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정부 조기 붕괴 후폭풍]

안보정책 초점 중동→중·러로…`바이든식 미국 우선주의' 낭패

트럼프의 철군 합의 이어받아 최장기 전쟁 마침표 찍었지만...

 

공화당 “이것은 바이든의 사이공”

블링컨 “사이공과 달라” 강력 반박

미국 내 여론은 철군 찬성 압도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4월14일 백악관에서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를 완료하기도 전에 아프간이 이슬람 무장세력 탈레반의 손에 넘어가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그는 이달 말을 목표로 아프간 주둔 미군의 질서 있는 철수를 진행해왔으나, 예상치 못한 탈레반의 기세에 놀라 황급히 대사관을 버리고 탈출하는 모양새가 됐다. 20년 지속된 미 역사상 최장기 전쟁의 종식이라는 역사적 과업은 실행 과정에서 생겨난 오판과 혼란으로 미국과 바이든 대통령에게 수모를 안기고 있다.

 

아프간에서의 미군 철수는 바이든 대통령의 오래된 소신과 미국의 전략적 정책 전환이 맞물린 야심 찬 결정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상원 외교위원장이던 2001년 아프간 전쟁 개시에 찬성했으나, 전쟁이 길어지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내던 2009년 아프간 병력 증원에 반대하며 국방부와 충돌했으나, 오바마 정부에서 아프간 병력은 오히려 11만명까지 늘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최고 통수권자가 된 뒤 지난 4월 아프간 철군 방침을 발표하고 실행에 나섰다. 그는 지난달 연설에서 “얼마나 많은 미국의 딸·아들을 얼마나 오래 거기에 두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14일(현지시각) 낸 성명에서도 아프간에 20년간 1조달러를 투입하고 30만명의 아프간 군인·경찰을 훈련한 점을 언급하면서 “아프간 군대가 자기 나라를 지키지 못한다면 미군이 1년, 5년 더 있어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프간 철군은 미국이 중동에서 벗어나 외교정책의 초점을 중국, 러시아, 사이버 테러 등 새로운 위협으로 옮기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바이든 대통령은 ‘중산층을 위한 외교’를 내걸고, 해외에 쏟을 에너지를 국내 재건에 집중하려 하고 있다. 그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강조하면서도 아프간 철군에 따른 현지 여성 인권 악화 등에 대한 우려에는 “외국의 내분에 미군을 끝없이 배치하는 것은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 우선주의’ 깃발 아래 해외 주둔 미군 철수를 강조하고 ‘중국 때리기’에 집중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도 결과적으로 겹친다. 지난해 2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올해 5월1일까지 미군을 포함한 동맹군이 철군하기로 탈레반과 협정을 맺었다. 아프간 철군은 바이든식 ‘미국 우선주의’인 셈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2011년 오사마 빈라덴이 제거됐고 알카에다가 약화했다는 점 또한 아프간 철군의 이유로 든다. 미국 내 여론 또한 우호적이다. 4월 말 <더 힐>과 해리스엑스가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3%가 철군에 찬성했다.

 

그러나 아프간 주둔 미군 철군 막바지에 탈레반이 아프간을 순식간에 장악해버림으로써 미국은 체면을 구겼다. 미 정부는 탈레반의 장악 능력을 과소평가했고, 아프간 정부 군대를 과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기자들에게 “탈레반보다 전쟁 수행에서 더 잘 훈련되고 무장되고 능력있는 아프간 군대의 능력을 믿는다”며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미 정부 안에서 아프간 정권이 이달 안에 붕괴할 것으로 예상한 이는 없었다고 <워싱턴 포스트>가 고위 관리를 인용해 전했다. 지난 6월까지 미 관리들은 아프간 붕괴 시점을 미군 철수 뒤 6개월~1년 사이로 예상했고, 국방부는 지난주에는 90일로 예측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15일 방송 인터뷰에서 아프간 정권 붕괴가 예상보다 빨랐다고 인정했다.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스티브 스컬리스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는 <시비에스>(CBS) 인터뷰에서 “바이든은 사이공처럼 헬기를 통한 대사관 대피를 못 볼 것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여기에 있다”며 “이것은 바이든의 사이공 순간”이라고 말했다. 1975년 베트남전 패망 때 미국이 헬기를 동원해 탈출했던 치욕적 장면에 이번 일을 빗댄 것이다.

 

이 당의 리즈 체니 하원의원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을 싸잡아 비판했다. 그는 성명을 내어 “트럼프-바이든 참사는 테러리스트와 협상하며 그들을 평화의 파트너라고 주장한 트럼프 정부에서 시작했고, 바이든이 아프간을 포기하면서 미국의 굴복으로 끝을 맺었다”고 비판했다.

 

이에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에이비시>(ABC) 인터뷰에서 테러 세력이 미국을 공격하지 못하게 하는 등 아프간에서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며 “이것은 명백히 사이공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그는 또한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탈레반이 맺은 미군 철군 합의를 물려받았으며, 철군하지 않으면 미국과 탈레반은 다시 전쟁하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미국 믿어도 될까?’…아프간 혼란 속 짙어지는 의구심

영·독·UAE 등 동맹국들, 미국에 의구심

중국 “미국 믿어봤자 불운에 직면한다”

 

탈레반 전사들이 16일 아프가니스탄 카불 외곽의 아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경계를 하고 있다. 카불/로이터 연합뉴스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빠르게 점령하면서, 미국과 경쟁하는 중국과 러시아는 물론 유럽과 아랍의 미국 동맹국들도 미국의 외교 정책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는 15일 아프간 사태가 동맹국들에게 미국의 안보 정책과 미국에 안보 문제를 의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나타내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이 동맹국인 자신들과 충분히 협의하지 않은 채 아프간 정책을 결정한 것에 대한 우려를 제기하는 것이다.

 

영국의 테리사 메이 전 총리 시절 국제개발부 장관을 지낸 로리 스튜어트는 “미국의 군사 능력만큼이나 민주주의와 자유를 수호하는 미국의 역할이 다시 위태로워졌다”며 “세계에 영감을 주고, 등불이었던 서구 민주주의가 등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 외교위원회 국장인 캐서린 클리버 애쉬브룩도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국들과 투명하고, 공개적인 교류를 약속하며 취임했다”며 “미국은 대서양 동맹국과의 관계가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립서비스에 그쳤고, 여전히 유럽 동맹국들이 미국의 우선순위를 따라야 한다고 믿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은 이번 사태로 2015년 시리아 내전 때처럼 수많은 난민이 유럽으로 밀려들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아랍의 미국 동맹국도 비슷한 의문에 직면해 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안보 컨설턴트 이네그마의 책임자인 리아드 카와지는 <워싱턴 포스트>에 “아프간에서 벌어지는 일이 도처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며 “우리는 러시아가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과 미국이 아프간에서 손을 떼면서 큰 혼란을 초래한 것을 목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좀 더 직설적으로 미국을 비판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이날 홍콩을 겨냥한 논평에서 홍콩을 위해 ‘대기하겠다’는 미국의 약속을 믿지 말라는 신호로 아프가니스탄을 인용했다. 이 매체는 “미국 정치인들이 누구와 함께 서겠다고 주장하든, 결국 불운과 사회 불안, 심각한 결과를 겪게 된다는 사실이 거듭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러시아 외교국방정책협의회 의장인 표도르 루키야노프는 “러시아는 카불에서 미국이 설치한 정부가 무너지는 속도에 충격을 받았다”며 “소련이 남긴 정부는 붉은 군대의 철수 이후 3년은 버텼다”고 비꼬았다. 소련은 1979년 아프간을 침공했다가 무장 독립세력인 무자헤딘의 저항을 버티지 못하고 1989년 철수했다. 무자헤딘은 1992년 친소 정권을 무너뜨리고 아프간 이슬람 공화국을 세웠다. 최현준 기자

 

‘탈레반 불똥 튈라’ 중국·러시아 손잡고 아프간 안정화 모색

중 “내정간섭 안해…평화.재건 지원” 아프간 혼란, 신장위구르 영향 우려

일대일로 사업에 아프간 안정 필수…상하이협력기구, 재건 주도 주장도

러, 중앙아로 극단주의 진출 경계, `이해일치' 양국 군사훈련 등 공조

 

2018년 6월 상하이협력기구(SOC)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을 방문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오른쪽)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의장대를 사열하는 모습. 베이징/AP 연합뉴스

 

탈레반의 카불 입성으로 중앙아시아 정세가 요동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 관련 공조체제를 강화하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양국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가 향후 아프간 정세와 관련해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16일치 사설에서 “타국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 것은 시종일관 중국 외교정책의 원칙”이라며 “중국은 미국이 아프간을 떠난 뒤 남긴 ‘진공’을 메울 뜻이 없으며, 서방이 쳐놓은 함정에 뛰어들지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신문은 “중국은 아프간의 조속한 평화 정착과 재건을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의 가장 큰 우려는 아프간의 혼란상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서부 신장위구르(웨이우얼)자치구까지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안정된 아프간’은 중앙아시아를 관통하는 중국의 ‘일대일로’(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의 전제이기도 하다. 그간 중국이 △테러리즘 △극단주의 △분리주의를 이른바 ‘3대 악’으로 규정하고, 이들 세력과 절연할 것을 탈레반에 촉구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달 28일 톈진에서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이끄는 탈레반 대표단을 만난 자리에서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를 근거지로 하는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에 대한 우려를 거듭 밝혔다. 그는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은 중국의 국가안보와 영토보존에 직접적인 위협”이라며 “탈레반이 이 단체와 분명한 선을 긋고, 지역 안전과 평화 발전을 위한 장애물을 제거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발휘해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러시아 역시 ‘아프간 안정화’가 중요한 전략적 목표다. 카불 함락 이전부터 러시아 쪽은 탈레반이든 아프간 정부군이든 정세를 안정화시켜 혼란한 상황이 국경 너머 중앙아시아 각국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최대 관심사였다. 아프간을 기반으로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중앙아시아까지 진출하는 상황을 러시아로선 좌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도 탈레반의 귀환에 적극 대비해왔다. 바라다르가 이끈 탈레반 대표단이 지난 3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데 이어, 지난달 8일에도 탈레반 쪽 협상단이 모스크바를 다시 찾았다.

 

아프간 정세 안정화란 공통의 목표 아래 중-러 양국은 이미 공조체제 강화에 나섰다. 지난 9일부터 중국 닝샤후이족자치구에서 1만여 병력이 참여하는 대대적인 훈련을 벌인 바 있다. 두 나라는 새달 중순 러시아 오렌부르크에서 병력 4천여명이 참여하는 합동 대테러 훈련도 벌일 예정이다.

 

두 나라가 주도하고 아프간 주변 각국이 참여하는 상하이협력기구 차원의 공조도 모색하고 있다. 상하이협력기구는 아프간 내전이 이어지던 1996년 4월 중국·러시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등 5개국이 참여해 설립했다.

 

이어 우즈베키스탄(2001년)과 인도·파키스탄(2015년)까지 동참해 회원국이 8개국으로 늘었다. 회원국 모두 아프간 문제와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아프간도 2012년부터 옵서버로 참여하고 있다. 미국과 나토가 떠난 아프간의 안정화 및 재건·복구 논의를 상하이협력기구가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베이징/정인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