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판례’따라 불기소하면서도
핵심 쟁점에선 ‘거짓말’ 인정한 셈
지난 4월 4·7재보궐선거에 출마한 오세훈 서울시장(당시 국민의힘 후보자)이 서울 광진구 자양사거리에서 열린 출근 유세에서 손을 흔들며 지지를 호소하던 모습.
오세훈 서울시장이 4‧7 보궐선거 기간 후보자 토론회에서 ‘내곡동 땅 측량현장에 가지 않았다’고 한 발언은 허위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검찰이 판단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검찰은 후보자 토론에서 자유로운 의사 표현을 보장하는 이른바 ‘이재명 판결’에 따라 오 시장을 기소하지 않았다.
<한겨레>가 13일 입수한 오 시장의 공직선거법 허위사실공표 혐의 검찰 불기소처분 결정서를 보면, 검찰은 “경작인·측량팀장·생태탕식당 모자 등은 세부적인 사항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피의자(오 시장)가 측량현장에 있었다고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 이들 진술에 의하면 피의자가 측량현장에 갔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측량현장에 안 갔다’는 피의자의 발언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오 시장은 지난 3월 <문화방송> 토론회에서 그의 아내와 처가가 소유한 서울 내곡동 땅 ‘셀프 보상 의혹’과 관련해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내곡동 땅 측량 현장에 갔느냐, 안갔느냐”고 묻자 “안 갔다. 그러나 기억 앞에서는 겸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같은달 열린 <관훈클럽> 토론회에서도 “(내곡동 땅 측량 현장에) 큰 처남은 분명히 갔다. 저 역시도 뭐 전혀 안 갔죠”라고 답했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등은 오 시장을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부장 김경근)는 6개월 공소시효 만료를 하루 앞둔 지난 6일 오 시장을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은 “경작인·측량팀장·생태탕 식당 모자 등 관련자 20명을 조사하고 오 시장 쪽 신용카드 사용내역 등을 확인했다”면서도 “‘측량현장에 안 갔다’는 토론회 발언이 허위라 하더라도 ‘처가의 토지 보상에 관여했느냐’는 주된 의혹을 부인하는 차원이라면 공직선거법의 허위사실공표로 보기 어렵다. 이는 지난해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취지와도 같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같은 자료를 배포하며 오 시장이 실제 측량현장에 있었는지 여부는 밝히지 않았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해 7월 선거 후보자가 토론회에 참가해 하는 질문이나 답변, 주장과 반론은 해당 토론회 맥락과 상관없이 일방적·의도적·적극적으로 허위사실을 말하는 것이 아닌 이상, 허위사실공표죄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바 있다.
이 판결은 이재명 경기지사가 2018년 후보 토론회에서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하셨죠?”라는 상대 후보의 질문에 “그런 일 없다. 제가 (형의 정신병원 입원을) 최종적으로 못하게 했다”고 답하며 일부 사실을 숨긴 것이 허위사실공표인지가 쟁점이 됐다. 손현수 강재구 기자
검찰, 박형준 ‘딸 입시 거짓’ 밝히고도 무혐의 처분 왜?
박형준 부산시장 불기소 결정서 보니
검 “범죄요건인 직계비속 해당 안돼”
‘입시보다 늦은 재혼’도 근거로 들어
박형준 부산시장
검찰이 4·7 재보궐선거 당시 ‘딸이 홍익대 미대 입시에 응시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한 박형준 부산시장의 발언이 거짓임을 확인하고도 무혐의 처분한 사실이 확인됐다. 박 시장이 4대강 사업 민간인 사찰 의혹을 부인한 혐의(공직선거법 허위사실공표)로 지난 5일 불구속 기소된 가운데, 선거 당시 주요 쟁점이었던 박 시장 딸의 홍익대 미대 입시 부정 의혹이 다시 입길에 오르고 있다.
11일 <한겨레>가 입수한 ‘박 시장 의붓딸 홍익대 미대 입시 부정 의혹’과 관련한 박 시장 불기소 결정서를 보면, 검찰은 박 시장 딸이 1999년 2월5일 홍익대 미대 (귀국유학생 전형) 실기시험을 치른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검찰은 불기소 결정서에서 “의붓딸은 직계비속(아들·딸·손자·손녀)이 아니므로 범죄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희한한 견해를 도입했다. 의붓딸은 직계 딸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공직선거법 250조(허위사실공표죄) 1항에서 공직선거법 적용 대상은 후보자, 후보자의 배우자 또는 직계존비속·형제자매인데, 박 시장 ‘의붓딸’은 직계비속이 아니어서 박 시장이 의붓딸과 관련한 허위사실을 공표했지만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박 시장 딸 홍익대 미대 입시 부정 의혹은 3월10일 김승연 전 홍익대 미대 교수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선배 교수의 부탁을 받고 박 후보 딸에게 실기시험 점수를 좋게 줬다”는 주장을 펴면서 불거졌다. 이에 박 후보는 3월15일 기자회견을 열어 “그 당시(1999년) 딸이 런던예술대에 다니고 있었다. 홍익대 입시에 응시한 사실이 없고 배우자가 부정한 청탁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당시 박 후보의 해명을 두고 선거 기간 내내 진실 공방이 이어졌다.
검찰은 무혐의 근거로 박 시장의 재혼일을 내세우기도 했다. 박 시장 재혼은 1999년 11월19일인데 딸의 홍익대 미대 실기시험 응시는 이보다 앞선 2월5일이어서 박 시장이 딸의 홍익대 미대 응시 사실을 몰랐다고 해석한 것이다. 이어 검찰은 “두 사람(재혼한 아내와 딸)이 피의자(박 시장)에게 일관되게 실기시험을 친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점 등의 상황에서 피의자가 다른 방법으로 사실관계를 파악할 필요성이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박 시장을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고발한 바 있는 부산참여연대는 결정서를 받은 뒤 논평을 내어 “검찰이 부산시장과 그의 가족이 선거 시기에 거짓말을 했음에도 면죄부를 준 것이다. (박 시장이) 법적으로 무혐의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거짓말을 한 행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박 시장은 선거 시기 시민을 기만한 언행에 대해 지금이라도 사과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은 “검찰의 설명대로라면 보궐선거 당시 박 시장 딸의 입시 의혹은 중요한 관심사였는데도 박 시장이 가족의 말만 들었을 뿐 가족을 설득해 홍익대에 입시 지원 여부를 확인하는 서류 발급을 요청하는 등 진실 규명에 적극 나서지 않았다”며 “부산시장 후보로 부적절한 태도가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선거 당시 의혹이 불거지자 박 후보 선거대책위원회는 김 전 교수와 기자 등 6명을 고발했고, 박 시장도 부인과 함께 이들을 상대로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김광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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