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확대장관회의
“새 정부 출범까지 시일 촉박…준비된 이후 이전이 순리”
“청 국민께 돌려드리는 데 공감하나 안보역량 결집 중요”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 수석이 21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추진 중인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관련 정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청와대는 2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 집무실 이전 추진과 관련해 “새 정부 출범까지 촉박한 시일 안에 비서실 등 보좌진·경호처 이전은 무리한 면이 있어 보인다”며 “국방부와 합참 청와대 모두 준비된 이후 이전하는 게 순리”라고 밝혔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의 졸속 추진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청와대는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확대장관회의를 열어 “문재인 대통령도 과거 대선 때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공약한 바 있어 청와대 국민께 돌려드리는 데는 공감한다”면서도 이렇게 밝혔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 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특히 한반도 안보 위기 고조로 어느 때보다 안보역량을 집결하는 게 중요하다”며 “정부는 당선인과 인수위에 이러한 것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박 수석은 아울러 문 대통령이 “국방부와 합참은 마지막까지 흔들림 없이 임무에 임해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이완 기자
청와대는 안보공백 우려 반대…당선자 쪽은 “5월10일 개방” 고수
김부겸 총리-안철수 위원장 회동 “정부 안 이전TF 설치해 논의“ 제안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이 21일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룸에서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에 대해 “새 정부 출범까지 시일이 촉박하”고 “특히 한반도 안보 위기 고조로 어느 때보다 안보역량을 집결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히고 있다.
청와대가 2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계획에 관해 “촉박한 시일 안에 이전하겠다는 계획은 무리한 면이 있어 보인다”며 반대했다. 5월10일까지 집무실 이전과 청와대 개방을 하겠다는 윤 당선자의 계획은 실현이 어려워졌다. 윤 당선자 쪽은 “안타깝다”며 “5월10일 0시부로 청와대 완전 개방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확대관계장관회의 결과 브리핑에서 “시간에 쫓겨야 할 급박한 사정이 있지 않다면 국방부, 합참, 청와대 모두 보다 준비된 가운데 이전을 추진하는 것이 순리일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청와대는 집무실 이전에 따른 안보 공백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고 했다. 박 수석은 “한반도 안보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며 “준비되지 않은 국방부와 합참의 갑작스러운 이전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이전은 안보 공백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현 청와대를 중심으로 설정되어 있는 비행금지구역 등 대공방어체계를 조정해야 하는 문제도 검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북한이 올해 들어서만 11차례 미사일 발사를 한데다, 김일성 주석 생일인 태양절(4월15일)을 앞두고 있으며, 4월 중 한-미 연합훈련이 예정되어 있어 한반도 안보에 민감한 시기라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수석은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끝나는 마지막 날(5월9일) 밤 12시까지 국가안보와 군 통수는 현 정부와 현 대통령의 내려놓을 수 없는 책무”라며 “국방부·합참 관련 기관 등은 마지막 순간까지 흔들림 없이 임무에 임해달라”는 문 대통령의 당부를 전했다.
청와대는 아울러 22일 국무회의에서 윤 당선자 쪽이 요청한 496억원의 집무실 이전 예비비를 상정하지 않겠다는 뜻도 분명히 밝혔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예비비를 내일 국무회의에서 상정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예비비는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 승인을 거쳐야 한다. 다만, 그는 “언제든지 협의가 잘되면 임시국무회의를 바로 열어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청와대가 반대 의사를 밝힘에 따라 5월10일까지 대통령 집무실을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고, 청와대를 완전히 개방하겠다는 윤 당선자의 계획은 실현되기 어렵게 됐다. 신-구 권력 사이의 긴장감도 한층 더 높아지게 됐다.
윤 당선자 쪽은 유감을 표시했다. 김은혜 당선자 대변인은 “안타깝다. 문 대통령이 정권 인수인계 업무의 필수사항에 협조를 거부한다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논평했다. 이어 “윤 당선인은 통의동에서 정부 출범 직후부터 바로 조치할 시급한 민생 문제와 국정 과제를 처리해나갈 것”이라며 “5월10일 0시부로 윤 당선인은 청와대 완전 개방 약속을 반드시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기를 시작해도 삼청동 청와대 집무실이 아닌, 통의동 당선자 집무실에서 임기를 시작할 것이라는 뜻을 밝힌 것이다.
한편 김부겸 총리와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이날 오후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만나 정권 인수인계 문제를 협의했고 김 총리는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는) 충분한 논의와 검토가 필요하다”며 정부 안에 집무실 이전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인수위와 협의할 수 있다는 뜻을 전달했다고 총리실이 밝혔다. 이에 안 위원장은 “대통령의 우려와 입장을 잘 알겠다. 인수위 내부 논의를 거쳐 당선인과 상의하겠다.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는 당선인의 의지가 확고하다. 서로의 우려를 씻을 수 있는 해법을 찾기 바란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서영지 조윤영 기자
문 대통령, 집무실 제동 왜?…국방부·합참 이전 ‘안보 위협’ 판단
“국방부·합참 흔들림 없이 임무”
통수권자로서 대비태세 유지 명령
북 미사일 잇딴 발사 등 위기 고려
문재인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확대 관계장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안보 우려’를 명분으로 윤석열 당선자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속도전’에 제동을 걸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무리한 국방부 청사 집무실 이전이 자칫 안보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 경우 책임은 문 대통령 본인에게 돌아온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5월9일 자정까지는 자신의 임기라는 점을 분명히 상기시킨 것이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이날 전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결론은, 5월10일까지 용산 국방부 청사로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겠다는 윤석열 당선자의 계획은 시일도 촉박하고 준비가 미비해 ‘무리수’라는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국방부와 합참의 갑작스러운 이전과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의 이전이 안보 공백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를 충분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발언에 이런 입장을 압축해 담았다. 특히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는 상임위원들뿐만 아니라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과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 원인철 합참의장 등이 모두 모인 확대관계장관회의 형식이었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으로 당장 이삿짐을 싸야 할 처지였던 합참 등 국방 분야는 물론, 리모델링 등 이전 비용으로 윤 당선자가 요청한 496억원의 예비비를 다룰 기재부까지 참석해 이 문제를 종합적으로 따져보고 결론을 모으는 모양새를 갖췄다. 이날 회의에선 윤 당선자가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겠다며 국방부와 합참 연쇄이동까지 확정한 건 당선자 신분과 인수위 권한을 넘어선 행위라는 비판도 나왔다고 한다.
더욱이 “국방부와 합참, 관련 기관 등은 마지막 순간까지 흔들림 없이 임무에 임해주기 바란다”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는 군 통수권자로서 자신의 임기가 끝나는 5월9일 자정까지 국방부와 합참은 현 위치에서 대비 태세를 유지하라는 명령이다. 윤 당선자의 집무실 이전 계획에 따른 연쇄 이동을 군 통수권자인 문 대통령이 승인할 수 없다는 뜻을 군에 명확히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이 미래 권력인 윤 당선자와 갈등을 무릅쓰면서 이렇게 명확히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최근 북한 상황 등을 고려해볼 때 정권교체기에 준비되지 않은 청와대-국방부-합참의 연쇄 이동은 큰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은 정권교체기에 항상 한반도 긴장 상황을 높여왔다. 문 대통령도 2017년 5월 취임 직후부터 북한의 연쇄적인 탄도미사일 발사 상황을 접하고 한반도 긴장 완화에 전력을 쏟아부은 경험이 있다.
문 대통령이 윤 당선자의 요청을 수용해 국방부와 합참 이전 작업이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북한의 도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닥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문 대통령의 몫이 된다. 문 대통령이 윤 당선자에게 “시간에 쫓겨야 할 급박한 사정”을 배제하고 차분한 논의를 권고한 것은 이런 위험을 줄이기 위한 선택이기도 하다.
윤 당선자가 문 대통령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거나 사전 협의도 없이 5월10일 대통령 취임과 함께 청와대를 일방적으로 개방하겠다고 밝힌 것도 청와대 내부 분위기를 부정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윤 당선자가 자신의 취임에 맞춰 청와대를 개방하려면 그 이전에 관저와 본관, 비서동인 여민관 등의 주변 정리는 물론 공원화를 위한 공사를 대대적으로 벌여야 한다. 이는 문 대통령이 그동안 강조해왔던 “임기 마지막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에 배치된다.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 취임하기도 전에 먼저 나가라고 하는 거냐”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선 대통령 집무실 이전 협조가 잘되더라도 국방부·합참 등의 안보 역량이 안정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우려도 많았다고 한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4월에는 북한의 연례적 행사(태양절·건군절)가 예정돼 있고, 그 가운데 올해 들어서만 열번째 미사일 발사를 하는 등 북한의 미사일 발사 흐름이 지금 지속되고 있다”며 “4월 중에는 한-미 간 연례적인 훈련 행사가 있는 시기인 만큼 4월 이 시기가 한반도의 안보에 있어서 가장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완 기자
청와대 ‘용산 이전’ 제동에…윤석열 인수위 ‘부글부글’
불가능한 ‘선언’ 불쾌감 드러내
대통령-당선자 회동 험로 예상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1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경제 6단체장들과 오찬 회동을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에 제동을 걸자, 당장 22일로 예정된 국무회의에서 예비비 지출 승인을 받아 이전 작업을 시작하려던 윤 당선자 쪽과 국민의힘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 했다. 윤 당선자 쪽은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대표적인 정권 인수인계 업무의 필수사항에 대해 협조를 거부하신다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면서도 “5월10일 0시부로 윤 당선인은 청와대 완전개방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막겠다면 본인도 임기 시작과 동시에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겠다는 얘기다. ‘5월10일 청와대 개방’이라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진 계획을 거듭 선언하며 문 대통령의 제동에 감정을 드러낸 것이어서, 향후 대통령-당선자 회동은 물론 정권 인수인계 과정에서 험로가 예상된다.
김은혜 당선자 대변인은 이날 ‘새 정부 출범 때까지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하겠다는 계획은 무리’라는 청와대의 입장이 나온 직후 “안타깝습니다”라는 문장을 시작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대표적인 정권 인수인계 업무의 필수사항에 대해 협조를 거부하신다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며 현실을 인정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뒤이어 “윤 당선인은 통의동에서 정부 출범 직후부터 바로 조치할 시급한 민생문제와 국정 과제를 처리해나갈 것”, “5월 10일 0시부로 윤 당선인은 청와대 완전개방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겠다”고 다짐했다. 안보 불안을 이유로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이동에 동의할 수 없다는 문 대통령에 대해 결국 분통을 터뜨리며 청와대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겠다는 윤 당선자의 의지를 거듭 확인시킨 것이다.
이런 분위기는 국민의힘 국방위원들의 성명으로도 이어졌다. 이들은 “국가안보의 가장 기본은 대통령에 대한 신변 경호”라며 “대통령이 집무실에 들어가지 못하고, 경호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이야말로 대한민국 안보위기를 초래하는 것이다. 안보공백을 내세워 예산편성을 거부하는 청와대의 행태는 새 정부 출범을 방해하는 발목잡기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윤 당선자가 청와대에 절대 안 들어가겠다고 했으니, 문 대통령이 새 집무실 이전을 거부하는 건 윤 당선자를 위해에 빠뜨리는 것’이라는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다. 인수위 관계자도 “결국 새 정부에 협조를 안 하겠다는 것 아니냐. 청와대 협조 없이는 국무위원을 다 바꾼 다음에야 추진이 가능한데 그때까지 버티겠다는 뜻으로 읽힌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국민의힘 일각에선 윤 당선자가 집무실 이전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취임도 하기 전에 정국을 경색시켰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찬반여론이 갈리는 상황에서 굳이 용산 이전을 급하게 결정해서 비판의 빌미만 준 것 아니냐”며 “우리가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공공기관 ‘알박기 인사’나 엠비(MB) 사면 등 여러 이슈가 있었는데, 오히려 청와대가 우리에게 책임을 떠넘기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16일 한 차례 취소됐던 문 대통령과 윤 당선자의 회동 논의는 집무실 이전을 둘러싼 갈등이 노출되면서 또 다른 암초를 만나게 됐다. 이날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과 장제원 당선자 비서실장이 만나 회동 일정을 조율했지만 별 소득 없이 헤어졌다고 한다. 이날 두 사람의 실무 협의는 청와대가 ‘집무실 이전에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기 이전에 진행된 것이어서, 분위기는 다시 냉각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그러나 윤 당선자의 새 정부 구상에 발목을 잡는 게 아니라며 대화를 희망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오늘의 문제 제기는) 우리 정부의 아주 모범적인 인수인계와는 별개의 것”이라며 “(집무실 용산 이전에 따른) 안보 공백 문제에 대해, 거기서 생각하는 안보 공백과 우리가 생각하는 게 일치하는지 만나서 이야기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배지현 이완 기자
정부,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제동…예비비 배정도 안 할 듯
“예비비 국무회의 상정 어려워”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21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추진 중인 청와대 집무실 이전 등과 관련 정부 입장 등에 대해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집무실 이전’을 위한 재원 496억원을 예비비로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청와대가 21일 ‘안보 공백’ 우려를 들며 “집무실 이전 계획은 무리”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시간을 가지고 충분한 협의를 거쳐 최종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입장을 말씀드린 만큼 내일 예비비 국무회의 상정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안보 우려가 큰 만큼 국방부와 합참 이전 등에 사용할 예비비를 내어줄 수 없다는 것이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확대관계장관회의 결과를 발표하며 “새 정부 출범까지 얼마 남지 않은 촉박한 시일 안에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 등 보좌기구, 경호처 등을 이전한다는 계획은 무리한 면이 있어 보인다”라며 “한반도 안보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준비되지 않은 국방부와 합참의 갑작스러운 이전과 청와대 위기관계센터 이전은 안보 공백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예비비는 정부의 ‘비상금’으로 예산 심사 단계에서는 예측할 수 없었던 지출 소요가 생겼을 때 쓰도록 별도로 마련해두는 돈이다. 일반적인 예산은 편성 단계부터 세부사업별로 기재부와 국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지만, 예비비는 총액만 국회 승인을 받는다. 예비비 사용이 필요해지면 각 부처 장관이 그 이유와 금액, 추산의 기초 등을 담은 명세서를 작성하고 기획재정부 장관을 거쳐 국무회의에 상정한다.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승인만 받으면 지출이 가능하고 국회는 사후승인만 할 수 있다. 예비비의 편성부터 집행까지 모든 의사결정이 행정부 안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문 대통령은 청와대 이전을 위한 예비비 신청을 불승인할 것으로 보인다. 여권에서도 청와대 이전에 따른 각종 부작용에 대해 함께 책임질 수는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한겨레>와 통화에서 “이 예비비 신청을 대통령이 승인하면 청와대 이전에 대해 공동 책임을 지게 된다. 문제는 예산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느냐가 아니라 안보 공백 등의 우려인데, 청와대가 이를 승인하려야 할 수가 없다”며 “인수위의 이런 일 처리 방식 자체가 굉장히 무리하다”고 말했다. 아직 윤 당선자와 문 대통령의 회동도 열리지 않은 상황에서 인수위가 청와대 이사비 청구서부터 들이미는 것에 대해서도 여권에선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다.
당초 인수위원회는 22일에 열리는 국무회의에 청와대 이전 관련 예비비 지출안이 상정될 것으로 내다봤으나 이 역시 어려워졌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김은혜 대통령 당선자 대변인은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의 사전 실무협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내일(22일) 국무회의에 상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낙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청와대가 정면으로 집무실 이전 계획에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집무실 이전 관련 논의는 시작도 못하고 중단될 것으로 보인다. 이지혜 이완 기자
이전비 496억원? 하루만에 1200억 더 보탠 인수위
윤석열, 집무실 이전 비용만 밝혀
합참 ‘수방사 이전’ 비용 공개 안해
연쇄 이동, 관저·영빈관 신축도 남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0일 서울 종로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회견장에서 현재 청와대에 있는 대통령 집무실을 취임 직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쪽이 21일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라 합동참모본부(합참)가 남태령 수도방위사령부로 연쇄 이전하는 비용이 1200억원이라고 밝혔다. 전날 윤 당선자가 496억원의 집무실 이전 비용만 제시했다가 하루 만에 집무실 이전 비용의 2배가 넘는 예산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점을 실토한 것이다. 합참 이전 비용 외에도 향후 국방부 과천 이전, 대통령 관저와 영빈관 신축, 경호처 이전 등에 따른 추가 비용이 더 불어날 것으로 예상돼 연쇄 이전 비용은 1696억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김은혜 당선자 대변인은 이날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서 한 브리핑에서 ‘이전 비용으로 1조원가량이 들 수 있다’는 지적을 반박하며 “어떤 근거로 산출된 것인가. 기자들도 모르면 국민도 모르는 것이다. 어제 우리가 발표한 490여억원이 제일 정확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만약 합참이 남태령으로 이동할 경우 새롭게 청사 짓는 데에 1200억원 정도는 들어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이는 윤 당선자가 집무실 이전 비용으로 제시한 496억원의 2.4배 규모다. 김 대변인은 “어제 기자회견 질의·응답 자료를 배포하면서 (이런 내용을) 적시했다”고 했지만 전날 인수위가 배포한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발표 관련 보충자료’에는 합참 이전 관련 예산 추계는 없었다.
윤 당선자가 전날 발표한 대통령 집무실 이전 비용은 496억원이었다. 496억원에는 국방부의 합참 건물 이전 비용 118억원, 국방부 청사 리모델링 비용 252억원, 경호처 이사 비용 99억9700만원, 한남동 공관 리모델링 비용 25억원만 포함됐다.
윤 당선자는 이런 재원 추계 내용을 발표하며 현재의 국방부는 옆 건물로 이사해 합참과 함께 건물을 사용하도록 하고, 합참은 장기적으로 수도방위사령부가 있는 남태령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윤 당선자는 합참 이전과 관련해 “바로 이전한다는 뜻이 아니다”라며 비용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라 국방부가 당장 10개 층을 비우고 합참으로 옮겨야 하기 때문에 합참 연쇄 이동도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인수위 쪽이 사실상 인정한 1696억원(청와대 집무실 이전 비용 496억원+합참 이전 비용 1200억원)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을 지낸 예비역 육군 대장 출신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에 따른 합참과 국방부, 국방부 직할부대 연쇄 이전 비용의 총합을 1조원 정도로 추산했다. 국방부와 합참 이전에 각각 2200억원, 국방부 근무지원단 1400억원, 시설본부 800억원, 심리전단 200억원, 군사경찰 150억원, 대통령 경호부대와 경비시설 이전 2천억원 등이다. 국방부 역시 인수위 쪽에 국방부 이전 비용으로만 최소 5천억원이 든다고 보고한 바 있다. 김미나 기자
문 대통령 ‘임기 마지막 방위력 개선사업’ 보고 챙겨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21일 임기중 마지막 방위력개선 사업 보고를 받았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윤석열 당선자가 새 대통령 집무실 마련을 위해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를 옮기겠다고 해 안보 우려가 불거진 가운데, 청와대는 이같은 보고 사실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강은호 방위사업청장으로부터 함대공유도탄-II 연구개발사업 등 주요 방위력개선 사업 추진계획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고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전했다. 문 대통령은 임기 중 마지막 방위력개선 사업 보고를 받고 “보고된 사업이 대부분 국내에서 개발되거나 또는 양산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큰 의미가 있다. 예산 반영과 더불어 다음 정부에서도 국방력 강화 노력이 꾸준히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보고는 서욱 국방부 장관, 원인철 합참의장, 박종승 국방과학연구소(ADD) 소장 등이 배석한 가운데 열렸다. 박경미 대변인은 “이날 보고는 2023년 방위력개선 예산에 반영하기 위한 법적 절차의 일환으로 향후 방위사업추진위 심의, 사업타당성 조사 등의 절차를 거쳐 국회 심의를 통해 최종 확정될 예정”이라고 했다. 사업이 계획대로 추진될 경우 미사일 위협에 대한 방어 및 대응능력, 우리 군의 기동성 및 생존성 향상 등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완 기자
[시론] 공간이 의식 지배한다...그래서 ‘용산’이 걱정이다
[편집국에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0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국금융연수원 별관에 마련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새 대통령 집무실이 들어서게 될 용산 국방부 청사 일대의 조감도를 가리키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주현 | 이슈부문장
2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을 발표하면서 내보인 ‘용산 시대’ 조감도를 보면서 강한 의구심이 들었다. 새 대통령 집무실이 될 국방부 청사 남쪽으로 널따란 잔디밭 공원이 펼쳐져 있다. 실제로 50m 옆에 있는 합동참모본부 건물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고 삼각지 일대 고층 아파트들은 원경으로 한참 물러나 있다. 삼각지역 일대는 보이지도 않는다. 용산미군기지가 공원으로 바뀌면 새 대통령 집무실과 연계해 많은 시민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다 보니 얼짱 각도를 위한 생략과 과장이 거침없다. 이날 윤 당선자의 발표 장면을 지켜본 도시·건축 전문가들도 “사기에 가깝다”며 비판하는 반응이 많았다.
걱정스러웠다. 누군가 제공한 근사한 청사진에 윤 당선자가 그저 휘둘리는 것이 아닌지, 잠재적인 문제들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의도가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알지 못한 채 거침없는 의지만 앞세운 것이 아닌지.
용산 이전을 최대한 ‘선해’하는 이들은 백악관 모델을 거론한다. 유명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건축가인 유현준 교수는 지난 17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용산 이전과 관련해 “신의 한 수”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우리가 백악관을 보시면 앞에서 워싱턴 내셔널 몰 같은 기념관들이 딱 있고 거기에서 백악관이 약간 언덕에 올라가게 돼 있다. 그런 구조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3월 윤 당선자가 검찰총장을 그만둔 뒤 6월말 정치선언을 하기까지 ‘공부’를 한다면서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던 시절에 만난 사람이다. 윤 당선자가 제시한 공원 그림도 링컨기념관-워싱턴기념관-의사당까지 잇는 내셔널 몰과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 21일치 <조선일보 >는 “윤 당선인 측은 미 백악관 집무동인 웨스트윙을 새로운 집무실 모델로 고려해온 것으로 전해졌다”고 설명했다.
왜 서울이 워싱턴을 따라해야 하는지 잘 이해되지 않지만, 정말 백악관을 모방하기 위한 의도였더라도 이는 워싱턴과 미국의 수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맥락을 떼놓고 하는 말이다. 18세기 말 워싱턴디시 밑그림을 짠 건축가 피에르 샤를 랑팡은 의회와 백악관을 두 축으로 하여 의회-행정부 간 균형과 견제의 원칙을 담았다. 20세기 초 수립된 ‘맥밀런 플랜’은 내셔널 몰과 링컨기념관, 제퍼슨기념관을 배치해 미국이 지향하는 독립과 자유, 평등의 가치를 명확하게 풀어냈다. 링컨기념관이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로 꼽히는 것도 1963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마틴 루서 킹의 연설로 인해 인권의 보편적 가치가 더해졌기 때문이라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백악관 역시 1800년에 완공된 이래 수차례의 증축, 확장, 보강공사를 거쳐 오늘날의 모습이 됐다. 즉, 윤 당선자 쪽이 지향하는 워싱턴은 시대에 부응하는 전문가의 계획과 시민의 행동, 그리고 200여년의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애초에 문재인 대통령이 말했던 ‘광화문 시대’는 단지 대통령과 참모가 같은 건물에서 일하고 문밖으로 나가면 시민들과 만날 수 있다는 의미에서만 기획된 것이 아니었다. 광화문은 국가 지도자가 휘두르는 권력의 남용을 견제하려는 시민의 열망이 분출되고 자유로운 담론이 오가는 직접민주주의의 전당, ‘광장’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시민들과 악수를 하고 셀카를 찍는 수준의 소통이 아니라, 반대 의견을 청취하고 항의를 수용하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소망한 것이었다.
윤 당선자가 ‘광화문 시대’를 주장한 최초의 의도도 비슷했을 거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윤 당선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추진한 4대강 사업보다도 훨씬 급조되고 미숙한 청사진을 흔들며 50여일 만에 집무실 이전을 마무리짓겠다고 말한다. 여론의 반대는 본인이 직접 나서 ‘설득’하겠다는 것으로 충분한 모양이다.
공간은 시대를 담는 그릇이다. 물이 담기면 물잔이고 술이 담기면 술잔이다. 너무나 손쉽게 광장의 소통을 저버린 윤 당선자는 용산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윤 당선자는 “공간이 의식을 지배한다”고 했다. 큰일이다. 불통과 과속이라는 우리 시대의 치명적 한계가 새 대통령 집무실에 담길 것이며, 그 불통과 과속을 옹호하는 대통령의 인식은 더욱 강화될 테니.
[시사 칼럼] 9·11의 백악관, 윤석열의 청와대
정의길 기자
윤석열 당선자에게 청와대란 그저 대통령 책상이 있는 사무실이고, 자신이 쓸 개인 공간이다. 청와대는 없고, 윤 당선자의 집무실만 있을 것이다.
20일 오전 서울 용산역에서 시민들이 텔레비전으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집무실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관련 기자회견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밀어붙이는 대통령 집무실의 국방부 청사 이전에 대해 전직 국방장관과 합참의장들도 “정부와 군 지휘부를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목표가 된다”며 반대했다. ‘9·11 테러’가 겹쳐졌다.
알카에다의 2001년 9·11 동시 테러 때 공격받은 목표물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 펜타곤이었다. 실패한 목표물도 있었다. 백악관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이 납치한 4대의 비행기 중 1대는 워싱턴으로 날아오던 중에 펜실베이니아 섕크스빌에 추락했다. 기내의 승객들이 제압하려 하자, 테러리스트들이 여객기를 추락시켜 버렸다. 워싱턴에서 약 200㎞ 거리였다. 여객기를 가속하면 10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추락한 여객기의 테러리스트들은 백악관이나, 상황을 봐서 의사당을 공격하려고 했다. 여객기의 승객들이 저항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9·11 동시 테러에서 가장 비판받은 지점은, 쌍둥이빌딩이 공격받는 초유의 비상사태가 발생하고 거의 한시간이 지났는데도 미국 국방의 지휘부로 최고 보안 대상인 펜타곤이 테러리스트들이 납치한 민간 여객기의 공격에 허망하게 당했다는 것이다. 추락한 여객기가 계획대로 워싱턴으로 날아왔다면 백악관 역시 안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백악관과 펜타곤이 같은 공간이나 인접한 장소에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랬다면 그날 미국의 전쟁 지휘본부는 상당 기간 완전 먹통이 됐을 것이다. 국방부를 옆으로 밀어내고 대통령 집무실을 꽂아넣겠다는 발상을 놓고 9·11 테러의 교훈까지 끌어대는 것은 민망한 일이기는 하다.
물론 9·11 테러의 교훈은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된 민간 여객기로도 세계 최강국의 최고 안보시설물들이 공격당할 수 있다는 안보의 불가측성이며, 백악관 등 미국 지도부가 그 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였느냐는 것이다. 안보 위기를 안보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이데올로기가 결부된 대외정책의 관철 기회로 삼으려 했다는 것이다.
도널드 럼스펠드 당시 국방장관은 9·11 테러 당일 알카에다가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텅 빈 훈련장을 공습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며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도 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오콘의 핵심인 더글러스 파이스 국방차관은 9·11 테러 당일 유럽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던 기내에서 후세인을 타도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가, 동석한 존 애비제이드 대장한테서 “후세인은 아니다, 알카에다와 관련이 없다”는 반박을 받기도 했다. 9·11 테러 발발 뒤 일주일 동안 부시 행정부의 고위 외교안보회의, 이른바 ‘전쟁위원회’는 9·11 테러나 알카에다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이라크 응징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결국 아프간 침공을 우선시하기로 결론이 났으나, 이라크 전쟁은 9·11 테러 당일 결정된 것이나 진배없다.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키고 친미 자유주의 정권을 수립해서 중동을 바꾸겠다는 ‘중동 개조론’이 9·11 테러 대책의 결론으로 둔갑했다. 그 산물인 이라크 전쟁이 미국에 어떤 재앙을 불러왔는지는 거론할 필요도 없다.
부시 행정부는 9·11이라는 위기 앞에서 즉각 이라크를 조건반사처럼 끄집어냈다.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장악하고 있던 네오콘의 머리에 뿌리박힌 미국의 가치, ‘반미 국가’에 대한 혐오로 채워진 우파 이상주의가 그런 조건반사를 일으키게 했다.
부시 행정부는 9·11이라는 위기가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켰다는 이유라도 있었으나, 윤석열 당선자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위기를 자초하는 것은 도대체 그 이유를 알기 힘들다.
부시 행정부 네오콘들의 머리에 우파 이상주의가 박혀 있던 것과 비슷하게, 윤 당선자와 핵심 측근인 ‘윤핵관’들의 머리에는 용산으로 가야만 하는 풍수와 도참사상이 박혀 있다는 말인가?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이 9·11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는데, 윤핵관들은 청와대 이전으로 위기를 만들어서 기회로 삼으려는 것인가? 대선에서 승리한 당선자인데도 지지율이 부진하니, 이걸로 당선자의 밀어붙이기를 보여줘 정국을 장악하려는 의도인가?
윤 당선자는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며 더 이상 ‘청와대’는 없다고 말했다. 나에게는 이 말이 총각 자취방 이사하듯이 감행하는 그의 집무실 이전 구상보다도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졌다. 그에게 청와대란 그저 대통령 책상이 있는 사무실이고, 5년간 자신이 마음에 들어 써야 할 개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청와대는 없고, 윤석열의 집무실만 있을 것이다.
[유레카]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이 집무실 이전에 주는 교훈
박민희 | 논설위원
1864년 아들 고종이 즉위하면서 권력을 장악한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이듬해 경복궁 중건을 시작했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270년 넘게 서울 한복판에 폐허로 남아 있던 경복궁을 중건하는 일은 워낙 대규모의 사업이어서 이전까지 어떤 국왕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밖에서는 제국주의 세력들이 밀려오고 내부에서는 봉건 지배질서가 와해되고 민생이 피폐해진 위기 상황에서,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경복궁을 중건하는 것은 무모한 일이었다.
김종학 국립외교원 교수가 쓴 <흥선대원군 평전>을 보면, 대원군은 ‘실추된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나라의 기풍을 일신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경복궁 중건을 통해 공식 관직을 맡을 수 없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대원군이 경복궁 중건을 위해 세운 영건도감은 그가 국가 재정을 주무르고 인사에 간여하는 중요한 통로가 되었다. 중건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미신도 활용했다. 경복궁 안 석경루 아래서 구리그릇이 나왔는데 그 안에 조선 건국 초기 무학대사가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을 예언한 듯한 글귀가 나왔다. 대원군이 사람을 시켜 몰래 묻어놓은 것이었다. 1866년 공사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애써 모아 놓은 목재가 전부 불타버린 뒤에는 전국 각지의 좋은 나무나 바위, 양반 선산의 산림까지 무자비하게 벌채해 궁궐 건축에 동원했다.
공사를 위해 가혹한 징세를 했다. 7년간의 공사에 들어간 총비용은 783만냥이었는데, 그중 왕실의 내탕금과 종친의 기부금은 45만냥이었고, 나머지의 대부분인 727만냥은 민간에서 거둬들였다. 처음에는 부호들로부터 원납전( 願納錢)을 거뒀는데 제대로 걷히지 않자, 백성들에게 강제 징수를 했다. 백성들은 이를 ‘원망하면서 내는 세금’이라는 뜻으로 원납전( 怨納錢)이라고 불렀다. 서울 도성문 출입세를 비롯해 온갖 명목의 잡세도 더해졌다. 그래도 재정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대원군은 실질 가치가 명목 가치의 20분의 1인 당백전을 주조해 강제로 유통시켰고, 화폐 가치 하락으로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벌어졌다. 우여곡절 끝에 1868년 8월19일 경복궁이 중건되어 고종을 비롯한 왕실이 창덕궁에서 옮겨 왔으니, 오늘날의 개념으로는 집무실과 관저 이전이었다.
경복궁 중건으로 권력을 장악한 대원군은 국제 정세 변화를 외면한 채 쇄국정책을 강압적으로 추진했고, 권력에 방해가 되는 이들을 가차 없이 탄압하고 독재에 나섰다. 대원군과 며느리 명성왕후가 권력 투쟁을 벌이는 틈을 이용해 외세가 번갈아 조선에 개입했다. 김종학 교수는 조선 말 혼란의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이 대원군에 대해 “무너진 사회질서를 복구하고 생존의 최소한의 조건을 지켜줄 강력한 권력자의 도래를 바라는 절박한 염원“을 가졌으나, 결국 그것은 “우상을 향한 맹목적인 바람, 또는 대안이 부재한 상황에서의 불가피한 선택에 지나지 않았다”고 썼다.
150여년이 흐른 뒤, 국제질서는 또 다시 위태롭고 코로나19와 불평등으로 인한 민생의 고통도 엄혹하다. 여론의 우려를 무시하고 속전속결식으로 집무실 이전을 밀어붙이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제왕적 불통’은 정치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는 듯하다. ‘강력한 권력자가 지켜줄 것이라는 맹목적 바람’이 아닌, 민주적 제도, 정치권의 반성, 대안을 만들어 내려는 시민 각자의 노력이 퇴행이 아닌 희망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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