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째 총리... 파벌 강력한 국회의원 표가 승패 갈라

아베가 지원한 다카이치 표, 기시다쪽으로 흡수

기시다 역사문제 강경해 한-일 관계 개선 쉽지 않을 듯

 

기시다 후미오 전 정무조사회장이 29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고노 다로 행정개혁담당상을 누르고 승리했다. 기시다 신임 자민당 총재는 10월4일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일본의 제100대 총리로 취임한다.

 

사실상 일본 100번째 총리를 뽑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기시다 후미오(64) 전 당 정무조사회장이 승리했다.

 

노다 쓰요시 자민당 선거관리위원장은 29일 오후 진행된 총재 선거 결선투표 결과 기시다 전 정조회장이 전체 428표 가운데 과반수를 넘는 257표를 얻어 당선됐다고 밝혔다. 고노 다로 행정개혁담당상은 170표에 그쳐 고배를 마셨다.

 

앞서 진행된 1차 투표에선 기시다 전 정조회장이 256표, 고노 담당상 255표,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 188표, 노다 세이코 당 간사장 대행이 34표를 기록했다. 과반(382표)을 넘는 후보자가 없어 1·2위인 기시다 전 정조회장과 고노 담당상을 상대로 결선 투표에 나서 기시다 전 정조회장이 승리했다.

 

결선 투표에선 예상대로 국회의원 표가 승패를 갈랐다.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을 지지했던 호소다파 등 자민당 보수 주류 의원들의 표가 기시다 전 정조회장 쪽으로 몰리며 승부가 갈렸다. 일반 여론보다 당내 파벌 간 역학관계와 아베 전 총리의 힘이 강하게 작용한 셈이다.

 

 

고노 담당상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40~50% 지지를 받는 등 1위를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의 ‘당심’이 선택한 것은 ‘개혁’을 내세운 고노 담당상이 아닌 ‘아베 노선’을 사실상 계승하겠다는 뜻을 밝혀온 기시다 전 정조회장이었다.

 

그에 따라 꽉 막혀 있는 한-일 관계는 당분간 회복의 계기를 잡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신임 총재는 2차 아베 정권인 지난 2012년 12월부터 2017년 8월까지 약 4년7개월 동안 외무상을 지내며 2015년 12월28일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발표한 바 있다. 기시다 총재는 지난 선거 기간 동안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선 한국이 일본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며 “공은 한국 쪽에 있다”고 말해왔다.

 

기시다 총재는 앞으로 ‘아베 노선’을 큰 틀에서 계승하며 부분적으로 변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예컨대 아베 전 총리가 적극 추진했던 헌법 개정에 대해 기시다 총재는 “임기 중에 목표는 세우고 싶다”면서도 “국회에서 논의가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기상조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에 대해서도 “분배도 생각해야 한다.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시다 총재는 내각을 구성한 뒤 바로 중의원 총선거를 책임져야 한다. 중의원은 다음달 21일 임기가 만료되는 만큼, 11월 중으로 치러진다. 이 선거에서 얼마나 의석을 지켜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중의원 전체 465석 중 자민당이 현재 275석(59%)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 되는 126명(46%)이 3선 이하다. 젊은 의원들은 지역 기반이 취약해 ‘선거의 얼굴’인 당 총재에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여론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고노 담당상이 아닌 기시다 총재의 당선이 자민당 의석수에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 모아진다.

 

기시다 총재는 내달 4일 임시국회에서 스가 요시히데 총리의 뒤를 이어 100번째 총리로 선출된다. 11월 중의원 선거에서도 자민당이 과반은 유지할 것이 확실해 큰 정치적 격변이 벌어지지 않는 한 자민당 총재 임기가 끝나는 2024년 9월까지 총리직을 맡게 된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민심보다 ‘파벌의 힘’으로 당선…‘아베 노선’ 이어갈 듯

 

【기시다 후미오 정책 전망】

 

‘개혁’ 고노 비해 국민 지지 낮았지만 국회의원 표 1.5배가량 더 얻어

경선 앞두곤 아베 속한 파벌도 지지 11월 있을 중의원 선거 이끌게 돼

 

큰 틀에선 아베 노선 부분 변화 시도 대북·대중 현행대로,

경제는 독자적, 아베노믹스 대체 “새로운 관점 필요”

 

한·일 냉기류 당분간 지속 그동안 “공은 한국에 있다” 발언

 

29일 오후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열린 자민당 총재 선거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기시다 후미오 전 당 정무조사회장이 당선 확정 뒤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도쿄/AFP 연합뉴스

 

일본의 사실상 100번째 총리를 뽑는 29일 자민당 총재 선거의 승부를 가른 것은 평범한 일본인들의 ‘민심’이 아닌 당내 파벌의 역학 관계와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영향력이었다. 상대적으로 국민적 지지가 낮은 기시다 후미오 전 정무조사회장이 자민당의 새 얼굴로 11월 중의원 선거에 나서게 되면서, 자민당이 의석수를 얼마나 지켜낼지가 향후 일본 정치와 한-일 관계 등에 폭넓은 영향을 끼치게 될 전망이다.

 

포스트 ‘아베-스가 정권’의 향방을 가를 29일 자민당 총재 선거는 낮 1시 노다 다케시 자민당 선거관리위원장의 선거 개시 선언과 함께 시작됐다. 일본 자민당 국회의원 382명의 이름이 일본어의 오십음도순으로 호명되면, 해당 의원이 단상으로 나가 선거관리위원에게 명함을 건넨 뒤 투표용지를 받아 이름을 기입하는 식으로 선거가 진행됐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세번째로 호명돼 단상으로 나아가 눈길을 끌었다.

 

이날 선거의 승부가 사실상 결정된 것은 1차 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였다.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지켜온 고노 다로 행정개혁 담당상은 일반 민심을 반영하는 당원·당우 투표에선 169표를 확보했지만, 국회의원 표는 예상보다 적은 86표(총 255표)에 머물렀다. 경쟁자인 기시다 전 정조회장은 반대로 당원 표에선 110표에 그쳤지만, 국회의원 표에서 146표를 기록해 총 256표를 얻었다.

 

문제는 3위를 기록한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상이 얻은 국회의원 표(114표)가 누구를 향할지였다. 다카이치 전 총무상이 얻은 표는 대부분 자민당 최대 파벌이자 아베 전 총리의 영향력이 큰 호소다파(96명)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베 전 총리는 일본의 국방예산을 지금의 두배 수준으로 늘리고,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겠다고 공언하는 ‘극우’ 다카이치 전 총무상을 지지한다는 뜻을 거듭 밝혀왔다. <산케이신문>은 29일 “기시다·다카이치 두 후보 진영은 지난 28일 밤 만나 고노 행정개혁상을 상대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개혁’을 내세운 고노 행정개혁상보다 ‘아베 노선’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혀온 기시다 전 정조회장을 지지하기로 정한 것이다. 마스크를 깊게 눌러쓴 고노 행정개혁상은 패배를 직감한 듯 미동도 하지 않고 정면을 응시했다.

 

 

신임 기시다 총재는 ‘아베 노선’을 큰 틀에서 계승하면서 부분적인 변화를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반도 정세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대북·대중 노선은 유지되고, 상대적으로 덜 민감한 경제 정책에서 변화가 예측된다. 실제 기시다 총재는 그동안 대북 정책과 관련해 “핵·미사일 개발의 완전 포기를 촉구하고, 모든 납치 피해자의 일괄 귀국이 목표”라고 말해왔다. 아베 전 총리와 그 뒤를 이은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지난 9년 동안 거듭 밝혀온 입장이다. 중국에 대해서도 “권위주의 체제를 세계에 넓히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이웃 나라로 관계는 생각해야 하지만 할 말은 해야 한다”는 뜻을 밝혀왔다.

 

한-일 관계는 당분간 개선의 계기를 찾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재는 한-일 관계에 대해 “대화는 필요하지만 공은 한국에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고노 행정개혁상이 한-일 간 주요 현안인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처를 역사 문제와 분리해 대화로 풀 수 있다는 의사를 밝힌 것과 대조적이었다. 두 나라 모두 대선(한국 내년 3월)과 총선(일본 11월) 등 중요 정치 일정을 앞두고 있는 점도 문제다. 양국이 관계 개선의 계기를 찾으려면 한국 대선이 끝난 뒤인 내년 5월 이후는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시다 색깔’을 낼 수 있는 변화의 여지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아베 전 총리가 적극 추진했던 헌법 개정에 대해 “국회에서 논의가 거의 진행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기상조라는 생각으로 읽힌다. 경제 정책인 아베노믹스에 대해서도 “분배도 생각해야 한다.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시다 총재는 내각을 구성한 뒤 바로 중의원 총선거 대응에 나설 전망이다. 중의원은 다음달 21일 임기가 만료돼 11월 중 선거가 치러진다. 자민당이 의석수를 얼마나 유지(현재 275석·59%)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현역 의원의 절반 정도인 126명(46%)이 3선 이하다. 젊은 의원들은 지역 기반이 취약해 ‘선거의 얼굴’인 당 총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선전하면 당내 장악력이 커지며 생각보다 일찍 ‘아베 노선’에서 변화를 꾀할 수도 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청, 일본 기시다 차기 총리에 “미래지향적 협력하자”

다음달 총리 선출 뒤 취임하면 정식 축하서한 예정

 

  청와대 전경.

 

청와대가 29일 일본의 차기 총리를 예약한 기시다 후미오 전 당 정무조사회장에 대해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위해 협력하자는 메시지를 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기시다 자민당 신임 총재 당선에 대해 “우리 정부는 새로 출범하게 될 일본 내각과 한일 간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을 위해 계속해서 협력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기시다 전 당 정무조사회장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다음달 일본의 100대 총리로 선출될 예정이다.

 

청와대는 기시다 총리가 취임하면 정식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축하서한을 보낼 계획이다. 이날 “한일 간 미래지향적 관계발전”을 강조한 것처럼 한일 관계를 얼어붙게 만든 과거사 문제와 수출규제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한 대화를 제의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취임했을 때도 한일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해나가자는 뜻을 전한 바 있다. 하지만 스가 총리가 지난 5월 영국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회의에서 문 대통령과 만나는 것을 꺼리는 등 스가 총리 임기 중 한일 정상회담이 무산되면서 대화의 실마리를 풀지 못했다. 이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