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외교위원, ‘오커스 유럽 홀로서기 우선 사안 만들어’

미 주도 ‘앵글로 동맹’ 강화에 서구 균열 드러나

호주와 잠수함 계약 무산된 프랑스…“등에 칼 꽂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파리/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가 삼각동맹체인 ‘오커스’를 결성했다는 소식에 유럽이 크게 출렁이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추진 중이던 잠수함 건조 계획이 무산된 프랑스는 크게 반발 중이고, 유럽연합(EU) 차원에서도 중국과 관계를 설정하는데 딜레마가 커지고 있다. 중국을 겨냥한 미국 중심 영어권 국가들의 ‘앵글로 블록’이 강화되며 비영어권 국가들이 큰 소외감을 느끼는 역풍이 부는 것이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은 16일 <프랑스 엥포> 라디오와 회견에서 오커스 결성 발표에 “진정으로 등에 칼을 꽂았다”며 “우리는 오스트레일리아와 신뢰관계를 구축했는데, 이 신뢰가 배반당했다”고 격분했다. 프랑스는 호주와 12척의 잠수함을 건조하는 500억달러 크기의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었는데, 미-영 두 나라가 오커스 결성 발표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핵잠수함 건조 및 보유를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 사업이 무산됐다.

 

게다가 프랑스는 오커스 결성 소식을 사전에 전달받지 못하고 언론 보도로 처음 접하면서 미국 등에 대해 극도의 실망과 배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르드리앙 장관은 호주와의 잠수함 건조 계획에 대해 “우리는 이를 미국과 최근까지 논의했다”고 미국의 독주를 지적했다.

 

유럽연합 차원에서도 당혹감과 실망이 표출됐다. 조셉 보렐 유럽연합 외교담당 집행위원은 프랑스가 왜 그 협정에 실망했는지 이해한다며 유럽연합은 이 새로운 동맹체에 대해 (미국과 사전에) 협의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우리로 하여금 유럽의 전략적 자치 문제를 우선 사안으로 할 필요성에 대해 숙고하게 했다”며 “이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 생존해야 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스콧 모리슨 오스트레일리아 총리가 16일 캔버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함께 미-영-호 3개국 안보 협력체인 오커스(AUKUS)를 창설한다는 발표를 하고 있다. 캔버라/AP 연합뉴스

 

보렐 위원의 이런 발언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후 유럽과의 ‘대서양 동맹’을 격하해온 미국의 안보 정책에 대해 미국이 쌓아온 우려와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며 미국 안보 정책의 중심축이 영어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앵글로 블록’ 강화로 옮겨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 <시엔엔>(CNN)도 “프랑스의 손상된 자존심과는 별도로, 영어권 해양세력들의 새로운 지정학적 협약(오커스)은 유럽연합에게 전략적 고민을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유럽연합의 한 고위 관리는 이 방송에 “영어권 국가들이 중국에 대항하는 매우 호전적인” 동맹을 결성하는 것이라며 “이 나라들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한 같은 나라들이다. 우리 모두는 그 결과를 알고 있다”고 말했다.

 

유럽연합은 중국에게 인권 개선 등을 촉구하면서도 에너지와 통상 분야 등에선 동반자 관계를 유지해, 미-중 대결에서 완충적 역할을 하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미-영-호 동맹 결성 발표로 인해 유럽의 역할이 큰 제약을 받게 됐다. 오스트리아 유럽안보정책연구소의 벨리나 차카로바 소장은 “미국이 유럽연합의 국가들보다는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와 안보방위 관계에 더 많은 정치적 자산을 쓰면서 투자하고 있다는 것은 아주 명확해졌다”고 지적했다.

 

영국 내에서도 여러 우려가 나왔다. 테리사 메이 전 총리는 의회에서 워싱턴이 태평양에서 영국에게 더 큰 역할을 요구하고, 이번에 오커스를 결성하게 됨에 따라 “영국이 대만을 두고 점점 공격적으로 되는 중국과의 전쟁으로 끌려들어갈 수 있음을 의미하느냐”고 물었다. 메이 전 총리는 보리스 존슨 총리에게 “만약 중국이 대만 침공을 시도한다면, 영국이 그 대응으로 취할 입장에 관련해 이 조약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

 

미국은 프랑스 등을 달래기에 나섰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16일 오커스 결성을 발표하는 3국 외교장관 공동 기자회견에서 “프랑스는 몇 세대에 걸친 다른 많은 사안 등에서 사활적인 동반자이고 우리는 인도-태평양과 전 세계에서 우리의 대서양 양안협력을 심화하는 모든 기회를 찾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도 수익성 높은 수출 계약이 무산된데 대한 프랑스의 실망은 이해한다면서도 결국 오스트레일리아가 선택을 내린 것이라는 취지로 프랑스의 불만을 일축했다. 정의길 기자

 

미·영·호 오커스 동맹 역풍 커져…프랑스, 미·호 주재 대사 소환

 

르드리앙 외교장관, ‘미국·호주 수용할 수 없는 행동했다’

잠수함 수출 무산에다 태평양에서 미국 독주에 반발

미국과 유럽연합의 균열 점차 심화될 듯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이 17일 밤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주재 대사 소환을 발표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프랑스가 미국·영국·오스트레일리아의 오커스 동맹 결성에 반발해 이들 국가들에 주재하고 있던 대사를 소환했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교장관은 17일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주재 대사 소환을 발표하며 이 결정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지시한 항의 조처라고 밝혔다.

 

프랑스는 지난 2016년 오스트레일리아와 잠수함 12척을 건조하는 270억달러 규모의 수출 계약을 체결했는데, 미국과 영국은 15일 오커스 동맹 결성을 발표하며 오스트레일리아에게 핵잠수함 건조 기술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서 프랑스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잠수함 수출 계약이 무산됐다.

 

프랑스는 이 소식을 사전에 통보받지 못했다. 르드리앙 장관은 앞서 세 나라의 결정은 프랑스의 “등에 칼을 꽂는 것이다”고 격렬하게 비난했다. 이어 이날 성명에선 미-영-호의 오커스 동맹이 “동맹들과 협력자들 사이에서 수용할 수 없는 행동”이라며 “그 결과는 “우리의 동맹과 협력 관계, 그리고 유럽에게 인도,태평양의 중요성에 관해 우리가 할 일의 근저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고 말했다.

 

프랑스가 동맹관계인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대사를 소환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르드리앙 장관은 “이 예외적인 결정은 지난 15일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이 결정한 발표의 예외적인 중대성에 의해 정당화된다”고 말해, 대사 소환이 지난 조처에 대한 보복임을 확실히 했다.

 

미국이 주도한 오커스 동맹 결성은 미국이 안보 분야에서 영어권 국가들의 ‘앵글로 동맹’을 강화하고 유럽연합(EU)을 소외시키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유럽의 이런 우려를 강화하고 있다.

 

프랑스는 그동안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지역과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미국이 대테러전을 수행하는데 전략적 협력을 해왔지만, 이번 오커스 동맹을 사전 통보조차 받지 못한 것에 격분하고 있다. 특히,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연합이 ‘전략적 자치’를 키워 독자적 방위능력을 강화해야 하고,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가 태평양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혀 왔다. 프랑스는 남태평양에 폴리네시아 등 200만명이 거주하는 자치령 영토가 있다. 이곳에 배치된 병력은 7000여명이다.

 

오커스 결성 발표에 대한 반발이 유럽에서 커지자 미국은 당혹해 하고 있다. 미국 백악관의 한 고위 관리는 “우리는 필리페 에티엔느 프랑스 대사의 파리 소환을 놓고 프랑스와 밀접한 접촉을 하고 있다. 그들이 그런 조처를 취한 것은 유감이나, 오랜 동맹 과정 동안 다른 지점들에서 했던 것처럼 앞으로 우리의 차이를 풀기 위한 관여를 계속할 것이다”고 말했다. 또 “프랑스는 우리의 가장 오래된 동맹이고 가장 강력한 협력자이고, 우리는 오랜 역사, 민주적 가치, 국제적인 도전에 대처하기 위한 협력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의길 기자

 

오커스 창설... 미 · 영, 중국 보란 듯 “호주에 핵잠수함 보유 지원”

미·영·호주 새 안보 파트너십 ...바이든 “인도·태평양 평화·안정 긴요”

미, 영국에만 지원하던 핵잠 기술 호주에도, 미국의 중국 견제 보강

핵확산 우려에 “글로벌 비확산에 전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 백악관에서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호주)의 새 안보 파트너십인 ‘오커스’(AUKUS) 창설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다른 두 정상이 화상으로 참여한 가운데 하고 있다. 왼쪽 화면은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 오른쪽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워싱턴/EPA 연합뉴스

 

미국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호주)가 15일 새로운 3각 안보 동맹체 ‘오커스’(AUKUS)를 창설하기로 하고,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지원하기로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빠져나오기가 무섭게 동맹들과 손잡고 중국 견제 수위를 한층 끌어올리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를 화상으로 연결한 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모두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인도태평양에서의 평화와 안정성 보장의 긴요함을 인식하고 있다”며 이 같은 계획을 발표했다. 새로운 3각 동맹의 이름인 오커스는 호주·영국·미국의 영문 글자를 합친 것이다. 3국은 모두 영어를 사용하며 바다를 끼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들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것은 우리 힘의 가장 큰 원천인 동맹들에 투자하는 것이고, 그들이 오늘과 내일의 위협에 더 잘 대처하도록 업데이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3국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우리는 규칙에 기초한 국제 질서라는 지속적 이상과 공동 약속에 따라 파트너 국가와의 협력을 포함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외교, 안보, 국방 협력을 심화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3국은 사이버, 인공지능, 양자기술, 해저 기술 등의 분야에서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호주에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지원하는 것은 미-중 전략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나온 파격적이고 이례적인 조처다. 3국 정상은 이날 중국을 언급하지 않았지만 경제, 군사, 기술 분야 등에서 중국의 확장 억제를 겨냥한 것이라는 점은 명확하다.

 

미국은 옛 소련에 대응할 목적으로 1958년부터 영국하고만 핵잠수함 추진 기술을 공유해왔으나, 호주에게도 문을 열었다. 60여년 틀어쥐고 있던 핵 기술을 공유하면서까지 호주의 군사력을 대폭 증대시켜야 할 정도로 중국의 확장을 심각하게 우려한다는 뜻이다. 핵추진 잠수함은 기존의 재래식 잠수함에 견줘 잠항 시간이 길고 빠르고 조용하며, 적의 탐지도 어렵다.

 

미 정부 고위 관리는 기자들에게 “이는 호주가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역할을 해서 미국의 역량을 보강할 수 있게 해준다”며 “인도·태평양에서 평화와 안정성 유지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과 영국은 앞으로 18개월 동안 호주에 기술·전략팀을 보내 호주의 핵추진 잠수함 보유를 위한 세부사항을 협의할 예정이다. 모리슨 총리는 핵추진 잠수함이 호주 남부 애들레이드에서 3국 협력으로 건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결정은 중국과 관계가 악화한 호주 입장에서도 군사력 증강을 뛰어넘는 중대한 전략적 결정이다. 호주는 미·일·인도·호주의 4자 협의체인 쿼드(Quad), 영어권 5개국인 미·영·캐나다·호주·뉴질랜드 5개국이 참여한 기밀정보 공유동맹인 ‘파이브 아이즈’의 회원국으로, 이미 미국, 영국과 높은 수준의 협력 관계다. 이에 더해 미·영의 지원으로 향후 핵추진 잠수함을 갖추고 중국 근해를 누빌 수 있게 됐다.

 

휴 화이트 호주국립대 교수는 <뉴욕 타임스>에 “아시아에서 신냉전에서 미국이 이길 것이라는 쪽에 호주가 내기를 걸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해진다”고 말했다.

 

핵추진 잠수함 기술 지원은 핵확산을 부추긴다는 우려도 낳을 수 있다. 3국 정상은 이를 의식한 듯 “3국은 글로벌 비확산에서 리더십 유지에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리슨 총리는 “호주는 핵무기 획득이나 민간용 핵능력 확립을 추구하고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호주는 자체적으로 고농축 연료를 생산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말해,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를 미국에서 수입해 사용할 것임을 내비쳤다. 미 정부 고위 관리도 “이 기술은 극도로 민감하다”며 “솔직히 이것은 많은 측면에서 우리 정책의 예외다. 오늘 이후 우리가 이걸 다시 하진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영국, 호주 외에 다른 나라에는 핵추진 잠수함 지원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오커스 신설로 미국은 동맹 규합을 통한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한 견제망을 한층 더 다양화했다. 미국은 한국, 일본, 독일 등 동맹과의 양자 관계에 더해, 유럽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인도·태평양에서 미·일·인도·호주 4개국의 쿼드를 그물망으로 갖고 있다. 영어권 5개국 미·영·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정보동맹인 ‘파이브 아이즈’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오는 21일 뉴욕 유엔 총회 기조연설, 22일 백신 정상회의 개최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리더십 강화에 나선다. 그는 24일에는 백악관에서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모리슨 호주 총리와 쿼드의 첫 대면 정상회의를 연다. 모두 동맹을 규합해 중국을 견제하는 성격으로 볼 수 있다.

 

류펑위 미국 주재 중국대사관 대변인은 “국가 간 협력이 특정국가를 표적으로 한 배타적 체제를 구축하거나, 제3국의 이해를 해치는 쪽으로 이뤄져선 안된다”고 반발했다고 16일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그는 이어 “관련국들은 냉전적 사고와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떨쳐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 베이징/황준범 정인환 특파원

 

미-영, 오스트레일리아와 핵잠수함 협력…한국에도 ‘핵잠 개발’ 열리나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이나 미국 반대로 쉽지 않아

미 당국자 “호주 허용은 예외적인 일”…확대 해석 경계

 

미국 해군의 버지니아급 핵추진잠수함 ‘일리노이’(SSN 786)가 13일 하와이 진주만에 정박하고 있다. 미국 해군 제공.

 

미국과 영국, 오스트레일리아가 15일 3국간 안보협력체인 ‘오커스’(AUKUS)를 발족하면서 첫 구상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핵추진잠수함 보유 지원을 꼽아, 한국의 핵잠수함 개발 구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비상한 관심을 끈다.

 

핵잠수함 개발은 문재인 대통령 대선 공약이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이던 2017년 4월 대선 토론회에서 “핵잠수함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대가 됐고, 이를 위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논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실제 문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이후인 같은 해 8월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핵잠수함 개발 문제를 거론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핵잠수함에 깊은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해 7월엔 김현종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차세대 잠수함은 핵연료를 쓰는 엔진을 탑재한 잠수함”이라며 핵잠수함 추진 의지를 보였다.

 

4천t급 잠수함, ‘핵추진’으로 가나

 

핵잠수함의 군사적 필요성은 2010년대 중·후반 이후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북극성’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특히 힘을 얻었다. 북한은 2015년 5월 ‘북극성’ 미사일을 첫 시험 발사한 이후 2019년 10월 ‘북극성-3형’을 시험 발사했고, 지난해 10월과 올해 1월 열병식에선 ‘북극성-4ㅅ’, ‘북극성-5ㅅ’도 차례로 선보였다.

 

당시 북한이 잠수함을 우리 후방 해역에 몰래 보내, 배후에서 북극성을 발사할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자, 핵잠수함을 개발해 대응하자는 논리가 제시됐다. 우리 군의 핵잠수함을 북한 잠수함 기지 근처 심해로 은밀히 보내 잠수함을 처음부터 추적하다가 북극성을 쏘려는 움직임이 보이면 사전에 격침하자는 것이다.

 

국방부가 지난해 8월 발표한 ‘2021∼2025년 국방중기계획’에는 핵잠수함 개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당시 국방부는 3000t급 이상의 잠수함 9척을 개발하는 ‘장보고-Ⅲ’ 사업을 설명하면서, 3000t급과 3600t급, 4000t급을 각각 3척씩 순차적으로 건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지난 15일 한국 해군 최초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의 시험 발사에 성공한 ‘도산안창호함’은 이 계획에 따라 건조된 첫 3000t급 잠수함이다.

 

다만 국방부는 3000t급과 3600t급 잠수함에 대해선 디젤-전기 추진의 재래식 잠수함으로 추진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도, 4000t급 잠수함에 대해선 “현 단계에서 추진방식을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여지를 남겼다. 디젤-전기 추진이냐, 핵추진이냐를 미리 결정하지 않고 여건을 봐가며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 한국에도 호주와 같은 잣대를 들이댈까

 

그러나 군 당국이 핵잠수함 개발에 나서려면 먼저 미국의 강력한 견제와 반대, 규제를 넘어서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의 양해가 없는 한 핵잠수함 원자로의 원료인 농축우라늄을 구할 수 없다.

 

지난 2015년 개정된 한-미 원자력협정 제11조는 한국에 ‘20% 미만의 우라늄 농축’을 허용하고 있지만, 한-미간 서면 합의가 전제되어야만 가능하다고 못 박고 있다. 미국이 동의하지 않으면 핵잠수함 원자로의 연료로 쓰기 위해 우라늄을 농축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일부에선 한-미 원자력협정이 국내 민수용 원전 이용을 위한 것이어서 군사용에는 구속력이 없다는 견해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협정이 13조에서 핵물질이 “어떠한 군사적 목적을 위해서도 이용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는 점을 보면, 군사용에 구속력이 없다는 해석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핵잠수함 원자로에 쓸 농축우라늄을 국제시장에서 상업적으로 구매하는 방안도 남아 있다. 국내에서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에 쓰이는 농축우라늄도 모두 국제시장에서 구매한 것이다. 그러나 국제시장의 상업적 거래도 미국의 양해가 있어야 한다. 핵공급국그룹(NSG) 어느 회원국도 미국과 마찰을 겪으면서 농축우라늄을 한국에 넘겨주려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군사용 농축우라늄의 구매를 민수용처럼 눈감아 줄 것으로 기대하긴 쉽지 않다.

 

실제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개발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9월 김현종 2차장이 미국을 방문해 핵잠수함 건조 계획을 설명하고 핵연료 도입을 타진했지만, 미국으로부터 거절당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온 바 있다. 당시 청와대는 이 보도에 대해 “외교·안보 사안에 대해 확인해줄 수 없다”며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왼쪽 두 번째)과 맬컴 턴불 오스트레일리아 총리(가운데)가 2018년 5월 2일 시드니 가든 아일랜드에서 오스트레일리아 해군의 콜린스급 잠수함 ‘HMAS 웨일러’의 선체 위에 서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15일(현지시각) 미국·영국과 3국간 안보협력체인 ‘오커스’의 발족과 함께 미국의 기술 지원으로 핵추진잠수함 개발에 나서면서, 프랑스와 추진해온 660억 달러(약 77조원) 규모의 재래식 잠수함 건조 계획을 철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AFP 연합뉴스

 

그런 미국이 이번에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등 3국이 참여하는 연구팀을 꾸려 18개월간 오스트레일리아 핵잠수함 개발에 최적의 방안을 찾기 위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는 건, 극적인 태도 변화로 읽힌다. 실제 미국은 1958년 영국에 핵잠수함 추진 기술을 공유한 이래 외국에 핵잠수함 기술을 넘겨준 사례가 없다. 미국이 이제 우리나라의 핵잠수함 개발에도 과거와 달리 전향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커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물론 미국은 이번 오스트레일리아 핵잠수함 개발 지원에 대해 “예외적인 일”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미국 고위당국자는 핵잠수함 기술이 '극도로 민감한' 기술이라며 “솔직히 말해 이는 많은 측면에서 우리 정책의 예외에 해당한다”고 선을 그었다. 또 “이것이 앞으로 다른 상황에서 착수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는다. 우리는 단 한 번 있는 일로 이를 한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다른 나라들이 유사한 기대를 품지 않도록 못을 박았다.

 

이 고위당국자는 오스트레일리아가 핵무기를 개발할 의향이 없고 핵 비확산 노력의 선두에 있다면서 핵 비확산에 대한 미국의 의지는 변함이 없다고도 강조했다. 한국의 핵잠수함 개발에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다른 잣대를 들이댈 여지를 남겨놓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동북아시아의 국제정치 환경에서 보면, 미국으로서는 한국의 핵잠수함 개발에 기술지원은 커녕 묵인도 쉽지 않다. 한국의 핵잠수함 개발에 눈감으면, 한국과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의 핵잠수함 개발도 막기 어렵게 된다. 자칫 ‘핵잠수함 도미노’가 일어날 수 있다. 중국의 반발도 더욱 거세지면서 동북아시아에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

 

핵잠수함 개발, 산 넘어 산

 

핵잠수함 개발은 북한이 남한을 앞서가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은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 “새로운 핵잠수함 설계 연구가 끝나 최종 심사 단계에 있다”고 공언한 바 있다.

 

우리가 미국의 양해를 얻어 실제 독자 핵잠수함 개발에 나선다 해도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우리나라는 ‘장보고-Ⅲ’ 사업의 3000t급 잠수함을 독자 설계하는 등 잠수함 설계능력은 확보하고 있다. 이는 몇십 년 동안 독일의 기술 지원을 받아 1200t급 잠수함(장보고-Ⅰ사업)과 1800t급 잠수함(장보고-Ⅱ 사업) 10여척을 건조하며 기술 축적을 한 결과이다.

 

핵잠수함의 추진체인 원자로와 관련해서도 기반 기술은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1990년대 말부터 러시아의 기술 지원으로 해수담수화용 소형 일체형 원자로인 ‘스마트 원자로’(열출력 330㎿)와 이를 5분의 1 규모로 축소한 실증로인 ‘스마트-P’(열출력 65㎿)를 개발한 전례가 있다. 이를 기반으로 개발하면 몇 년 안에 핵잠수함용 원자로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군 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 기술 수준에서 독자적인 핵잠수함 건조는 섣부르다는 반론도 있다. 재래식 잠수함에 원자로 추진체만 탑재한다고 핵잠수함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핵잠수함은 재래식 잠수함보다 훨씬 깊은 심도에서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운항하기 때문에 이런 조건에 맞게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따라서 재래식 잠수함 설계 경험만 믿고 핵잠수함 건조를 추진하는 것은 뜻하지 않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핵잠수함의 소음 문제를 기술적 장벽으로 거론하는 전문가도 있다. 잠수함의 생명은 은밀성과 정숙성인데, 핵잠수함은 재래식 잠수함보다 소음이 심하다. 핵잠수함 선진국 미국도 오랜 경험과 기술을 축적한 끝에 핵잠수함 소음 저감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등의 기술 지원이 없는 한 핵잠수함 초보로서는 원자로의 냉각장치, 감속장치 등에서 나는 소음을 줄이는 기술의 확보 방안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박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