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권 등급의 세계…승객에 사전고지“구매때 참고를”

좌석배정·환불 가능 등 조건따라, 항공권 출발일 옆에 알파벳 표시

동급 표라도 Y·M 등 십여개 등급…특가는 마일리지 적립 안되기도

 

 

“내 항공권은 왜 좌석승급이 안되냐. 다른 이코노미석은 승급해주면서.”

 

항공사에는 이런 민원이 종종 발생한다. 같은 이코노미석 항공권인데, 누구는 좌석승급을 해주고, 나는 왜 안해주느냐고 따지는 거다. 항공사들은 “오해”란다.

 

퍼스트 클래스, 비즈니스, 이코노미. 항공사별로 부르는 명칭이 조금씩 다르지만, 항공기 좌석은 일반적으로 이렇게 세 등급으로 나뉜다. 항공 여행을 많이 해본 사람들도 같은 등급의 좌석끼리는 판매가와 서비스 조건이 같은 줄 안다. 그런데 항공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등급이 같은 좌석 사이에도 실제로는 꽤 여러 단계의 또다른 등급이 존재한다. 대한항공 국제선 항공권의 경우, 이코노미석 안에서만 13개 등급이 있다. 아시아나항공 국제선 이코노미석에는 15개 등급이 있다.

 

같은 이코노미석이라도 판매가와 서비스 조건 차이가 13~15단계에 이른다는 뜻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항공사 임원은 <한겨레>에 “폭우나 태풍 등으로 항공편이 취소될 때마다 이른바 ‘빽’ 있는 사람들이 항공사에 자리를 알아봐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추가 요금을 내지 않으려는 게 속내일 때가 많다. 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추가 요금을 내라고 하니까 항공사에 민원을 하는 것이다. 공직자들의 이런 행위는 ‘김영란법’ 위반에 해당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항공권은 ‘재고 없는’ 상품이다. 티브이(TV)·노트북처럼 창고에 쌓아놓고 수요에 대응할 수 없다는 뜻이다. 활주로를 떠난 항공기에는 승객을 추가로 태울 수 없어서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이 당연한 이유로 이코노미석의 각 좌석마다 추가로 등급이 매겨진다.

 

 

항공사는 항공기에 최대한 많은 승객을 태우길 원한다. 항공사의 가격 정책이 단순하면 좌석이 동일해도 가격에 예민한 승객들은 항공권을 구매하지 않을 수 있다. 간혹 항공사가 출발일 직전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만드는 ‘특가 항공권’도 이러한 고객을 겨냥한 상품이다. 이런 다양한 수요를 반영하기 위해 항공사는 같은 이코노미석이라도 팔리는 시점과 서비스 여부에 따라 요금을 다르게 책정한다.

 

항공권 속 Y·M·W 표시, 뭔 뜻?

 

항공기 좌석의 요금은 어떻게 구분될까.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항공요금(Airfare) 지표가 기준이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큰 틀에서 좌석등급을 구분하고, 각 등급별 요금 지표를 정해두고 있다. 하지만 이를 손님들에게 어떻게 적용할 지는 전적으로 항공사 마케팅에 달렸다. 항공사는 국제기준에 없는 지표를 추가로 만들어 적용하기도 하고, 국제기준 지표를 응용해 활용하기도 한다.

 

대한항공 항공권 기준으로, 항공권에는 출발일(DATE) 옆에 와이(Y)·엠(M)·더블유(W) 같은 영문 알파벳이 표시돼 있다. 각각 해당 등급 좌석 내 하위 등급(Sub class)을 나타낸다. 일등석(퍼스트 클래스)에도 하위 등급이 존재한다. 에이(A)·에프(F)·피(P) 등으로 구분돼 있다. 에이는 할인 가격의 좌석이다. 에프는 할인이 없는 퍼스트 클래스 일반석, 피는 퍼스트 클래스 프리미엄석이다. 물론 이 알파벳 표시는 항공사별로 다 다르다.

 

비즈니스석도 마찬가지다. 비즈니스석 항공권에는 보통 시(C)·디(D)·제이(J)·제트(Z) 등의 표시가 있다. 시는 할인이 없는 일반 비즈니스 좌석, 디·제트는 할인 비즈니스 좌석, 제이는 프리미엄 비즈니스석 식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제이 표시가 된 항공권 좌석이 가장 비싼 비즈니스석이라고 보면 된다.

 

일등석과 비즈니스석에 배정된 알파벳을 제외한 나머지 알파벳이 이코노미석의 하위 등급 표시로 사용된다. 대표적인 게 와이(Y)다. 일반적으로 할인이 없는 이코노미석을 가리킨다. 가장 비싼 이코노미석인 셈이다.

 

자신의 항공권이 어떤 하위 등급에 해당하는지는 마일리지 적립률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대한항공 국제선 이코노미석 항공권 중에서는 와이·더블유(W)·비(B)·엠(M)·에스(S)·에이치(H)·이(E) 표시가 돼 있는 것은 마일리지 적립률이 100%다. 케이(K)·엘(L)·유(U) 등급이 추가되기도 한다. 반대로 국내선에서는 낮은 등급 좌석 항공권에 케이(K)·엘(L)·유(U)가 표시돼 마일리지 적립률이 0%인 경우도 있다. 지(G)석은 그룹 항공권을 뜻한다. 단체 출장이나 패키지 여행자 항공권에 주로 표시되는 알파벳이다.

 

아시아나항공 국제선 이코노미석 항공권은 와이(Y)·비(B)·엠(M)·에이치(H)·이(E) 표시가 돼 있는 게 마일리지 적립률이 높은 것이다. 티(T)는 절반만 인정하고, 엘(L)·엑스(X)·엔(N)은 적립되지 않는다. 마일리지 적립이 안되는 항공권은 ‘특가’로 판매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하위 등급, n차 방정식으로 만들어져

 

항공권에 어떤 알파벳을 표시할지 결정하는 기준은 뭘까. 하위 등급 체계는 항공 서비스를 구성하는 다양한 변수들이 조합돼 만들어진다. 항공은 택시나 버스에 견줘 고가의 서비스다. 이동 서비스와 함께 술과 식사 등 다양한 부가 서비스도 제공된다. 부가서비스는 항공 여정과 항공사의 마케팅 전략에 따라 차이가 난다. 저비용항공(LCC)은 부가서비스를 제외해 요금을 낮춘 사업모델이다.

 

항공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항공권 가격을 규정하는 변수는 변경 수수료, 환불 위약금, 좌석 배정 유무, 좌석 승급 가능, 마일리지 적립률, 편도·왕복 여부, 일정 변경 가능 여부, 환불 가능 여부, 수화물 허용치, 출발지와 목적지 동일 여부, 사전 구매 제한 등 다양하다. 항공사별로 따로 추가로 적용하는 변수도 많다. 이런 변수들이 복잡하게 조합되면서 와이(Y)·엠(M)·비(B) 등의 하위 등급이 만들어진다.

 

자신의 항공권이 남들 것과 다르게 좌석승급이 안된다면, 해당 서비스가 안들어간 것이라고 보면 된다. 큰 폭의 요금 할인을 받은 항공권이라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환불이 안 되거나 위약금 액수가 크다거나, 사전에 좌석 배정이 불가능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는 사전에 승객에게 고지되는 사항으로, 나중에 항공사 쪽에 떼를 써도 변경해 주지 않는다.

 

요즘은 항공사가 항공권별 가격과 부가서비스 내용 등을 누리집에 투명하게 공개하기도 한다. 지금처럼 모바일 항공권 가격 비교 플랫폼이 활성화하지 않았던 시절에는 항공권을 가장 저렴하게 구매하는 게 여행사의 능력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같은 이코노미 항공권이라도 싸게 구매하는 방법은 뭘까. 부가서비스가 없는 걸 고르면 된다. 일찍 산다고 싼 게 아니다. 이상필 참좋은여행 부장은 “1년 전에 예약했어도, 탑승하는 날 갑자기 일이 발생해 항공권 가격이 하락할 수도 있다. 출발 시간이 이르고, 인기 날짜가 아니면서, 단체예약이거나, 돌아오는 날짜가 확정되면, 대체로 저렴하다”고 말했다.   곽진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