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피투성이일 때를 기억하십시오"

● 칼럼 2023. 7. 7. 06:04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목회 칼럼] 피투성이일 때를 기억하십시오

 

생명나무교회   전상규 목사

 많은 사람들이 팬데믹 이후로 더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 금리인상, 인플레이션이라는 용어는 식상하기까지 합니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 상황들을 이겨보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아갑니다. 하루 종일 일을 한 후 다시 지친 어깨와 굳은 얼굴로 또 다른 일을 찾아갑니다. 말도 안되는 이런 상황들이 언젠가 나아지기를 바라며 치솟은 모기지와 렌트비를 당장은 온 몸으로 막아 보기 위함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감사는 찾을 수 없고 몇몇 사람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집니다. 상대적 박탈감이 사람들의 마음에 감사를 다 말려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들은 잠시 이 질문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단지 우리의 감사는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과 환경에서 비롯되는 것입니까?

 성경의 에스겔서 16장에는 버려진 여자 아기가 나옵니다. 이 여자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피투성이인 채로 들에 버려집니다. 살아보려고 목청을 다해서 울어보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곧 기진해서 숨소리가 가늘어질 것입니다. 저만치서 짐승들이 아기의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때 한 왕이 지나가다 죽어가는 여자 아기를 발견합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두 손으로 아이를 안고 간절히 이야기합니다. “피투성이라도 살아만 있으라. 피투성이라도 살아만 있으라.” 그 이후 이 아이는 왕에 의해서 양육되고 결국은 왕후의 자리까지 오르게 됩니다. 이 아이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아무 것도 없는 삶에서 최고의 부와 명예를 누리는 삶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왕후의 자리에 오른 여자는 곧 왕을 배신합니다. 왕과의 관계에서 낳은 자녀를 이방신에게 제물로 바치고, 온갖 자신이 원하는 남자들과 불륜을 저지르며 왕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깁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이 여인의 마음을 상상해 봅니다.

“나는 왕후야. 나는 더 많은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어. 나는 더 많은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어.”

 왕은 그런 왕후의 처신을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피투성이 일 때를 기억하라” (겔16:22, 피투성이가 되어서 발짓하던 것을 기억하지 않고)

죽어가던 네가 살려졌던 그때,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알몸이었던 그때를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돌아보라고 말합니다.

 크리스천들에게 피투성이일 때는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쏟아 부어주신 때입니다. 우리가 죽은 것이나 다름 없던 상황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은 때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로 삼아주신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감사는 상황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뿌리 내려져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들이 잠시 우리를 힘들게, 지치게, 그리고 쓰러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우리가 왕을 배신했든 하지 않았든) 만약 우리가 “피투성이”였던 때(아직 구원 받지 못한 때)를 기억한다면, 그리고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상대적 박탈감이 아닌 다시 절대적 충만함으로 감사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을 이길 수 있는 더 큰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