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계획 조감도로 설명 ... 군 “국민에게 벙커 위치 생중계“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20일 대통령 집무실을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여기는 지하에 벙커가 있고”라고 설명하고 있다. 방송 중계화면 갈무리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20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집무실을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국방부와 합참 지하벙커 위치를 손으로 짚은 것과 관련해 “공공연히 보안 사항이 노출되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김병주 의원은 21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그런 것(지하벙커)도 사실 보안이다. 지하 통로가 있다 등등 그런 것을…(공개해서는 안 된다)”며 ”안타깝고 우려하는 사항”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당선자는 지난 20일 기자회견에서 국방부 청사로 이전할 대통령 집무실 조감도를 손으로 짚으며 “지금 여기는 지하에 벙커가 있고”, “이게 다 지하로 연결되어 있어…”라고 설명했다. 이 장면을 지켜본 군 관계자는 “지하벙커 위치를 전국민에게 생중계하느냐”며 당혹해했다.

 

통합방위법상 국방부는 지하벙커뿐만 아니라 전체가 국가중요시설 ‘가’급이다. 가급은 점령이나 파괴되어 기능이 마비될 경우 국민생활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시설로, 청와대와 국가정보원 청사, 한국은행 본점 등이 있다. 국방부 부지 내에서는 사진·동영상 촬영, 녹음, 전자기기 사용이 금지된다. 또 보안을 이유로 국방부 내 건물 배치는 네이버나 다음 같은 포털 지도 서비스에 표시되지 않는다. 국방부·합참은 출입 절차가 까다로운데, 이 중에서도 지하벙커는 통제시설로 엄격히 관리돼 국방부·합참 청사 출입증이 있어도 다시 별도 인가를 받은 소수 인원만 들어갈 수 있다. 군에선 수도방위사령부와 합참의 지하벙커를 각각 ‘B1 문서고’ ‘B2 문서고’란 위장 명칭으로 부른다.

 

김은혜 당선자 대변인은 이날 “(윤 당선자가) 기자회견에서 (대통령 집무실 이전) 전체 조망도에서 광활한 잔디밭을 하나 짚은 게 보안시설의 노출이라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합참의) B2벙커는 이미 많은 분들에게 공개가 된 바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군 통수권자가 그렇게 소홀하게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김 대변인 설명대로 국내에 6개가량 지하벙커가 있는데, 역대 한국 대통령이나 미국 고위인사가 이곳을 방문하면서 지하벙커들의 존재 자체는 외부에 알려진 바 있다. 하지만 ‘지하방커가 어디에 있다’는 구체적인 위치가 공개적으로 거론된 바는 없다. 유사시 적대세력의 미사일, 특수부대 공격 목표로 특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권혁철 기자

 

[시사 칼럼] 9·11의 백악관, 윤석열의 청와대

 

정의길 기자

 

윤석열 당선자에게 청와대란 그저 대통령 책상이 있는 사무실이고, 자신이 쓸 개인 공간이다. 청와대는 없고, 윤 당선자의 집무실만 있을 것이다.

 

20일 오전 서울 용산역에서 시민들이 텔레비전으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의 ‘집무실 용산 국방부 청사 이전’ 관련 기자회견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밀어붙이는 대통령 집무실의 국방부 청사 이전에 대해 전직 국방장관과 합참의장들도 “정부와 군 지휘부를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목표가 된다”며 반대했다. ‘9·11 테러’가 겹쳐졌다.

 

알카에다의 2001년 9·11 동시 테러 때 공격받은 목표물은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과 워싱턴의 국방부 청사 펜타곤이었다. 실패한 목표물도 있었다. 백악관이었다. 테러리스트들이 납치한 4대의 비행기 중 1대는 워싱턴으로 날아오던 중에 펜실베이니아 섕크스빌에 추락했다. 기내의 승객들이 제압하려 하자, 테러리스트들이 여객기를 추락시켜 버렸다. 워싱턴에서 약 200㎞ 거리였다. 여객기를 가속하면 10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추락한 여객기의 테러리스트들은 백악관이나, 상황을 봐서 의사당을 공격하려고 했다. 여객기의 승객들이 저항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9·11 동시 테러에서 가장 비판받은 지점은, 쌍둥이빌딩이 공격받는 초유의 비상사태가 발생하고 거의 한시간이 지났는데도 미국 국방의 지휘부로 최고 보안 대상인 펜타곤이 테러리스트들이 납치한 민간 여객기의 공격에 허망하게 당했다는 것이다. 추락한 여객기가 계획대로 워싱턴으로 날아왔다면 백악관 역시 안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백악관과 펜타곤이 같은 공간이나 인접한 장소에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랬다면 그날 미국의 전쟁 지휘본부는 상당 기간 완전 먹통이 됐을 것이다. 국방부를 옆으로 밀어내고 대통령 집무실을 꽂아넣겠다는 발상을 놓고 9·11 테러의 교훈까지 끌어대는 것은 민망한 일이기는 하다.

 

물론 9·11 테러의 교훈은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된 민간 여객기로도 세계 최강국의 최고 안보시설물들이 공격당할 수 있다는 안보의 불가측성이며, 백악관 등 미국 지도부가 그 위기를 어떻게 받아들였느냐는 것이다. 안보 위기를 안보 차원에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이데올로기가 결부된 대외정책의 관철 기회로 삼으려 했다는 것이다.

 

도널드 럼스펠드 당시 국방장관은 9·11 테러 당일 알카에다가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텅 빈 훈련장을 공습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며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도 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네오콘의 핵심인 더글러스 파이스 국방차관은 9·11 테러 당일 유럽에서 미국으로 돌아오던 기내에서 후세인을 타도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가, 동석한 존 애비제이드 대장한테서 “후세인은 아니다, 알카에다와 관련이 없다”는 반박을 받기도 했다. 9·11 테러 발발 뒤 일주일 동안 부시 행정부의 고위 외교안보회의, 이른바 ‘전쟁위원회’는 9·11 테러나 알카에다와는 아무 상관 없는 이라크 응징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결국 아프간 침공을 우선시하기로 결론이 났으나, 이라크 전쟁은 9·11 테러 당일 결정된 것이나 진배없다.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키고 친미 자유주의 정권을 수립해서 중동을 바꾸겠다는 ‘중동 개조론’이 9·11 테러 대책의 결론으로 둔갑했다. 그 산물인 이라크 전쟁이 미국에 어떤 재앙을 불러왔는지는 거론할 필요도 없다.

 

부시 행정부는 9·11이라는 위기 앞에서 즉각 이라크를 조건반사처럼 끄집어냈다.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장악하고 있던 네오콘의 머리에 뿌리박힌 미국의 가치, ‘반미 국가’에 대한 혐오로 채워진 우파 이상주의가 그런 조건반사를 일으키게 했다.

 

부시 행정부는 9·11이라는 위기가 그들의 이성을 마비시켰다는 이유라도 있었으나, 윤석열 당선자가 대통령 집무실 이전으로 위기를 자초하는 것은 도대체 그 이유를 알기 힘들다.

 

부시 행정부 네오콘들의 머리에 우파 이상주의가 박혀 있던 것과 비슷하게, 윤 당선자와 핵심 측근인 ‘윤핵관’들의 머리에는 용산으로 가야만 하는 풍수와 도참사상이 박혀 있다는 말인가?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들이 9·11이라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는데, 윤핵관들은 청와대 이전으로 위기를 만들어서 기회로 삼으려는 것인가? 대선에서 승리한 당선자인데도 지지율이 부진하니, 이걸로 당선자의 밀어붙이기를 보여줘 정국을 장악하려는 의도인가?

 

윤 당선자는 집무실을 용산 국방부 청사로 옮기겠다며 더 이상 ‘청와대’는 없다고 말했다. 나에게는 이 말이 총각 자취방 이사하듯이 감행하는 그의 집무실 이전 구상보다도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졌다. 그에게 청와대란 그저 대통령 책상이 있는 사무실이고, 5년간 자신이 마음에 들어 써야 할 개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청와대는 없고, 윤석열의 집무실만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