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의안 채택 땐 기후변화발 분쟁에 제재·무력개입 권한

러시아 “서구의 다른 나라 내정 개입 정당화 구실 우려”

 

러시아의 바실리 네벤지아 유엔대사가 1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에서 기후변화를 국제 평화와 안보의 위협으로 규정하는 결의안에 대해 손을 들어 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러시아가 1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기후변화를 국제 평화와 안보의 위협으로 규정한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결의안은 기후변화를 “충돌과 위기를 증폭하는 근본 원인”의 한 요인에 포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유엔 사무총장에게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가 충돌로 비화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한 방안 등에 대한 정례 보고를 요구하고 있다.

 

이날 결의안 표결에서는 유엔 안보리 회원 열다섯 나라 중 열두 나라가 찬성했으나, 러시아와 인도 두 나라가 반대표를 던졌고, 중국은 기권했다. 찬성이 압도적이었으나, 러시아가 거부권을 가진 상임이사국 다섯 나라 중 하나여서 부결됐다.

 

결의안은 애초 지난해 독일이 제안했지만 정식 상정되지 못한 채 폐기됐던 것을 올해 안보리 의장국인 니제르와 아일랜드가 다시 공동으로 제안한 것이다. 결의안 채택 불발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단결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인지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기후변화가 국가 간 갈등, 더 심하면 무력충돌의 잠재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는 유엔과 다른 국제기구에서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예컨대 말리와 니제르 등 아프리카 몇몇 곳에서는 기후변화로 가뭄과 사막화가 악화하면서 물과 식량, 농장, 목초지를 둘러싼 경쟁이 심각해졌으며, 이런 상황이 그 지역의 폭력 발생과 불안의 요인이 되고 있다.

 

러시아의 유엔대사 바실리 네베지아는 결의안에 대해 서구가 다른 나라 내부 문제의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한 구실이 될 것이라고 반대 이유를 밝혔다. 그는 “기후변화를 국제 안보의 위협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그들 나라의 뿌리 깊은 진정한 갈등 원인에서 시선을 돌리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도의 유엔대사 티 에스 티루무르티는 “인도는 기후 행동과 기후 정의에 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열심이지만, 안보리가 이들 문제를 다룰 장소는 아니다”며 기후 문제는 기존의 유엔기후변화협약에 맡겨 놓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엔 외교관들은 유엔 회원국 193개 나라 중 적어도 113개국이 결의안을 지지하고 있다며 러시아가 회원국의 전반적인 의사를 무시했다고 말했다. 미국의 유엔대사 린다 토머스-그린필드는 러시아가 “기후변화의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작고 실질적이고 필요한 조치를 막았다”고 비판했다. 결의안 제안국인 아일랜드의 제럴딘 바이언 네이선 유엔대사는 “이 결의안이 결정적인 시기에 역사적이고 중요한 움직임이었다는 걸 우리는 잘 안다”며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에 “매우 실망했다”고 말했다.

 

유엔 안보리는 국제 안전과 평화를 위해 필요하다면 개별 국가 등에 제재를 내리고 무력의 사용을 명령할 수 있는 유일한 유엔 기구이다. 결의안이 채택되면 유엔 안보리는 기후변화로 무력충돌 등이 발생한 나라에 개입할 수 있는 합법적 근거를 마련하게 된다. 박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