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
‘은의 길’을 완주하고.
임순숙 수필가
최근 세번 째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발병하기 이전 계획했던 여행을 실행하는데 꼬박 3년이 걸렸다. 그 자유롭지 못했던 기간 동안 산티아고라는 해방구는 상상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지만 때론 쉬이 나설 수 없는 상실감에 우울해지기도 했다. 이미 두 번의 완주 경험을 했음에도 마음 한쪽은 늘 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으니 무슨 영문인지 모를 일이다. 다행히 마음의 병이 깊어지기 전에 하늘길이 열려, 삼월하순 ‘은의 길’ 출발지인 스페인 남부 세비야로 향했다. 이번 여정에선 그 풀리지 않는 숙제를 안고 스스로 자문자답하며 지루한 길을 줄여나갔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여러 순례길 중 ‘은의 길(Via de la Plata )’은 스페인 남부도시 세비야에서 북쪽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1000km를 약간 웃도는 거리이다. 옛 로마시대의 군사들이 전쟁물자 수송을 위해 사용된 도로가 현재의 순례길로 전환되었으며 곳곳에 그 시대의 유적들이 산재하여 감상하며 걷는 재미도 특별했다. 스페인에서도 가장 스페인다운 곳으로 호평받는 ‘은의 길’은 아마도 로마시대의 유적들이 주민들의 일상에 그대로 흡수되어 어우러진 옛스러움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은의 길’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외로움의 길’이다. 산티아고로 향하는 수많은 길 중 ‘은의 길’을 택한 사람은 전체의 5 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오후까지 하루종일 걸어도 고작 5~6 명의 사람들과 스칠 정도였다. 순례길은 곧 고행의 길이라 외로움도 감수해야겠지만 때론 힘들기도 했다. 그 순간마다 내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짝꿍이 더 없이 고마웠고, 초반전 함께 했던 일행들의 안위가 몹시 궁금해지기도 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어쩌다 그들 중 몇몇이 같은 숙소에라도 묵게되면 그날은 모두 어린아이가 되어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한동안 풀어내지 못한 갖가지 사연들을 토해내며 전의를 다지는 시간, 내일을 위한 활력을 비축하는 시간이었다. 돌이켜보면 우연히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일 뿐인데 서로의 감정을 그토록 잘 공유하며 다독일 수 있었는지, 아마도 외로움에서 온 산물이 아니었을까 쉽다.
꼬박 40여일 걷는 동안 우리부부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의기투합했던 사람들은 불과 7~8명에 불과하다. 그들은 모두 엄청난 산티아고 애호가, 혹은 하이킹 마니아 들이었다.
앞으로의 여정에 행운이 함께하기를 기원한다며 네잎 클로버를 나에게 쥐어준 아이슬란드 여인, 무려 11번 째 순례길 방문이라는 그녀는 언제 어디에서나 늘 호쾌한 언변과 웃음으로 좌중을 압도했다. 그리고 오래 전 부인과 이혼한 후, 여건이 될 때마다 ‘은의 길’만 고집한다는 프랑스에서 온 얀, 최근 부인과 사별한 후 3개월째 세계 여행 중이라는 오스트리아 출신 Dussy, 그외 정말 하이킹을 좋아해서 오게 됐다는 미국, 독일계의 두 커플들과 긴 시간 함께 하면서 내린 답은,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는 온 몸과 마음을 바쳐 구현해 낸, 모든 순례자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토론토 출신의 산티아고 애호가, 샌드라로 부터 장문의 이 메일을 받았다. 허연 싸리꽃이 온 산을 뒤덮은 어느 이른 아침이 몹시 그립노라고. 여름한철 서드버리 별장에서 식구들과 즐겁게 지내면서, 고생바가지 그때를 그리워하는 마음 이해하고도 남는다.
이번 가을엔 그녀와 브루스 트레일을 걸으며 특별한 하루를 보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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