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 키우는 우크라 신나치집단

 

백인 우월주의자들 온라인서 극성

극단적 국가주의 성향 드러내며

우크라 참전 희망자 대대적 모집

 

우크라이나 ‘아조우 대대’가 운영하는 군사학교 교육생들. ‘아조우 대대’ 누리집 갈무리

 

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구 언론이 다루기 껄끄러워진 주제가 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극우·신나치 무장세력의 움직임이다. 미국과 유럽 등의 극우 분자들이 우크라이나군에 합류해 러시아군과 전투를 벌인 뒤, 여기서 쌓은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자국 내에서 폭력 활동을 강화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전세계 극단주의 세력 분석 기관인 ‘사이트 인텔리전스 그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백인 우월주의자와 신나치 추종자들의 온라인 활동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고 있다. 이 기관의 상임이사이자 테러분석가인 리타 카츠는 최근 미국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글에서 극우 집단이 주로 사용하는 온라인 사이트에서는 러시아에 맞서 싸우기 위해 우크라이나로 들어가는 방안 등 참전 논의가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카츠 분석가는 최근 전투 참여 의사를 밝힌 외국인 가운데 노골적인 신나치 집단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의 신나치 민병대 구성을 논의하는 소셜미디어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활동하던 이들 중 한 명이 ‘MD’라는 아이디를 이용해 우크라이나 참전 희망자를 모집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신나치 대화방 여러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영국의 자칭 ‘전직 군인’도 지난달 말 “앞으로 1~2주 안에 (우크라이나를 향해) 영국에서 출발할 것”이라며 함께 참전할 사람들을 모집했다. ‘D’라는 아이디를 쓴 이 인물은 우크라이나에 입국하면 유대인들을 죽일 것이라며 ‘하일 히틀러’(나치식 경례)를 외치는 등 노골적인 나치 성향을 드러냈다.

 

미국·영국 외에도 독일·프랑스·스페인·네덜란드·스웨덴·폴란드 등 유럽 여러 나라의 극우 성향 인물들이 우크라이나 참전 의사를 밝힌 것으로 사이트 인텔리전스 그룹은 파악하고 있다. 카츠 분석가는 “2014년 이슬람 테러 집단 ‘이슬람국가’(IS)가 전세계에서 동조자들을 모집한 이후 이렇게까지 광범하게 전사 모집 활동이 전개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들의 목표는 유대인 대통령이 이끄는 다민족 국가인 우크라이나 방어가 아니다. 일부는 이번 전쟁을 자신들의 폭력적인 공상을 현실화할 기회로 보고, 다른 일부는 우크라이나에서 극단적인 국가주의 성향의 (백인) 단일민족국가 구상을 현실화하고 이를 전세계에 수출할 꿈을 꾸고 있다”고 진단했다.

 

구심엔 신나치 조직 ‘아조우 대대’

고문·약탈 저질러 한때 제재 불구

정부 공식조직으로 군사경찰 활동

정당·무장 민병대까지 갖추며 득세

 

우크라이나로 극우세력을 끌어들이는 구심점은 신나치에 뿌리를 둔 이 나라의 무장조직 ‘아조우 대대’다. 이들의 활동 근거지에 면해 있는 아조우(아조프)해에서 따온 이름으로 추정된다. 이 조직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지난달 25일부터 공개적으로 외국인 전사를 모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이달 초 참전을 희망한 외국인이 1만6000명에 달했다고 발표했다. 이 중 몇명이 아조우 대대에 합류했는지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 조직이 보통의 극우 무장세력과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정부의 공식 조직이라는 점이다. 아조우 대대는 현재 우크라이나 내무부 산하의 ‘아조우 특수작전 파견대’라는 명칭으로 군사경찰 활동을 하고 있다. 평소에는 지역 치안을 담당하고 전시에는 전투에 직접 참가하는 국가방위군의 일부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의 목표 중 하나로 ‘탈나치화’를 내세운 것도 구체적으로는 이 조직을 겨냥한 것이다. 신나치 성향의 무장조직이 정식 정부 조직으로 치안·군사 작전에 참여하면서 돈바스 등 분쟁지역에서 러시아계 주민들을 탄압해왔다는 게 러시아의 주장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 국제안보협력센터(CISAC)의 아조우 대대 분석 보고서를 보면, 우크라이나에서 극우 무장세력이 정부의 정식 조직으로 편입된 계기는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강제병합으로 촉발된 내전이었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직후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친러시아 분리독립 무장세력이 등장하자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자국민에게 민병대 구성을 촉구했다. 이에 호응해 안드리 빌레츠키 등 극우·신나치 세력 50여명은 즉각 아조우 대대를 구성했다.

 

4월부터 전투에 직접 참여한 아조우 대대는 6월 반군 세력으로부터 남동부 주요 항구도시 마리우폴을 탈환하는 데 공을 세우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마리우폴 탈환을 위한 전투에 참여한 의용군 400여명 가운데 절반 정도가 아조우 대대 소속이었다. 우크라이나군과 반군이 휴전에 합의한 9월까지 아조우 대대 조직원은 500명 수준으로 빠르게 늘었다. 휴전 합의 뒤에도 돈바스 지역에서 분쟁이 그치지 않은 가운데 아조우 대대는 11월 우크라이나 국가방위군 소속의 정식 조직으로 편성됐다. 이듬해에는 조직원이 1000명 수준까지 늘어나면서 국가방위군 내의 주요 조직으로 자리잡았다.

국제안보협력센터 보고서는 “아조우 대대 지도자들은 공개적으로 신나치 성향을 부인하거나 일부 구성원의 문제로 치부해왔지만, 이 조직 설립자인 빌레츠키는 2010년 유대인들이 이끄는 ‘인간 이하 세력’(나치 용어)에 맞서 세계 백인종의 마지막 십자군 전쟁을 주도하는 것이 우크라이나 국가의 임무라고 발언한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빌레츠키는 2014년 10월 정치를 위해 조직을 떠났고, 그해 11월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의원에 당선돼 2019년까지 의원직을 유지했다.

 

아조우 대대는 이후 돈바스 지역 내 분쟁에 계속 개입했다. 미국 정부는 이 조직의 극우 성향을 문제 삼아 2015년 금융과 물자 지원 금지 등의 제재를 단행했다가 이듬해 해제했다. 유엔인권사무소는 2016년 보고서에서 아조우 대대가 돈바스 지역에서 고문이나 민간인 약탈 등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외국 극우세력에도 영향력 키울 듯

세계 분쟁지역서 불안 부추길 위험

“시리아처럼 알카에다·IS 온상될 수도”

 

국제적인 비판 속에서도 아조우 대대의 활동은 더욱 확대됐다. 2016년에는 빌레츠키 주도로 ‘국민군단’이라는 정당이 창당됐고 이듬해에는 ‘국민민병대’라는 별도의 무장조직이 구성됐다. ‘아조우 운동’으로 통칭되는 군사경찰·정당·민병대의 3각 구도가 갖춰진 것이다. 아조우 세력은 유럽과 미국 등의 극우세력과 유대를 강화하는 국제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조직 구성원도 2019년에는 아조우 대대와 국민민병대가 각각 1500여명과 1000명 수준까지 늘었으며, 국민군단 당원은 2만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병대 조직은 2019년 대통령선거에서 공식 선거감시단체로 활동하기도 했다. 활동 지역도 초기에는 마리우폴에 국한됐으나, 지난달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수도 키이우, 제2도시 하르키우 등의 전투에 참여하고 있다. 아조우 대대는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한 올해 초 민간인을 대상으로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일반인 대상 활동도 적극 전개했다.

 

러시아의 이번 침공은 아조우 운동 세력이 국내외에서 영향력을 더욱 확대하는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제안보협력센터 보고서는 “아조우 세력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향후 우크라이나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로 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정치 영향력 확대를 꾀하더라도 대규모 대중정당을 추구하기보다 대중을 급진화하고 극우 이념 확산에 집중하는 전략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전문가들은 아조우 세력이 우크라이나 국내 정치에 끼치는 영향보다 더 파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부분은 외국 극우세력들에 대한 영향력 확대라고 지적한다. 이 조직은 그동안 소셜미디어를 통한 선전선동 활동을 주 무기로 국제 극우세력의 중심으로 자리잡았고, 외국 무장세력에 대한 군사훈련 등에도 적극적이다. 전직 미 연방수사국(FBI) 요원 알리 수판이 이끄는 테러연구집단 수판센터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우크라이나 분쟁에 개입한 외국 전사는 50개국에서 1만7000명에 이른다. 이 때문에 미국 의원 40명은 2019년 “이 조직이 몇년 동안 미국 시민들을 모집해 훈련시키고 과격화를 부추겼다”며 국무부에 이 조직을 테러 집단으로 지정할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외국 극우세력의 규모는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렵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들은 세계 곳곳의 분쟁지역에서 불안을 부추기는 세력이 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한다. 사이트 인텔리전스 그룹의 리타 카츠는 “우크라이나 상황은 2010년대 초중반 시리아 상황을 연상시킨다. 당시 시리아는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 같은 과격 세력을 키운 온상이 됐다. 극우 집단의 부상을 재촉할 환경이 우크라이나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신기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