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훈, '서해 피살 사건' 文 청와대 첫 구속 사례
"증거인멸 염려" 등 판사 영장 발부 기준에 논란

해외 머물다 자진 귀국…검찰 소환 순순히 응해
방어권 차원 기자회견이 관계자들과 말 맞추기?

"모든 자료가 윤석열 정부에 남아있는데 황당"
앞서 서욱‧김홍희 "증거인멸 우려 없다" 석방돼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2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해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3일 구속됐다. 설마했던 문재인 정부 출신 인사들과 민주당 측은 강력 반발했다. 일부 영장전담 판사의 구속영장 발부 기준을 둘러싼 의구심과 문제 제기도 커지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김정민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새벽 5시쯤 "범죄의 중대성과 피의자의 지위, 관련자들과의 관계에 비추어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고위 인사가 구속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서 전 실장은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가 북한군에 사살된 이튿날인 2020년 9월 23일 오전 1시쯤 열린 관계 장관회의에서 피살 사실을 은폐하기로 하고 관계부처에 관련 첩보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를 받는다. 이후 이 씨가 '자진 월북'한 것으로 간주해 국방부·국가정보원·해양경찰청 등 관계기관의 보고서나 보도자료에 허위 내용을 쓰게 한 혐의(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도 있다.

 

김정민 부장판사는 특히 서 전 실장이 지난 10월 27일 국회에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문재인 정부 안보라인 수뇌부와 함께 가진 기자회견 등을 들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검찰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검찰의 칼끝은 문재인 정부 다른 고위 인사를 향하게 됐으며 최종적으로 문 전 대통령을 직접 겨누는 것은 시간 문제가 될 전망이다. 서 전 실장이 안보 관련 핵심 현안을 보고한 대상은 문 전 대통령이고, 문 전 대통령이 군 통수권자이자 대북 정책의 최종 결정권자이기 때문이다.

 

앞서 문 전 대통령은 1일 이번 사건 수사와 관련해 처음으로 공식 입장문을 내고 자신이 '최종 승인'을 했음을 분명히 하면서 '부디 도를 넘지 않기를 바란다"고 경고한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서해 사건은 당시 대통령이 국방부, 해경, 국정원 등의 보고를 직접 듣고 그 보고를 최종 승인한 것"이라며 "당시 안보 부처들은 사실을 명확하게 규명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획득 가능한 모든 정보와 정황을 분석하여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사실을 추정했고, 대통령은 이른바 특수정보까지 직접 살펴본 후 그 판단을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서 전 실장 측도 당시 국가안보실이 사건을 은폐하려고 시도했다는 검찰 주장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조목조목 반박해왔다.

2020년 9월 23일 새벽 1시 회의에서 관련 첩보를 국방부·국가정보원·안보실·통일부 등 여러 부처가 공유하고 있었고, 실무자들을 포함하면 200∼300명이 넘는 인원이 알고 있었기에 사건 은폐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첩보의 출처 보호와 신뢰성 확인을 위해 공식 발표 때까지 보안 유지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월북을 단정하고 이에 배치되는 정보를 삭제했다'는 검찰 주장에 대해서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다. 검찰이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를 적용한 데 대해서는 "그런 논리라면 무죄가 난 사건의 공소장이나 관련 보도 자료는 모두 허위 공문서 작성이 문제 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민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의 중대성'에서 검찰 손을 들어줬다. 나아가 '증거인멸 염려'를 이유로 구속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야권 측은 물론 법조계에서도 의외라는 반응이 상당하다.

서 전 실장이 지난 10월 27일 국회에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과 함께 반박 기자회견을 가진 것은 강제수사권을 가진 검찰에 대응해 방어권 차원에서 흔히 이뤄지는 공개적인 입장 표명에 해당하는데, 이를 증거인멸 근거로 판단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1부(부장 이희동)는 지난달 29일 법원에 청구한 구속영장에서 서 전 실장이 참석했던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및 흉악범죄자 추방 사건 관련 기자회견'에 대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구속 사유로 삼았다. 대외적으로 사건 관계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해 '암묵적 말 맞추기'를 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억지스럽고 궁색한 논리라는 견해가 많다.

 

더군다나 서 전 실장은 현직을 떠난 지 오래됐고, 외국에 머물다 검찰 조사를 앞두고 굳이 자진해서 귀국까지 했다. 주거지 또한 명확하고 검찰 소환에도 순순히 응해 지난 24~25일 이틀 동안 조사를 받은 바 있다. 감사원의 대대적 감사와 검찰의 압수수색 등으로 디지털 증거를 비롯한 증거 자료 역시 충분히 확보돼 있어 민간인 신분인 서 전 실장이 증거인멸에 나설 여지가 거의 없다.

 

삭제했다는 관련 첩보들은 원본이 첩보 생산부대에 그대로 남아 있다는 사실도 다름 아닌 현 윤석열 정부에 의해 확인됐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 10월 25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군사통합정보처리체계(밈스·MIMS)에서 삭제를 지시했다는 자료의 존재 여부를 두고 "생산부대에서 가지고 있는 것을 지금도 열람할 수 있다"며 "원본은 갖고 있다"고 답변했다. 서 전 실장 측은 "민감정보가 불필요한 단위까지 전파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배포선 조정을 삭제로 규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실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검찰이 '첩보 삭제'라고 말하는 것은 보안유지를 위한 '배포선 조정'이었다는 얘기다.

 

민주당과 친문 진영도 이런 문제들을 들어 구속영장 발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에서 "서 실장이 증거인멸 우려로 구속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모든 자료가 윤석열 정부의 손에 있는데 증거인멸이라니 황당하다"고 직격했다. 임 대변인은 "검찰이 삭제했다고 주장하는 자료 역시 버젓이 남아있다"면서 "자신의 무고함을 항변하기 위한 공개 기자회견이 증거인멸이라면 방어권을 부정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너무도 뜻밖"이라며 "민주주의의 보루라 부르는 사법제도도 사람이 운용하는 것이고 그 보루에는 구멍이 숭숭 나 있다"고 표현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윤건영 의원은 "이미 퇴임했고 검찰 수사를 받기 위해 미국에서 제 발로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이라며 "무슨 증거를 인멸한다는 말인가"라고 개탄했다. 그는 "정말이지, 가슴을 치고 통탄할 일"이라고 했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을 지낸 4성 장군 출신 김병주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서 전 실장의 구속 결정은 너무나 부당하고 증거인멸 가능성도 어불성설"이라며 "창피 주기와 죄인 낙인찍기"라고 규정했다.

앞서 서욱 전 국방부 장관과 김홍희 전 해양경찰청장도 같은 사건으로 김상우 영장전담 부장판사에 의해 구속영장이 발부됐다가 구속적부심으로 모두 석방된 바 있다. 같은 법원의 다른 재판부가 "증거 인멸 염려가 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없고, 사건 관계자들에 위해를 가할 우려도 없다"는 정반대 판단으로 석방 결정을 내린 것이다.

 

검찰의 전방위적인 야권 및 전(前) 정부 표적수사·꿰맞추기식 수사에 일부 판사들이 영장 발부 남용으로 결과적으로 영합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반면 국민의힘은 공세를 강화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서 전 실장에 대해 "김정은 정권 눈치 보기에 급급해 월북으로 단정 지으며 명예살인까지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문 전 대통령을 향해서는 "서 전 실장 구속에 앞서 문 전 대통령은 '안보 정쟁화, 분별없는 처사'라고 비판했다"며 "잊혀진 삶을 살겠다더니, 도둑이 제 발 저린 듯 좌불안석인 모양"이라고 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이제 진실의 선 너머에는 단 한 사람, 문 전 대통령만 남게 됐다"고 날을 세웠다.

                                                                               < 시민언론 민들레 전재- 김호경 에디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