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월스트리트 저널> 심층 보도

군납업체 전쟁으로 4.6~7조달러 매출

군인보다 더 많은 직원들이 전쟁 참가

불철저한 신원조회로 사고 일으키기도

 

 아프간 사람들이 1일 새해 첫날 카불 거리를 북적이고 있다. 카불/AFP 연합뉴스

 

미군이 20년 동안 이어온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알려지지 않은 ‘최후의 승자’가 사실상 민간 군수·군납업체라고 <월스트리트 저널>이 31일 지적했다.

 

신문이 이날 내놓은 심층 보도를 보면,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군이 이라크에 이어 아프간까지 침공하며 미군의 군수 지원을 위한 외주가 급격히 늘었다. 국방부가 외주 사업에 지출한 비용은 14조달러(1경6644조원)였고 그 중에 3분의 1에서 절반에 이르는 금액이 군수·군납업체에 돌아갔다.

 

가장 많은 돈을 번 업체는 록히드 마틴, 보잉, 제너럴 다이내믹스, 레이시온 테크놀로지, 노스럽 그루먼 등 이른바 미국 5대 군수업체였다. 브라운대학의 ‘전쟁비용 프로젝트’에 따르면, 이들 업체는 무려 2조1천억달러(2496조원)을 쓸어 담았다. 그보다 작은 업체들은 아프간 경찰병력 훈련, 도로와 학교 건설, 서구 외교관의 경호·보안 등의 업무를 수행하며 큰 돈을 벌었다.

 

아프간 전쟁 20년 동안 미국 정부는 민주당과 공화당을 오갔지만,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이들 군수·군납업체를 활용하면서 ‘주둔 병력과 전사자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변호했다. 지난 20년 동안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미군 병력 7000명 이상이 숨지는 동안 군수·군납업체 소속의 민간인도 3500명 넘게 숨졌다.

 

아프간엔 언제나 직접 전투를 수행하는 미군 병력보다 군수·군납업체 직원이 더 많았다. 아프간 주둔 미군 병력이 가장 많았던 2008년 미군은 18만7900명, 군수·군납업체 직원은 20만3660명이었다. 전쟁이 길어질 수록 이 비율은 더 올라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두 번째 임기 말인 2016년 병력 감축을 지시했을 때, 아프간 주둔 미군은 9800명이었지만 군수·군납업체 직원은 2만6천명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1년 1월 임기를 마쳤을 때 아프간에 남은 미군 병력은 2500명이었지만, 군수·군납업체 민간인은 1만8천명으로 무려 7배가 넘었다.

 

헤이디 펠티어 브라운대학 ‘전쟁비용 프로젝트’ 책임자는 “민간의 군수·군납업은 백악관에 공화당원이 있건 민주당원이 있건 상관없이 ‘증가’라는 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 같다”며 정부가 군수·군납업에 의존함으로써 진짜 전쟁 비용을 대중으로부터 감추고 사실상 분식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캘리포니아 출신 더그 에델만은 1998년 키르기스스탄에서 연료거래 사업을 시작했다가 4년 뒤 아프간에서 전쟁이 나자 군납 사업에 뛰어들어 큰돈을 만진 대표적인 인물이다. 전쟁으로 아프간 옆에 위치한 키르기스스탄의 수도 비슈케크는 미군 병력과 군수물자가 거쳐가는 허브로 탈바꿈했다.

 

에델만은 키르기스스탄 파트너와 새 회사를 세운 뒤 비슈케크 주둔 미 공군 C-135 공중급유기 편대의 연료를 독점 공급하는 권한을 따냈다. 또 아프간에서는 바그람 공군기지에 연료 파이프를 설치하는 공사도 맡았다. 이를 통해 엄청난 돈을 번 그는 한때 런던의 미디어 재벌 콘래드 블랙의 소유였던 맨션을 구입한 사실이 최근 동료들과 법정 소송 과정에서 드러났다.

 

2003년 오하이오에 설립된 ‘미션 이센셜 그룹’은 아프간 주둔 미군에 현지 통역을 제공하며 사세를 키웠다. 이 회사는 2007년 미군에 아프간 언어 통역과 문화 자문가를 제공하는 3억달러(3566억원) 규모의 계약을 따냈다. 2010년 말 현재 아프간에서 미군과 일하는 통역을 7000명 정도 고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2012년엔 미 국방부로부터 8억6천만달러(1조224억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공동 설립자 중 한 사람인 채드 모닌은 골프장 옆의 130만달러(15억원) 호화 저택을 샀으며, 1970년식 페라리 스포츠카도 구매했다.

 

2010년 1월 카불 근처 미군 기지에서 미션 이센셜 그룹이 고용한 현지인 통역이 미군 병사 두 명을 쏴 숨지게 한 사건을 일으켰다. 유족들은 이 회사가 통역의 신원조회에 실패하고 관리·감독을 소홀히 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유족들은 성명에서 “이 회사가 맺고 있는 계약의 수익이 지나치게 많고,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가 받은 돈에 미치지 못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회사는 2015년 유족들과 비공개 화해를 했다. 2005년 아프간 전쟁에 참전했고 트럼프 행정부 말기 국방장관 대행을 했던 크리스토퍼 밀러는 적은 숫자의 직업 군인으로 전쟁을 치르게 되면 그만큼 더 많은 ‘아웃 소싱’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신문의 여러 지적에 로브 로드위크 국방부 대변인(중령)은 “아프간에서 미군 작전에 기여한 많은 군수·군납업체 민간인들이 군 병력을 핵심적인 전쟁 수행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고 해명했다.        박병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