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철 목사 / 늘사랑교회 담임목사
대화 전문 인공 지능 챗(Chat)GPT에 대한 관심과 반응이 과히 폭발적이다. GPT는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r’를 뜻하는 말로, 챗GPT는‘딥 러닝’(인간의 두뇌처럼 작동하도록 만들어진 인공 신경망이 대량의 자료와 정보를 학습하는 과정)을 활용한 인공지능(AI)이다. 단순히 말해, 챗GPT는 사람처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챗GPT가 경이로운 것은 사람이 쓴 것인지 기계가 쓴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글을 잘 쓰는 탁월한 언어 능력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1월 25일에 미국 하원의원인 제이크 오친클로스는 챗GPT가 작성한 연설문으로 의회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에 공동으로 인공지능 연구센터를 설치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오친클로스 의원이 자신의 연설문을 챗GPT가 작성하였다는 것을 밝히기 전에는 아무도 그것을 알아챈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마치 사람이 쓴 것같은 완벽한 (어쩌면 사람보다 더 뛰어난) 문장을 만들어 내는 챗GPT의 탁월한 언어 능력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서 반향과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가장 먼저 논란이 일어난 분야는 교육 분야이다. 챗GPT를 통해 학교 과제와 논문 등을 작성하는 학생들이 늘어나자 교육계에서는 챗GPT의 사용을 두고 찬반 논란이 과열되고 있다. 왜냐하면 챗GPT는 학교 과제와 논문 뿐만 아니라 시험에도 부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챗GPT가 미국에서 의사, 변호사, 회계사 시험을 치른 결과 모두 통과하였다. 그러므로 엄청난 정보와 지식을 가진 초거대 인공지능인 챗GPT가 만약 악한 사람들에 의해 악한 목적으로 사용된다면 엄청난 해악을 끼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챗GPT의 오용과 윤리 문제는 기독교계 안에서도 실제적인 논쟁과 이슈가 되고 있다. 이미 여러 목회자들이 챗GPT를 이용하여 내용적으로 아주 훌륭하고 논리적으로 흠이 없는 설교문을 짧게는 몇 십초 안에 길게는 몇 분 안에 만들어 내는 작업들을 공개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지금 기독교계 안에서 “챗GPT를 목회와 신학에 활용할 수 있는가?”하는 논쟁들이 불붙기 시작하고 있다.
과거 인터넷이 등장하였을 때처럼 인공지능 챗GPT 역시 목회와 신학교육에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챗GPT가 끝없이 발전하여 인공지능이 인류지능을 넘어서는 기점(singularity)에 도달할지라도 하나님의 영을 앞설 수는 없다. 챗GPT가 아무리 신학적으로 심오한 설교문과 심미적으로 아름다운 기도문을 작성할지라도 그것을 로봇이 썼다는 사실은 결코 변화지 않는다. 기도해본 적도 없고, 성령을 체험해 본적도 없는 기계가 쓴 설교문이 참된 설교가 될 수 있을까? 설교자가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설교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영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기도없이 준비한 설교는 영성이 없는 껍데기일 뿐이다. 하나님과의 깊은 영적 교제를 통해 성령의 영감을 받은 설교가 사람의 영을 움직이고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챗GPT에게 적절한 주제와 조건 값을 입력해서 만들어낸 기계적이고 기능적인 설교문을 통해 과연 영적 은혜가 임할수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이라고 믿는다. 챗GPT가 시간 절약을 해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적 설교자에게서 나오는 예언자적 통찰력이나 창조적 영성 등은 결코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의 문제를 챗GPT에게 맡긴다면 챗GPT가 우리의 우상이 될 것이다.
바벨탑처럼 점점 더 높이 올라가고 있는 과학 기술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가져올 파장과 혼란은 미리 대처해야 한다. 그러므로 챗GPT의 오용과 악용의 문제, 정보의 오류 문제, 그리고 윤리와 도덕 문제 등을 올바르게 인식하면서 우리의 영성이 약화되지 않고 더욱 강해지도록 힘써야 한다. 기계와 기술에 의지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준비하고 선포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점점 더 과학 기술이 우리들의 우상이 되어가고 있는 이 시대에 설교자들은 하나님의 영과 진리에 영감받은 설교를 준비하고 선포하기 위해 더욱더 기도에 힘써야 한다. < 시사 한겨레 230223 게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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