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서 실효성 확인…사육동물뿐 아니라 몰랐던 희귀종과 외래종, 먹이 종까지 드러나

열대우림·동굴 등 접근 힘든 곳이나 은밀한 동물 조사에 희소식…물속 eDNA 조사는 일반화

 

 

동물의 침, 숨, 털 등에서 나온 미세한 디엔에이(DNA) 조각을 검출해 염기 배열을 해독하면 어떤 동물에서 나왔는지 알 수 있다.

 

동물원에선 특유의 냄새가 난다. 여기에는 우리가 감지하는 배설물 냄새 말고도 동물의 숨, 침, 털 등의 미세한 디엔에이(DNA) 조각도 들어있다.

 

야생에서 힘들게 관찰하거나 원격 카메라로 촬영하지 않고도 법의학의 유전자 지문 기법을 이용해 공기 속의 디엔에이 조각을 분석하면 그곳에 어떤 동물이 사는지 알아낼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방법을 이용해 열대우림이나 동굴처럼 직접 조사가 힘든 생태계를 간단히 효율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게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과학저널 ‘커런트 바이올로지’ 최근호는 크리스틴 보만 덴마크대 교수팀과 엘리자베스 클레어 영국 퀸메리 대 박사팀(현 캐나다 요크대 교수)이 각각 코펜하겐 동물원과 영국 해머톤 동물원에서 수행한 연구결과를 싣고 “공기 속 환경디엔에이(eDNA)로 생물다양성을 측정할 수 있음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코펜하겐 동물원 야외 사육장에서 공기를 흡입해 종을 확인한 결과. 노란 원이 동정을 확인한 종이다. 크리스티나 링고드 외 (2022) 제공.

 

보만 교수는 “마다가스카르에서 연구할 때 안경원숭이를 많이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거의 못 봤고 숲 지붕을 건너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뿐이었다”며 “많은 종이 직접 관찰은 어렵고 특히 은밀한 종이거나 도달하기 어렵거나 폐쇄된 곳에 사는 종은 아주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육상동물 조사는 무인카메라 촬영이나 발자국과 배설물 조사 등의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동물이 사는 곳에 직접 가야 하고 수천장의 사진을 골라내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나무늘보 야외 사육장에서 공기 샘플을 채취하는 모습. 크리스티안 벤딕스 제공.

 

이번 연구에서는 동물원의 실내 사육장과 실외 사육장, 마구간 등에서 공기를 흡입해 분석하는 방법을 썼다. 주 저자인 크리스티나 린고드 코펜하겐대 연구자는 “공기를 걸러낸 필터에서 디엔에이(DNA)를 추출하고 이를 증폭해 디엔에이 염기서열을 해독한 뒤 데이터베이스의 디엔에이 자료와 비교해 종을 가려낸다”고 연구방법을 소개했다.

 

그 결과 코펜하겐 동물원에서는 49종의 척추동물을 찾아냈는데 아르마딜로와 오카피 같은 사육동물은 물론이고 열대관 연못에 사는 물고기 구피, 동물원 안팎에 사는 쥐와 다람쥐, 먹이로 주는 빙어와 연어의 디엔에이도 확인했다.

 

해머튼 동물원에서는 25종의 포유류와 조류 종을 확인했는데 공기 채집장소에서 245m 떨어진 곳에서 기르던 미어캣도 확인했다. 사육동물 말고도 영국의 멸종위기종인 고슴도치와 외래종인 아기사슴 그리고 맹수 먹이로 주는 소·말·돼지·닭 디엔에이를 확인했다.

 

주 저자인 클레어 교수는 “강이나 호수에 견줘 공기 속에서 환경디엔에이를 찾는 것은 디엔에이가 공기 속에 희석돼 있기 때문에 몹시 어렵지만 두 연구에서 놀랍게 잘 이뤄졌다”고 말했다.

 

클레어 교수는 동물원 야외에서 공기 표본을 채집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클레어 제공.

 

물고기 등 물속 동물을 조사할 때는 직접 포획하느라 서식지를 교란하고 스트레스를 주는 대신 동물의 피부조직과 배설물 형태로 물속에 배출된 디엔에이를 통해 종을 확인하는 일은 일반화돼 있다(▶물 한 병 뜨면 생물지도 나온다…놀라운 디엔에이 검출법). 최근에는 물을 필터로 걸러 디엔에이를 추출할 필요 없이 단지 거름막을 몇 시간 동안 물에 담갔다 빼는 것으로도 거의 같은 생물종 확인이 가능한 기술도 개발됐다.

 

연구자들은 “생태계 변화를 모니터링하는 속도가 멸종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에서 빠르고 효과적으로 생물종을 확인하는 기술이 더욱 중요하다”고 밝혔다. 클레어 교수는 “(직접 포획하지 않는) 이런 조사 방법은 특히 멸종위기종이나 동굴과 땅굴처럼 접근이 쉽지 않은 동물을 조사할 때 필요하다”며 “사는 곳에 가지 않고도 단지 옅은 공기 속에서 디엔에이 흔적을 찾아내기만 하면 그 동물이 산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기술이 외래종 침입을 감시하는 데도 유용하다”고 덧붙였다. 조홍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