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전언정치' 한계 노출

보수진영 일각, 회의론 ‘솔솔’

 

20일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 캠프로 알려진 광화문 한 사무실 모습. 윤 전 총장은 오는 27일쯤 대선 도전 의사를 밝힐 예정이다. 연합뉴스

 

야권 유력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 링 위에 오르기도 전에 악재가 쏟아지며 흔들리고 있다. 메시지 혼선을 빚은 대변인이 사퇴하며 ‘비대면 전언정치’의 한계를 노출한 데다 보수 진영 내부에서 검증 논란까지 불거진 것이다.

 

열흘 만에 대변인 사퇴…"필터링 원치 않았던" 윤석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첫 영입인사인 이동훈 대변인은 20일 오전 기자들에게 “일신상의 이유로 직을 내려놓는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논설위원에서 지난 10일 ‘윤석열 대변인’으로 내정된 뒤 열흘 만의 사퇴다. 이 대변인이 물러나면서 소통 창구는 온라인 홍보를 맡던 이상록 대변인으로 일원화됐다.

 

이상록 대변인은 “윤 전 총장은 지난 18일 저녁 두 대변인을 만나 ‘앞으로 국민 앞에 더 겸허하게 잘하자’고 격려했다”며 “하지만 이 대변인은 19일 건강 등의 사유로 더 이상 대변인직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대변인의 갑작스러운 사퇴는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 여부 등 정치 일정을 둘러싼 메시지 혼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대변인은 지난 18일 <한국방송>(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전 총장의 국민의힘 입당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그러셔도 될 것 같다”고 답했다.

 

2시간 뒤 이 대변인은 “입당 문제는 경거망동하지 않고 태산처럼 신중하게 행동하겠다”는 윤 전 총장의 발언을 전했지만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윤 전 총장은 <중앙일보> 인터뷰를 통해 “지금 국민의힘 입당을 거론하는 건 국민에 대한 도리·예의가 아니다”라며 직접 수습에 나섰다.

 

이런 메시지 혼선은 예견된 것이었다. 윤 전 총장은 당초 자신의 대변인 자격으로 “자신의 말을 필터링하지 않고 전달할 사람”을 찾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전 대변인은 <한국일보><조선일보> 정치부에서 잔뼈가 굵은 중견기자 출신이었다.

 

윤 전 총장 쪽 관계자는 20일  “이 전 대변인의 발언들이 윤 전 총장의 평소 생각과 너무 달랐다. 이 대변인이 윤 전 총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자신의 발언에 손대지 말고 그대로 전달하라는 윤 전 총장의 요구와 정무참모로서의 역할도 함께 하겠다는 이 전 대변인의 판단이 충돌하며 캠프가 공식 출범하기도 전에 대변인 사퇴로 이어진 것이다.

 

결국 정치를 하겠다면서도 대중과 직접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인 메시지만 전달하는 ‘윤석열식 비대면 전언정치’가 한계에 봉착한 셈이다. 영남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윤 전 총장은 전언을 통하는 ‘간보기 정치’에서 탈피해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줘야 할 때”라며 “최재형 감사원장 등 다른 대안까지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입’으로 존재를 증명해내지 못하면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수 평론가 “윤석열 X파일, 방어 힘들어”…시작된 자체 검증

 

 

대변인이 사퇴하는 어수선한 상황에서 보수 진영 내부에선 윤 전 총장을 둘러싼 검증 논란까지 불거졌다. 보수 성향의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감과 논쟁 정책센터’ 소장이 윤 전 총장과 처가 관련 의혹이 정리된 파일을 입수했다며 “방어가 어렵겠다”는 평가를 내놓은 것이다. 장 소장은 이런 글을 페이스북에 올린 뒤 삭제했지만 보수진영 내부에서 나온 평가인 만큼 파장이 계속되고 있다.

 

장 소장은 지난 19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얼마 전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처, 장모의 의혹이 정리된 일부의 문서화된 파일을 입수했다”며 “윤 전 총장에게 많은 기대를 걸었지만, ‘이런 의혹을 받는 분이 국민의 선택을 받는 일은 무척 힘들겠구나’라고 고심 끝에 결론을 내렸다”고 적었다. 이어 그는 “윤 전 총장이 높은 지지율에 취해 있는 현재의 준비와 대응 수준을 보면, ‘방어는 어렵겠다’라는 생각이 든다”고도 했다.

 

그가 입수했다는 이른바 윤석열 엑스파일은 각종 의혹들이 정리된 문건이며, 논란이 예상보다 커져 글을 삭제했다고 설명했다. 장 소장은 이날  “정권 교체를 반드시 해야 되는데 지금 전력으로 윤 전 총장이 네거티브 방어가 되겠냐는 걱정에 올린 것”이라며 “내용은 윤 전 총장 본인 외에는 절대 밝히지 않을 계획이다. 연락이 오면 윤 전 총장에게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윤석열 엑스파일’은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윤 전 총장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며 처음 언급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공개된 적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엑스파일의 내용을 봤더니 윤 전 총장이 대응하기 어렵겠다’는 평가가 나온 것이다.

 

장 소장은 김무성 의원실 보좌관 출신으로 최근에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비전전략실에서 일하기도 했다. 정치권과 거리를 유지하며 훈수를 두는 단순한 정치 평론가가 아닌 셈이다. 국민의힘에서는 “아군 진영에서 수류탄이 터졌다”는 반응이 나왔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엑스파일을) 단순히 ‘봤다’가 아니라 ‘방어하기 힘들겠다’, ‘윤석열은 끝났다’라는 의미로 ‘윤석열로는 어렵다’는 주장이 장 소장의 의도”라며 “윤석열 엑스파일을 어떤 경로로 입수했는지 분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비판했다. 장제원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 “윤 전 총장을 끌어내리기 위한 음습한 정치공작의 냄새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야권의 일부 인사들이 민주당과 내통해 그들의 세작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며 장 소장을 비난했다.

 

이날 서울 강남역에서 열린 청년들과의 자유토론 행사를 마친 이준석 대표도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정부가 윤 전 총장을 탄압하기 위해 그렇게 노력을 많이 했는데, 만약 엑스파일 문서가 돌아다닐 만한 잘못이 있었다면 작년에 (문재인 정부가) 윤 전 총장을 압박했을 것”이라며 “진실이 아닌 내용이나 큰 의미 없는 내용을 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윤 전 총장 쪽 이상록 대변인도 이날 밤  “엑스파일의 실체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번 건에는 대응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내부에서 타이머가 점화된 ‘검증의 시간’에 윤 전 총장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민의힘의 한 3선 의원은  “윤 전 총장이 대선 출마를 하겠다면 당연히 받아야 할 검증이 드디어 시작됐다”며 “측근의 입에만 의존하는 정치는 실패한 것을 인정하고, 본인이 직접 나서서 정면돌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의원도 “지금 주변에 있는 사람들로는 방어가 어렵다는 점이 어느정도 드러난 것”이라며 “타격을 최소화하려면 하루빨리 당에 들어와 당 차원의 조직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나래 배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