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계간지 3개국 집중 조명

덴마크 “정부에 대한 신뢰 높아”

코스타리카 “꾸준한 복지 투자”

뉴질랜드 “소득보다 웰빙 중요”

 

 자료: 국제통화기금(IMF)

 

국제통화기금(IMF)이 최근 펴낸 계간지 <재정과 개발>(Finance and Development) 겨울호는 ‘행복한 삶’(A Life Well Lived)이라는 주제로 세 나라를 살폈다 . 덴마크와 코스타리카, 뉴질랜드가 그 주인공이다. 이 세 나라는 유엔(UN)이 조사하는 세계행복지수에서 매년 상위권에 올랐고, 이는 코로나19 유행기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세계 행복지수 보고서’에서도 덴마크와 뉴질랜드는 95개 나라 중 각각 3위와 5위, 코스타리카는 16위를 차지했다. 세 나라가 행복한 이유는 유사했다. 소설 <안나 카레리나>의 서문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처럼 . 다음은 주요 내용.

 

덴마크의 한 가정이 코로나19 테스트를 받고 있다. 자료: 국제통화기금(IMF)

 

■ 신뢰 굳건한 덴마크

 

코델리아 체스넛(36)은 코로나19 발생 이후 감염 테스트를 32번 이상 받았다. 감염 테스트는 봉쇄 조처 해제 대신 외부 활동을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어서다. 그는 배드민턴을 치고 싶을 때마다 무료이자 손쉬운 예약 절차를 밟아 검사를 받았다. 그는 “다른 사람들의 안전과 코로나19에도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치러야 할 작은 대가”라고 말했다. 이는 덴마크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을 사회 공동 노력의 일부로 여기는 사례다.

 

시민들은 정부가 국민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실현한다고 믿으며 정부는 시민들이 사회 조직을 유지하는 데 힘을 다하리라고 믿는다. 코로나19 기간에도 사회적 신뢰는 계속됐고, 상대적으로 적은 인력으로 코로나19 확산을 통제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자들은 행복과 만족 등 다양한 척도에서 꾸준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이유로 신뢰를 꼽는다. 신뢰의 근간은 관대한 실업 부조를 비롯해 무료 의료 및 교육, 두터운 보육 지원 등 튼튼한 사회복지제도다. 크리스티안 비욘스코프 오르후스대 교수(경제학)는 최근 펴낸 <북유럽 국가의 행복>이라는 책에서 신뢰라는 문화적 특성은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에서만 거의 유일하게 존재한다고 밝혔다. 또 덴마크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광범위한 사회 복지가 아니라 신뢰와 관용, 강력한 제도, 긴 경제 발전의 역사, 민주주의 등의 결합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행복’이 중요 의제로 등장하기도 한다. 2014년 코펜하게 인근 어촌 마을인 드라고르 의회는 행복 관련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당시 시장인 아이크 달 비드스트럽은 “우리 공동체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그들의 꿈은 무엇인지, 그리고 기본적으로 그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 행복연구소와 함께 진행한 조사에서 시민들은 여가 시간을 위한 더 나은 사회 기반 시설을 원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따라 실내 수영장 건립과 스포츠 시설 개선, 노인 대상 프로그램 확대, 공공 공간 개선 등의 결과로 나타났다.

 

높은 청렴도 역시 굳건한 신뢰의 비결이다. 모겐스 리케토프트 국회의원은 “정치 시스템은 부패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정치체제에 신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청렴과 오랜 전통의 합의 문화(1900년대 초 이후 한 정당이 과반수를 차지한 적이 없다)와 효율 높은 정부 서비스 등 덕택에 시민들은 높은 조세 부담을 받아들인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가 교육, 보육, 노년기 돌봄, 건강 등을 지원하는 것이 기업과 노동시장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이해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물론 도전 과제도 있다. 그는 “이민자와 난민을 노동시장에 통합하는 어려움과 사회복지 부담으로 복지 혜택을 줄여야 한다는 논쟁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코로나19 유행 기간 하나로 뭉쳤고 이에 다른 나라들에 견줘 덴마크는 바이러스 억제 정책을 효과적으로 펼칠 수 있었다. 마이클 뱅 피터슨 오르후스대 교수(정치학)는 덴마크외 7개국 40만명 이상을 조사한 결과, 덴마크 보건당국에 대한 높은 신뢰가 효과적인 방역의 핵심 요인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 말 75% 이상이 예방 접종을 받았고,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일 때 성인 60% 이상이 매주 검사를 받았다.

 

“검사를 시행하면서,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조금 걱정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서로를 위한 것으로 봤다. 국가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받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검사를 받았다. 그래서 훨씬 더 빨리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조사에서 90% 이상이 보건 당국에 대해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터슨 교수는 “정치 제도의 기능과 사회적 신뢰가 긴밀한 관계라는 증거”라며 “정부가 무언가 문제가 발생할 경우 도움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근본적으로 다른 신민들을 신뢰하게 된다”고 말했다.

 

■ 순수한 삶의 코스타리카

 

                           코스타리카 한 농민이 나무를 깎고 있다. 자료: 국제통화기금(IMF)

 

‘푸라 비다’(pura vida). 순수한 삶(pure life)라는 뜻의 스페인어는 코스타리카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느긋한 생활상을 표현한다. 코스타리카 사람들이 왜 행복한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지난해 코스타리카는 세계 행복지수 보고서에서 16위였다. 체코를 제외하고 20위 안에 든 유일한 신흥국이다. 경제학자 마리아노 로하스 교수는 높은 행복이 강한 사회적 유대 관계와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그는 “사람들은 따뜻하다. 삶의 속도는 더 느리다. 모두가 출세의 사다리를 타려는 경쟁사회가 아니다”고 말했다.

 

잘 마련된 복지 제도가 이를 뒷받침한다. 무상교육과 국가연금이 보장돼 있다. 남미에서 모든 인구에게 전기는 물론 식수가 공급되는 유일한 나라이자, 보편적 건강보험이 마련된 나라다.

 

수십년 동안 손쉽게 예방할 수 있는 종류의 죽음과 장애를 줄이기 위해 꾸준히 공중 보건 투자를 해왔다. 1970년대에는 영국 등 일부 선진국보다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높은 비율에 해당하는 금액을 보건에 투자했다. 이는 성과로 나타났다. 1985년까지 평균 수명은 남미 국가 가운데 가장 길었고 미국과 맞먹었다. 아동 사망률은 1970년 1000명당 74명에서 1989년 17명으로 떨어졌다.

 

특히 고유의 건강관리 모델은 돋보인다. 1990년대에 실현된 이 모델은 그동안 축적된 농촌·지역사회 보건 프로그램 경험을 토대로 구축돼 국가의 돌봄 문화를 변화시켰다. 모든 시민이 의사와 간호사, 지역사회 보건 종사자 등으로 구성된 1차 건강 관리 팀인 EBAIS에 배정돼 관리된다. 보건 종사자들은 해당 지역의 각 가정을 방문해 건강을 측정한다. 이들이 수집한 데이터는 보건 목표와 경과 추적, 집중할 고위험 분야 설정 등에 활용된다. 첫 도입은 도시가 아닌 가장 가난한 시골에서 시작했다.

 

“건강의 결정요인, 즉 사람들이 사는 환경에 대한 정보를 토대로 풍부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다. 단순히 병을 치료하는 것을 넘어, 보건 투자가 삶의 질과 조건을 개선할 수 있다는 데서 시작했다. 이는 건강과 웰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포괄적인 비전이다.”(마리아 델 로키오 산즈 마드리갈 전 보건부장관)

 

모델의 효과성은 명확한 증거로 뒷받침된다. 기대수명은 1990년 75살에서 80살로 늘었다. 보건 분야 지출은 세계 평균(국내총생산 대비 10%·2017년 기준)보다 적은 7.3%에 불과하다.

 

로하스 교수는 “건강할수록 행복하고, 행복할수록 건강하다. 보건 분야 지출이 적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는 행복과 건강 가운데 어느 것이 우선이냐는 질문에 “틀린 질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코스타리카에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며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전임 정부 정책을 보강하는 벽돌을 추가해야 한다. ‘이전 정부가 했던 모든 것은 쓸모없다’와 같은 실수는 벽돌을 쌓는 것보다 교체 비용이 더 많이 든다”고 강조했다.

 

코스타리카는 복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869년 초등 교육을 무료 및 의무화한 세계 최초 국가다. 정치학 교수인 크리스티나 에귀사발은 “계몽된 엘리트들이 있었다”며 “이들은 가난을 줄여 일정 수준의 행복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소득 불평등이 확대되기는 했지만, 그 전까지 극빈층의 비율은 줄었다”고 덧붙였다.

 

욕심을 내려다 얻은 깨달음도 있었다. 에귀사발 교수는 “1970년대 남미 국가 가운데 산림 황폐화가 가장 심했다. 에너지는 대부분 수력 발전으로 생산되는데 댐은 말라가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환경이 푸르를수록 일자리는 더 많아진다”고 덧붙였다. 오늘날 코스타리카는 세계적인 ‘그린 개척자’(green pioneer)다.

 

카스트로 전 하원의원은 코스타리카가 행복한 여러 이유를 언급했다. 그는 “태어나기 전에 생명, 교육, 식량, 사회보장을 보장받는다. 전쟁은 오직 영화에서만 배우게 될 것”이라며 “그것이 ‘푸라 비다’”라고 말했다.

 

■ 소득보다 웰빙이 우선인 뉴질랜드

 

뉴질랜드 웰링턴에 있는 어린이 놀이터. 자료: 국제통화기금(IMF)

 

2019년 저신다 아던 총리가 이끄는 노동당 정부는 가정폭력, 아동빈곤, 주거 등 국가가 직면한 여러 장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예산을 공개했다. 이른바 ‘웰빙 예산 2019’(Wellbeing Budget 2019)는 정신 건강과 아동 복지, 원주민 동기 유발 지원, 생산적인 국가 건설, 경제 전환 등 다섯 가지 핵심 영역을 우선 순위로 뒀다. 정신 건강과 아동 빈곤 타파뿐만 아니라 가족 폭력 대처를 위해 수십억달러를 투자 계획을 담고 있었다.

 

인구 500만명인 뉴질랜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에 비해 복지 분야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왔다. 그러나 가정 폭력, 성폭력 등은 최악이며, 아동 빈곤도 심각했다. 뉴질랜드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최대 21만500명의 어린이가 빈곤에 허덕였다.

 

웰빙 예산은 국가가 좋은 삶을 구성하는 건강이나 교육, 지역사회 연대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해야 하도록 했다. 재무부 전 수석경제학자이자 빅토리아대 행정대학원장인 지롤 카라카오글루 교수는 “좋은 소식은 대화가 바뀌었다는 것”이라며 “소득보다 더 걱정해야 할 다른 것이 있다는 깨달음이 있다. 이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2019년 예산안은 좋은 사례”라고 말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지역 사회에 힘을 실어주고, 그 결과를 측정하기 위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카라카오글루 교수는 “절차는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 매우 중요하다”며 “절차의 변화는 지역 사회가 변화를 주도하고 이를 위해 더 많은 발언권과 자원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 방식으로의 전환은 정부의 역할과 그 결과를 측정하는 방식의 변화를 뜻한다. 재무부 도미닉 스티븐스 수석경제학자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결과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더 총체적으로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웰빙에 대한 이해를 계속 쌓고 있지만, 고된 작업이다”고 말했다.

 

컨설팅 회사에서 사회정책 분야에 20년간 종사한 에밀리 메이슨은 “복지를 구현하기 위해 그에 합당한 조처와 의사결정 인프라가 필요하다. 과거와 현재의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는 물론 이를 연결해 측정하고, 개인의 일생을 개별적으로 살필 필요가 있다. 복지는 개인적인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소득보다 더 걱정할 것에는 정신건강이나 아동빈곤 타파 등이 있다. 예산안에는 정신 건강에 19억 뉴질랜드 달러(약 1조5천억원)를 투자하고, 총리가 각별히 신경 쓰는 아동빈곤을 줄이는 재정 지출이 포함됐다. 코로나19에도 일관되게 추진된다. 내각의 아동복지부(Child Wellbeing Unit) 책임자인 마리 브라운은 “청소년 복지 전략은 이들의 복지를 개선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코로나19는 이를 더욱 필요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