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핵심 참모를 비롯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기관을 동원한 중범죄로 단죄된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 등 수십명을 무더기 구제한, 철저한 ‘우리편 사면·복권’이라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례 없는 특별사면이다. ‘국민 대통합’이 아닌 ‘야권 들러리 통합’이라는 비판으로는 이번 윤석열 대통령의 특사 대상과 성격을 설명하는데 부족하다는 평가가 정치권과 법조계에서 나온다.

자신의 핵심 참모를 비롯해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기관을 동원한 중범죄로 단죄된 고위 공직자와 정치인 등 수십명을 무더기 구제한, 철저한 ‘우리편 사면·복권’이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27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사면·복권하는 등 정치인과 공직자 75명을 28일자로 사면·감형·복권했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등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여권 인사다. 특사 대상자는 이들을 비롯해 선거사범 1274명, 임신부 등 특별배려 수형자 8명 등 모두 1373명이다. 이 전 대통령은 2020년 10월 대법원에서 뇌물수수 및 횡령 등 개인비리로 징역 17년이 확정됐다. 이번 사면으로 잔여 형기 14년6개월뿐만 아니라 미납 벌금 82억원도 면제됐다. 이날 낮 신년 특사·복권 대상자를 발표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폭넓은 국민통합 관점에서 고령 및 수형생활로 건강이 악화된 이 전 대통령을 사면·복권한다”고 밝혔다.

친이명박계를 중용하는 윤 대통령은 이명박 정부 때 정보·군 조직이 동원된 여론조작 범죄 관련자들을 대거 사면·복권했다. 지난해 징역 14년2개월이 확정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감형)을 비롯해 배득식 전 기무사령관, 옥도경·연제욱 전 사이버사령관 등이다. 특히 이명박 청와대 재직 시절 비밀문건을 유출해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 등으로 지난 10월 말 유죄가 확정된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1차장은 두 달 만에 사면됐다. 대통령이 매일 얼굴을 맞대는 핵심 참모를 자기 손으로 사면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등에 연루된 친박근혜계 인사들도 무더기 사면·복권됐다. 화이트리스트 사건(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윤선·박준우 전 정무수석 등), 국정원 특활비 상납 사건(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 등) 등으로 유죄가 확정된 이들이다. 박근혜씨 측근 3인방인 안봉근·이재만·정호성 전 비서관은 복권됐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국무회의에서 최종 확정된 신년 특사 대상자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 출신도 다수 포함됐다.

이명박 정부 때 민간인 사찰 폭로를 막기 위해 국정원 특활비를 가져다 쓴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 박근혜 정부 때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 사건 수사를 방해한 장호중 전 부산지검장, 블랙리스트 사건에 관여한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 등이다. 최 전 차장은 대법원 유죄 확정 11일 만에 사면과 동시에 복권됐다. 한동훈 장관은 “이들 주요 공직자들이 국정수행 과정에서 잘못된 관행에 따라 불법행위를 저질렀지만 다시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며 사면·복권 이유를 밝혔다.

상당수가 윤 대통령과 한 장관이 검찰 재직 시절 ‘중범죄로 엄벌해야 한다’고 판단했던 사안인데, 이제 와서 “잘못된 관행” “경직된 공직문화” 탓으로 돌린 것이다.

야권 인사로는 김경수 전 지사가 사면됐지만 복권되지 않았다. 김 전 지사는 2017년 대선 당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지난해 징역 2년이 확정됐다. 출소가 다음해 5월이라 ‘들러리 사면’에 끼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윤 대통령은 그대로 사면권을 행사했다. 전병헌 전 청와대 정무수석(뇌물죄 등)은 사면·복권, 신계륜 전 민주당 의원(입법로비)은 복권됐다. < 전광준 손현수 기자 >

‘윤 핵심 참모’ 김태효 끼워넣기 사면…‘범법자’ 꼬리표 떼어줘

‘딸 채용비리’ 김성태 복권도

김태효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지난 9월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청사 브리핑룸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영국·미국·캐나다 순방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새해 특별사면을 단행하면서 자신의 안보 분야 핵심 참모인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형 선고 실효를 결정했다. 윤석열 캠프의 직능총괄본부장으로 이름을 올렸던 김성태 전 의원의 뇌물죄도 사면되면서 대통령 사면권이 ‘내 편 챙기기’로 남용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차장은 2012년 이명박 정부 대외전략기획관에서 물러나면서 군사기밀을 담고 있는 국가정보원·국군기무사령부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혐의로 기소돼 지난 10월 대법원에서 유죄(벌금 300만원 선고유예)가 확정됐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범법자가 안보실의 실세로 앉아 있다”며 김 차장 교체를 요구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야당의 경질 요구에 눈감았고 이번엔 특별사면 과정에서 김 차장의 전과 사실을 말소시키는 ‘형의 실효’를 끼워 넣었다. 이번 조처로 김 차장은 ‘범법자 안보실세’라는 꼬리표를 공식적으로 떼어냈다. 한 법조인은 “선고 유예가 된 사람을 대통령 곁에 두고 있느냐는 비판도 있었으니 정무적인 차원에서 (김 차장이 공직자의) 자격을 갖추게 한 것”이라고 짚었다.

김성태 전 의원은 2012년 10월 국정감사 기간에 이석채 당시 케이티(KT) 회장 증인 채택을 무마하고 그 대가로 자신의 딸을 케이티에 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한 혐의(뇌물)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 2월 유죄가 확정(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됐다. 앞서 김 전 의원은 대법원 확정 판결 전인 지난해 11월 윤석열 대선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의 직능총괄본부장으로 선임됐지만 부적격 인사라는 비판이 일자 자진사퇴했다. 이날 복권까지 결정되면서 김 전 의원은 2024년 총선 출마가 가능해졌다.

참여연대는 이날 성명을 내어 “이번 사면은 국민이 대통령에게 위임한 사면권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악용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배지현 기자>

‘문화계 블랙리스트’ 최윤수, 형 확정 11일 만에 특별사면

 

 

 
최윤수 전 국정원 2차장. 연합뉴스
 

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관여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최윤수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이 유죄를 확정받았지만, 27일 신년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되면서 11일 만에 형의 효력이 사라졌다.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지난 16일 국가정보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최 전 차장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최 전 차장은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인 성향으로 분류되던 문화예술인들을 지원 대상에서 배제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에 연루돼 재판에 넘겨졌다. 최 전 차장은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이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과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문건을 작성하고, 이를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에게 보고하도록 승인한 혐의를 받는다. 1·2심 재판부는 블랙리스트 작성 관여 혐의만 유죄로 판단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문화예술위원회 지원 심의에 부당개입한 혐의와 우 전 수석과 공모해 이 전 감찰관 등을 불법사찰한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같은 판단이 옳다고 보고 검찰과 최 전 차장 쪽의 상고를 모두 기각해 원심을 확정했다. 하지만 정부가 이날 신년 특별사면을 발표하며 최 전 차장을 형 선고 실효와 복권 대상자에 포함하면서, 대법원 판결은 28일 0시를 기해 효력을 잃게 됐다. 검찰 출신인 최 전 차장은 검찰 내 ‘우병우 사단’으로 꼽혔던 인물이다. 이날 함께 특별사면 대상에 오른 우 전 수석과는 서울대 법대 동기이자 절친한 사이로 알려져 있다.                                                                                             < 최민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