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한겨레 칼럼 한마당]
현재까지 5만명 가까이 사망자가 나온 튀르키에-시리아 대지진 참사의 여파가 현지 정권들의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23년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가 지배하는 시리아는 지진 피해가 ‘자유 시리아’ 반군 지역에 집중됐다. 아사드는 엄청난 재난을 호기로 판단한 듯 국경을 막고 국제 구호조치도 방해하며 오히려 공습을 단행했다. 피눈물도 없다는 국제사회 비난이 일자 마지못해 외부의 구호물품 반입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평소 눈엣가시로 여겨 온 반군지역의 지진 피해를 내심 반겼음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반정부군 소탕작전이야 잠시 미룰 수도 있으련만 지진 참사를 기다렸다는 등 공세를 벌인 것은 냉혈한인 그의 잔인한 품성을 드러낸다. 오래 전부터 그 땅에 터잡고 살아 온 주민들에겐 지진 참사로 생사의 기로에 섰는데 정부군 공격까지 닥치니 그야말로 이중의 참상과 생지옥에 맞닥뜨린 셈이다. 그들이 무슨 잘못이 있기에 설상가상의 고통을 겪어야 하나. ‘팔자소관’으로 그 땅에 살게 된 것과 악독한 독재자를 만났다는 것 외에 다른 이유란 없었다.
튀르키에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정부는 지진 피해 초기 대처에 늑장을 부렸을 뿐만 아니라 구조작업도 허술해 국민적인 공분을 사고있다. 오는 5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서 이대로 가다가는 정권을 내주게 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그래서 에르도안이 선거를 연기할 것이라는 전망도 한다.
국민들의 분노가 더욱 커진 것은 그가 약속을 어겼을 뿐만 아니라, 부패와 불법을 방관했기 때문이다. 에르도안은 1999년에 있었던 대지진 피해 당시 완벽한 복구와 재발방지를 내세워 압승하고 2003년 정권을 잡았다. 그는 지진세를 도입해 방진시설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거둔 지진세만 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세금만 거두고는 여지껏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고, 심지어 불법 건축물들 철거를 면제 해주는 ‘사면세’까지 챙겨 수많은 불법건축물을 존치시켰다. 그로인해 이번 지진 지역에서만 부실건물 7만5천채 이상이 ‘사면’ 돼 대참사를 빚은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에르도안은 지난 20년 동안 장기 집권하며 야당과 반대자들을 무차별 탄압한 독재자다. 지난 2016년 불발 쿠데타를 전후해 군과 정치 사법 교육 언론 등 구석구석의 반대자 수만명을 색출해 처벌했다. 심지어 미국에 망명해 있는 반정부 인사 귈렌도 송환을 요구하면서 비난하는 등, 강경한 민족주의적 독재정치를 해왔다. 국명을 바꾸고, 이슬람주의 정책을 강화했으며, 군사력을 증강해 그리스 등 주변국들과 마찰도 늘어났다. 나토 회원국임에도 러시아와 군사교류를 확대해 미국과 나토를 곤혹스럽게 했다. 최근에는 쿠르드·반이슬람 시위 등을 빌미로 스웨덴의 나토 가입에 유일하게 제동을 걸어 애를 먹이고 있다. 대지진 구호 중에도 현장소식을 비판적으로 전한 SNS 사용자들을 수사 체포하는 등 무소불위 독재권력을 휘두르는 그가 이번에 진짜 실력과 속내가 드러나면서 정치역정에 최대 위기를 맞은 것이다.
이번 대지진 진앙지에서 가까운 튀르키에 하타이주의 인구 4만2천여 명인 에르진 시는 기적적으로 단 한 명의 사망자나 건물 피해가 없었던 것으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 도시에 지진 피해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알고보니 ‘기적’이 아니라 ‘필연’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시장 외케시 엘마소을루 씨가 불법 건축물은 절대 허용하지 않는 강골 원칙주의자로 확인된 것이다. 그래서 시내 건물과 시설들은 방진 기준을 제대로 갖춘 설계와 시공으로 튼튼하게 건축돼 규모 7.8의 역대급 지진에도 피해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가까운 친척이 부탁해도 들어주지 않는 정직한 소신과 청렴으로 시정을 해오는 바람에 “당신만 정직하냐”라는 힐난과 비난을 듣기도 하며 사람들과 관계가 나빠지고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고 털어 놓았다.
대재앙으로 생사를 넘나든 사람들은 권력에만 취한 독재자의 허언 정치와 정직한 시골 시장의 청렴정치가 가져온 결말에서 지도자의 중요성과 진면목을 새삼 실감했음에 틀림없다.
태어나 살고있는 터전에 닥친 천재지변이야 운명이라고 감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견제없는 독재자의 오만과 권력 오용이 초래한 피해의 가중은 국민들에게 정말 억울하고 화가 치미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민주사회라고 다른가. 권력을 위임한 지도자의 공복으로서의 자세, 국민적 불행을 예방하고 대처하는 능력의 유무와 수준, 그에따른 여파와 불행지수는 고스란히 국민들 몫이다. 그러니 무능하고 무지한 지도자를 둔 국민들은 불행을 안고 사는 셈이어서 언제든 국가적 재난상황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 적극 의지로 선택했든, 속아서 표를 주었든, 아니면 무관심 속에 방관했든, 지도자를 택한 국민 개개인의 판단과 책임에도 귀결되기 때문이다. ‘눈 떠보니 후진국’이라며 탄식이 쏟아지는 한국 사람들 역시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절감하며 절치부심하는 이유 또한 그러하리라.
< 2023. 2. 23자 게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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