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다 총리 취임

일본 정부 대변인, 자민당 정책 담당 ‘역사 수정주의’

대화·아시아 외교 중시하는 ‘기시다 색깔’ 언제 나올까

 

기시다 후미오 총리 예정자.

 

4일 일본 100번째 총리로 취임할 예정인 기시다 후미오 신임 자민당 총재를 떠받치게 되는 당과 내각의 요직에 극우 성향의 인사들이 전진 배치된다. 아베 신조 전 총리와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의 측근들도 다수 기용돼, “기시다의 얼굴을 한 아베·아소 내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당분간 한-일 관계를 포함한 외교·안보 정책에서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내각의 ‘2인자’이자 정부 대변인인 관방장관에는 아베 전 총리의 영향력이 강한 호소다파의 마쓰노 히로카즈(59) 전 문부과학상이 기용된다. 그는 2012년 미국 뉴저지주 지역신문에 실은 일본군 ‘위안부’ 관련 의견광고에 아베 당시 자민당 총재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린 우익 성향 인사다. 이 광고에는 일본군 ‘위안부’ 동원 과정의 강제성과 군의 개입을 인정한 ‘고노 담화’(1993)를 부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2014년에도 <마이니치신문>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무라야마·고노 담화는 재검토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가 문부과학상이었던 2017년 일본 정부는 초등·중학교 사회 과목에서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내용을 가르치도록 의무화하는 학습지도요령을 확정하기도 했다.

 

자민당의 정책을 관장하는 정무조사회장에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 지원으로 총재 선거에 출마했던 다카이치 사나에(60) 전 총무상이 기용됐다. 그는 “총리가 돼도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 “한국과 중국이 역사 문제에 대해 부정확한 정보를 내보내고 있다”, “(침략 전쟁을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는 일본이 일방적으로 나쁘다고 사죄를 한 것이다” 등 일본의 가해 책임을 부정하는 인식을 대놓고 드러냈던 극우 성향 정치인이다. 안보 정책에 대해서도 일본의 방위 예산을 사실상 2배 가까이 올려야 한다며 “적기지 무력화를 위해 헌법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베의 복심’으로 통하는 하기우다 고이치 문부과학상도 경제산업상으로 자리를 옮겨 기시다 내각에 남을 것이라고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이 보도했다. 애초 관방장관으로 거론됐지만 막판에 마쓰노 전 문부과학상에게 밀렸다. 하기우다 문부과학상은 2013년 아베 총재 특별보좌를 맡으면서 고노 담화에 대해 “이미 담화의 역할이 끝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뼈를 발라내야 한다’(껍데기만 남기고 실제 내용은 무력화시킨다는 뜻)”고 말하기도 했다. 또 현직 각료 신분으로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 에이(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아베·아소’의 영향력은 건재했다. 자민당 4역이라 불리는 간사장·정조회장·총무회장·선대위원장 가운데 3명이 아베·아소의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들이다. 당의 2인자인 간사장은 예상대로 아마리 아키라(72) 세제조사회장으로 결정됐다. 아마리 간사장은 아소파 소속이면서 아베 전 총리와 가깝다. 당 간사장은 총재를 보좌해 자금 관리와 공천권 등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아마리 간사장이 아베 2차 정부 때인 2016년 건설업체로부터 돈을 받아 경제재생상에서 물러난 전력이 있는데도 요직을 맡겨 논란이 되고 있다.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긴 했지만 의혹이 남은 상태다.

 

외교·안보 분야도 ‘아베 노선’을 유지하는 인사가 단행됐다. 아베 정권 때인 2019년 9월부터 외무상을 맡고 있는 모테기 도시미쓰(66) 외무상이 유임됐다. 모테기 외무상은 지난 1월 부임한 강창일 주일 한국대사를 만나지 않고 있다. 한-일 외교 라인에서도 변화를 모색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아베 전 총리의 동생으로 지난해 스가 요시히데 정권 때 입각한 기시 노부오 방위상도 유임이 결정됐다. 다케나카 하루카타 일본 국립 정책연구대학원대 교수는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뷰에서 “기시다 정권은 아베 정권 계승극의 2막”이라고 지적했다. 요직에서 사실상 배제된 기시다파에서도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기시다파 중견 의원은 “이것은 ‘고치카이’(기시다 총재 파벌) 정권이라고 말할 수 없다”며 분노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전했다.

 

기시다 총재가 ‘아베·아소’의 지지를 업고 당선된 만큼 인사에서 운신의 폭이 작았다는 견해가 많다. 자민당 내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11월 중의원 총선거, 내년 7월 참의원 선거를 안정적으로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또 아베 정권 동안 여섯번의 전국 단위 선거에서 모두 자민당이 무난히 승리한 경험을 바탕으로 기존 지지층을 묶어두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기시다 총재 측근들은 “이번엔 다른 파벌에 최대한 신경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내년 여름의 참의원 선거가 끝날 때까지 기시다파가 참아야 한다”고 내부의 분위기를 전달했다. 기시다 총재는 지난해 9월 총리를 준비하면서 쓴 책 <기시다의 비전―분단에서 협조로>에서 대화 중시, 관용, 아시아 외교의 중요성, 분배를 강조한 경제정책 등 ‘고치카이’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런 그의 정치적 지향점이 현실 정치에서 실현되기 위해서는 선거 승리가 필수 조건이긴 하다.

 

하지만 ‘아베·아소’ 중심의 국정 운영으로 기시다 총재가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사히신문>은 “정권 기반의 안정을 우선한 결과 방치된 것이 기시다 총재가 강조했던 정치의 신뢰 회복”이라며 “당에서는 벌써 중의원 선거나 정권의 장래를 우려하는 소리가 있다”고 전했다. 기시다 총재는 14일 중의원을 해산한 뒤, 다음달 7일 선거를 치르는 방안을 굳힌 것으로 전해졌다. 도쿄/김소연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