 강점기에 동원돼 2차 대전 말기에 희생된 조선인의 유해를 찾기 위한 발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는 유족에게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유해가 토사와 섞여 바다에 매립돼 버리면 찾을 길이 영영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구시켄 대표는 방위성이 토사 등을 채취할 후보지로 지목한 오키나와현 이토만(絲滿)시와 야에세초(八重瀨町)에는 수많은 사람의 "피와 살과 뼈가 스며들어 있다"며 평화를 염원하고 전쟁 희생자의 명복을 빌어야 할 곳에서 파낸 흙과 돌을 사용해 군사용 기지를 짓는 것은 "인도적으로도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공사는 미군 후텐마(普天間) 비행장을 옮긴다는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설을 놓고 일본에서 논쟁이 치열하지만 이토만 등의 토사를 사용하는 계획에 반대하는 것은 기지 자체에 대한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이 구시켄 대표의 판단이다.

 

오키나와 전투로 숨진 이들은 약 20만 명으로 추산된다.

희생자 대부분이 일본군이나 오키나와 주민이지만 징집된 조선인이나 일본군과 싸운 미군도 목숨을 잃었다.

 

1945년 5월 28일 자 미국 잡지 '라이프(Life)'에 실린 오키나와의 무덤 묘표 사진. 오른쪽에서 각각 2번째와 4번째 묘표에 '金山萬斗'(김산만두)와 '明村長模'(명촌장모)라는 적힌 것은 군속으로 동원된 한반도 출신 김만두 씨와 명장모 씨인 것으로 파악됐다. [동아시아 시민네트워크 제공]

 

일본 당국은 최근 발굴된 유해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해 약 700명분의 유골을 대상으로 DNA 감정을 하고 있는데 조선인이나 미군 희생자 유해가 여기 포함됐을 가능성도 있다.

구시켄은 한국과 미국의 유족을 모집해 DNA 감정에서 유골을 찾을 기회를 제공하고 이들과 힘을 합해 일본 정부의 매립 공사 계획에도 반대하려고 하고 있다.

 

그는 "한국이나 미국 사람도 (유골 찾기에) 참가할 권리가 있다"며 "매립을 막기 위해서라도 유족이 '유골을 돌려달라'는 목소리를 내면 좋겠다. 우리는 일본 국민으로서 이야기하고 있으나 당사자인 유족의 목소리는 더 무게감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약 40년간 유골 발굴 운동에 헌신해 온 구시켄이 느끼는 위기감은 어느 때보다 크다.

 

그는 유골이 섞인 토사가 매립에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올해 3월 엿새 동안 단식투쟁을 했으며 오키나와 전투 희생자 위령의 날(6월 23일)을 앞두고 이달 중순 다시 단식에 나선다.

구시켄은 많은 유족이 이미 고령인 점을 고려하면 유해 찾기는 한시가 급한 일이라며 "우리가 응원할 것이니 한국 사람들도 부디 참가해달라"고 당부했다.

 

참가를 원하는 한국 유족은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02-2139-0462)로 연락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