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이번 G7을 계기로 그 공동성명의 내용을 ‘대중 관계’에 가져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위기이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은 기회이다. 미국에 대해서는 대중 대결에서 한국의 경제적·지정학적 위상을 들이밀어야 한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을 받아 영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각)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에서 열린 ‘기후변화 및 환경 방안’을 다룬 확대회의 3세션에 참석해 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문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한국은 11일부터 13일까지 영국에서 열린 올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초청받음으로써, 국제적 지위와 위상이 분명 ‘격상’되게 됐다. 문제는 그 ‘격상’이 한국에 기회와 위기를 모두 주는 고단한 길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까지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내민 손을 잡고 뒤를 따라가기만 하면 됐다. 이제 미국은 한국을 앞장세워서, 가시덤불을 제거하고 지뢰밭을 먼저 통과하라고 채근할 수 있게 됐다. 이번 G7 정상회의와 한국의 초청은 이를 말해준다.
이번 G7 공동성명은 천안문 사태 이후 중국을 가장 명시적으로 겨냥한 것이고, 1975년 이 회의 창설 이후 중국에 대한 “가장 포괄적인 비판”이라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존 커턴 토론토대 G7 연구그룹 소장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G7은 이번 회의를 계기로 선진국들의 경제 협의체에서 지정학적 협의체로 성격을 강화했다. 부상하는 중국에 맞서는 미국 주도의 서방 헤게모니 질서에 대한 옹호가 갈수록 G7의 의제가 될 것이다.
애초 G7은 1975년 6개 선진국으로 창설될 때 당시의 오일 쇼크와 인플레이션 등 자본주의 경제질서의 혼조에 대처하는 경제 협의체로 출범했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가 1997년에 가입해 G8로 한때 확장된 것이나, 2003년 G8+5 형식으로 중국이 초청된 것도 그 일환이다. 하지만 2014년 크림반도를 합병한 러시아 축출, 중국의 본격적인 부상은 G7을 서방 주도 국제질서의 옹호체로 밀고 나갔다.
트럼프 정부가 G7에 한국·오스트레일리아·인도를 참가시켜 G10이나, 남아프리카공화국까지 더해 G11로 확대하려 한 것은 격화되는 중국과의 대결에서 우군을 확보하기 위한 몸집 불리기였다. G10 구상이 무산된 것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선진국 지위가 약화될 수 있다는 일본의 반대 때문이라고 하나, 이는 현상적인 진단이다. 그보다는 인도 등 대상 국가의 소극적 자세가 컸다. 전통적인 비동맹 국가인 인도는 G10에 가담해 선택지를 줄일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G7은 그 뒤 실질적으로 G7+2 혹은 G7+3 체제로 재편되고 있다. 이번에 한국·오스트레일리아·인도·남아공이 초청됐다. 그중 오스트레일리아는 이제 G7의 상수가 됐고, 인도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들락날락할 것이다. 한국은 초청을 받은 이상, 인도처럼 들락날락할 처지가 되기 힘들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한국이 2년 연속 초청받은데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은 의장국 영국의 영연방 국가로 초청받은 점을 들어 “한국이 사실상 G8에 자리매김한 것 아니냐는 국제적 평가가 나온다”고도 했다.
G7에 한국이 초청된 것은 명확하다. 그만큼 그들에게 중요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나, 특히 G7이 앞으로 몰입할 미국 주도 서방 헤게모니 질서의 유지에서 한국이 갖는 중요성 때문이다.
이번 G7 공동성명은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규정하며 타국의 언급조차 거부하는 신장·홍콩·대만·남중국해 문제에서 중국을 적시하며 비판했다. 이 성명은 G7 국가들이 작성한 것이지, 한국은 물론 관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그 성명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는 한국에 기회이자 위기이다. 한국이 이번 G7을 계기로 그 공동성명의 내용을 대중 관계에 가져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위기이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은 기회이다. 중국 역시 한국을 포기할 수 없고, 적대시할 수만은 없는 상황임을 우리는 이용해야 한다.
이번 G7에서 미국의 요구가 마냥 반영된 것은 아니다. 미국은 신장에서의 강제노동이라는 문구를 공동성명에 넣어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국을 옥죄려는 단초를 만들려 했다. 하지만 그 문구는 관철되지 못했다. 독일이나 프랑스는 기후위기 대처 등을 명분으로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강조해 자신들의 국익을 유지하려 했다.
한국은 이제 중국에 대해서는 G7+3의 일원으로서 입장을 내밀어야 한다. 미국에 대해서는 ‘대중 대결’에서 한국의 경제적·지정학적 위상을 들이밀어야 한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번 G7에서 미국의 대중 전략이란 “대결이나 분쟁으로 밀고 가려는 것이 아니라, 경제와 기술 분야처럼 안보 분야에서도 향후의 거칠어질 경쟁을 향해 동맹과 협력국들을 모으는 것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G7에 올라탔다. 한국의 위상은 격상됐고, 일관된 외교 노선만이 그 위상을 우리에게 기회로 만들어줄 것이다. 정의길 국제부 기자
G7 개도국 지원 등 ‘높아진 한국 위상’ 국제적 책임도 커져
반도체 · 전기차 협력 요청 등 ‘초청국’ 이상의 외교적 성과
백신 · 온실가스 등 역할 요구…강도 높은 중국 비판도 부담
문재인 대통령이 영국 콘월에서 열린 주요7개국(G7) 정상회의 확대회의 3세션에 참석하고 있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가 마무리된 13일, 문재인 대통령은 영국을 떠나 다음 순방지인 오스트리아로 향하면서 에스엔에스(SNS)에 글을 올려 ‘소회’를 적었다. 이 글에서 문 대통령은 20세기의 역사적 사건 2가지를 떠올렸다고 썼다. 1907년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와 1945년 독일의 포츠담회의였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외교 침탈을 알리기 위해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타고 헤이그에 도착한 이준 열사는, 그러나 회의장에도 들어가지 못했다”고 했고 “한반도 분단이 결정된 포츠담회의에서는 우리는 목소리도 내지 못한 채 강대국들 간의 결정으로 우리 운명이 좌우되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이처럼 과거 우리나라가 겪은 수모와 고난의 역사를 떠올린 것은 이번 G7 정상회의에 한국이 인도·오스트레일리아·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함께 초청된 데 대한 감회가 깊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엔 영국·프랑스 정상들과 양자 회담을 갖고 코로나19 백신과 첨단기술 공급망 등 국제적인 현안을 논의했고 한반도평화프로세스에 대한 국제적 협력을 요청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는 신형 백신 개발 협력에 대한 의견을 나눴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에게선 반도체·전기차 등 첨단 핵심기술 분야 협력을 요청받았다. 확대회의장에선 의장국인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의 오른편에 앉아 논의하는 장면이 보도되며 우리나라의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문 대통령은 G7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면서 “오늘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고, 세계에서 가장 성숙한 국민들이 민주주의와 방역, 탄소 중립을 위해 함께 행동하는 나라가 되었다”면서 “이제 우리는 우리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고, 다른 나라와 지지와 협력을 주고받을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이처럼 높아진 ‘국격’만큼 국제사회에서 책임도 커졌다. 문 대통령은 이번 회의에서 개발도상국을 위한 코로나19 백신 지원에 올해 1억 달러, 내년 1억 달러 등 총 2억 달러를 쓰겠다고 밝혔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한 외교 전문가는 “국제사회가 한국에 요구하는 역할은 우리나라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면서 “2억 달러도 우리 경제력에 비춰 많은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앞으로 국제적 공공재에 대한 분담 요구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코로나 19 백신 공동 구매·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에 미국은 25억 달러, 일본은 10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상향되면서, 한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탄소 중립 정책에 참여해야 한다는 압박도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을 올해 안에 마련하고,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인 ‘국가결정기여(NDC)’를 절대량 목표 방식으로 전환하여 유엔에 제출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좀 더 이른 시일 안에 구체적인 목표 수치를 제시하고 탄소 중립 정책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번 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에서 중국에 대한 비판 강도가 강해진 것도 한국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참관국으로 참석한 한국은 이 공동성명엔 서명하지 않았지만 정상회의의 주요 프로그램인 ‘열린 사회와 경제’ 성명에 이름을 올리며 ‘권위주의 발호’ ‘정치적 의도로 자행되는 인터넷 차단’ 등에 서방 선진국들과 공동대응할 뜻을 밝혔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이번 정상회의에는 초청국으로 참여하면서 결과에는 책임질 필요는 없으면서 외교적으로 얻은 것은 많았다”고 평가한 뒤 “앞으로 중국을 향한 역할을 많이 요구받고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G7 내 다른 국가와 연대를 통해 극복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과 교역이 많은 프랑스와 독일 등 미국과 다른 셈법을 가진 나라들과 함께 미-중간 냉전을 완화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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