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과 시한연장 담판 실패, 선택지 없어…IS 등 테러위협도 변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요청과 내부 비판에도 이달 말로 못 박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 시한을 고수하고 있다.

 

24일 CNN방송은 바이든 대통령의 이 같은 방침의 기본 배경에는 무엇보다 20년을 끌어온 아프간 전이 미국의 이익에 더 이상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확고한 철학이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며 경기 회복이 가시권에 접어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국익에 보탬이 되지 않는 전쟁에 더 이상 쏟아부을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견제를 외교·안보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놓고 있는 상황에서 중동 문제가 후순위로 밀린 측면도 있다.

 

그러나 인도주의 측면에서 탈레반의 점령 이후 가혹한 보복이 예상되는 아프간인들을 최대한 대피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철군 연장조차 단호하게 거부한 데에는 현실적 이유가 크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전날 카불에서 탈레반의 실질적 지도자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와 비밀회동을 갖고 미군 철수 시한 연장을 논의했지만, 담판에 실패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CIA 출신인 로버트 베어 CNN 정보분석가는 탈레반이 모든 카드를 쥐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바이든 정부에 선택권이 없다고 지적했다.

 

탈레반의 경고에도 철군 시한을 연장할 경우 무력 충돌이 벌어질 수 있고, 이는 미국의 시나리오 밖이기 때문이다.

 

베어는 "어느 순간이든 탈레반이 카불 공항을 폐쇄할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며 "만약 탈레반이 31일까지 철수하라고 한다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면 아프간을 재침공해야 하는데,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여러 차례 언급했듯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 이후 이슬람 국가(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카불 공항 테러 가능성도 무시하기 어려운 현실적 위협이다.

 

카불 현지에서 어떤 인명 피해라도 발생할 경우 바이든 대통령이 이제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한층 거센 후폭풍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에서, 되도록 이른 시일 내에 철군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한 연장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거세다.

 

미 하원의원들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 오스틴 국방장관 등과 아프간 대피작전과 관련한 기밀 브리핑을 받고, 철군 시한을 고집하지 말 것을 대통령에게 권고할 것을 당부했다.

 

G7 긴급 정상회의에서도 의장국인 영국을 비롯해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자국민과 아프간전에 협력한 현지인의 안전한 대피를 위해 철군 시한을 연장해야 한다고 압박했지만, 합의 도출에 실패했다.

 

특히 이달 말 철군 시한까지 아프간에 체류하고 있는 미국인들의 대피는 가능하겠지만 수만명에 이르는 특별비자를 받은 아프간 조력자들의 피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인도주의 차원의 비판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탈레반 정부는 이미 아프간인의 카불 공항 이동을 전면 통제하고 있다.

 

미군의 현지 대피가 속도를 내며 지난 14일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 이후 모두 7만여명이 카불 공항을 빠져나간 것으로 추산된다.

 

미군의 카불 현지 대피 작전을 지휘하고 있는 파렐 설리반 준장과 크리스토퍼 도나휴 소장은 "대피는 매일 24시간 진행되고 있다'며 "이런 일은 경험해보지 못했다"며 현장의 다급한 상황을 전했다.

 

이들은 ABC방송과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되도록 많은 사람을 대피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군 복무 기간 무수한 전투와 위험 지역에 파견됐지만, 이런 일은 전례가 없다.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고 말했다.

 

목소리 높이는 탈레반…철군·제재 놓고 쪼개지는 국제사회

텔레반, 외국군 31일 철군 거듭 강조…"아프간인 출국은 불허"

바이든 철군 시한 고수에 G7 갈라져…"바이든이 상처에 소금 뿌려“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의 자비훌라 무자히드 대변인이 24일(현지시간) 아프간 카불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국내외에서 갈수록 존재감을 키워가는 가운데 국제사회는 철군 시한, 제재 여부 등을 놓고 갈라지는 모습이다.

 

25일 외신을 종합하면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전날 카불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스스로 정한 시한인 이달 말일까지 철군을 완료해야 한다고 밝혔다.

 

탈레반은 지난 23일 8월 31일을 '레드라인'으로 정하고 경고한 데 이어 또 미국을 압박한 것이다.

 

8월 31일은 탈레반의 말처럼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정한 시한이다.

 

그러나 탈레반이 예상보다 빠르게 아프간을 장악했고 각국이 시한 내에 자국민과 자국에 협력한 아프간인을 대피시키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이와 관련해서는 서방 국가의 입장도 갈렸다.

 

우선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철군 작업을 애초 목표대로 오는 31일 종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주요 7개국(G7) 정상들과의 화상 회의에서도 아프간에서의 목표 달성에 따라 임무를 예정된 시간에 끝낼 것이라고 통보했다.

 

이로 인해 G7 회의에서는 시한 연장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대피 시한 연장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회의 결과를 두고서는 대피 시한을 둘러싸고 회원국 간 마찰이 빚어졌다거나 미국과 유럽 지도자 사이의 균열을 키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바이든 대통령이 유럽 정상들과 이미 균열된 관계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며 바이든이 아프간 철수 처리 과정에서 생긴 손상을 인정할 것이라는 희망을 내동댕이쳤다고 지적했다.

 

    중국 양제츠 정치국원(오른쪽)과 왕이 외교부장(가운데) [epa=연합뉴스]

 

국제사회는 '탈레반의 아프간'을 인정하는 문제를 놓고도 입장이 다른 상황이다.

 

탈레반의 인권 탄압 문제 등을 거론하며 제재 불가피론을 펼치는 서방과 달리 중국은 대(對) 탈레반 포용 정책을 앞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양제츠(楊潔篪)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은 전날 화상으로 진행된 브릭스(BRICS) 안보 문제 고위급 회의에서 "정치적 해결이 유일한 출구"라고 말했다.

 

왕이(王毅)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도 전날 시그리드 카그 네덜란드 외교장관과의 통화에서 "아프간 문제를 만든 나라인 미국은 그냥 떠나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되며, 어떤 제재를 할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관계가 껄끄러운 파키스탄도 탈레반 정권 탄생을 은근히 반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카불 공항서 미군 수송기 탑승 기다리는 아프간인들[AFP=연합뉴스]

 

새 정부 출범을 준비 중인 탈레반은 철군 시한 외 여러 이슈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국 등이 자국 협력 아프간인 대피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앞으로 아프간인의 출국을 불허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무자히드 대변인은 전날 "미국이 아프간 내 숙련된 기술자와 전문가를 데려가는데, 이를 중단할 것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프간인들의 탈출이 불쾌하다"라면서 "더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카불 공항에서는 이미 미군 감축이 시작됐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전날 보도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방부 관계자는 대피 작전에 투입된 미군은 최대 5천800명에 달했는데, 현재는 5천여명 규모라고 말했다.

 

탈레반은 지난 5월 미군이 본격적으로 철수하자 아프간을 순식간에 점령하기 시작해 지난 15일 수도 카불까지 장악했다.

 

미국은 탈레반의 예상치 못한 속도전에 밀려 초기 대피 목표를 채우지 못하다가 지난 22일부터 속도를 내기 시작해 23일 하루에만 2만1천여명을 탈출시켰다.

 

백악관은 탈레반의 아프간 장악 이후 지금까지 미국이 아프간에서 탈출시킨 외국인과 현지인을 총 7만7천여명으로 파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