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인 칼럼] 정적 제거의 흑역사

● 칼럼 2023. 2. 28. 00:27 Posted by 시사한매니져

[편집인 칼럼- 한마당]

영국작가 조지 오웰이 쓴 유명한 디스토피아 소설 ‘1984년’은 소련의 스탈린 공포정치 시대를 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탈린의 공산 독재와 나치, 파시즘을 비판한 이 소설 속의 빅 브라더가 바로 스탈린이고 임마누엘 골드슈타인은 트로츠키를 모델로 했다는 것이다.

스탈린 독재치하 소련인들은 비밀경찰의 감시하에 살았다. 혐의자 한 명이 체포되면 그 주변인들이 줄줄이 끌려가 고문과 살해를 당했다. 친구나 친지도 의심하며 상호 고발이 장려됐다. 부부, 연인이 증오로 변하고, 상대방 고발 전에 먼저 고발해야 목숨을 부지했기에 의도적인 무고도 횡행했다. 냉혈한 스탈린의 반대파 숙청은 간첩·모반죄를 씌우면 그만이었다. 트로츠키를 내쫓고 삼두체제를 구성했던 혁명동지 카메네프와 지노비예프를 연루자 160명과 함께 처형했다. 당시 비밀경찰 수장 겐리흐 야고다의 손을 빌려 25만명의 당원을 내쫓거나 처벌했는데, 그가 불안해하자 총살시키고 니콜라이 예조프를 앉혀 대숙청을 벌였다. 예조프도 스탈린의 사냥개가 되어 날뛰었지만, 역시 총살당해 팽(烹) 신세를 면치 못했다. 1937~1938년 대숙청 기간에만 100만명 안팎이 처형됐다고 한다. 하루평균 1500명을 총살했다니 스탈린은 ‘인간 백정’소리를 들으며 피로 지탱한 권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한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도 빼놓을 수 없다. 총리 취임 이후 6개월 만에 전권을 쥔 그는 자신의 경호조직인 SA(Sturmabteilung:돌격대)가 세력이 커지자 게쉬타포와 군대를 동원해 ‘장검의 밤’(Night of the Long Knives) 사건을 일으켰다. SA 대장 에른스트 룀과 그의 부관 하이네스 등을 처형하고, ‘떡 본 김에 제사’격으로 최대 정적 폰 슐라이허 전 총리와 반대파 클라우제너, 나치당내 거물 슈트라서, 자신의 반란 미수 사건인 ‘뮌헨 폭동’을 진압했던 폰 카르도 등을 일거에 제거한다.

 

중국의 정적 제거 고사는 셀 수가 없다.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왕 구천(句踐)이 천하의 패권을 차지한 뒤 가장 큰 공을 세운 범려를 상장군, 문종을 승상으로 임명하지만, 범려는 “고난은 함께 할 수 있으나 영화를 함께 할 수 없는 인물”이라며 구천을 떠난다. 그는 문종에게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고,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蜚鳥盡良弓藏 狡兔死走狗烹)"는 편지를 보내 피신하라 충고했지만, 문종은 주저하다가 반역의 의심을 받아 자결하고 만다. 원조 ‘토사구팽’(兎死狗烹)의 연원이다. 명장 한신이 유방을 도와 전국을 통일하고 황제에 오르게 하지만 반역을 염려한 유방에게 참수당하고 삼족 멸문지화를 입는 비운의 고사도 유명하다.

 

원래 정적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 독재권력의 속성이다. 왕조시대 전권을 휘두른 군왕들 조차 비판적인 신하와 반대파, 공신들까지 가차없이 제거하고 숙청을 일삼았다. 이는 정적의 쓴소리를 듣기 싫어하고 권력에 도전하는 불안요소로 여긴 포용력의 한계와 추종자들간의 다툼, 이간질에 기인한 바가 컸다.

한국사에도 여러 사화를 비롯해 사례(史例)는 부지기수다. 조선 초 벌어진 정적 제거전은 어지럽고도 잔혹한 피의 난무였다. 태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지지했던 정몽주는 이성계의 아들 태종 이방원에게 암살당했다.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이복동생들과 개국공신 정도전 등을 살해한다. 1차 왕자의 난에 방원과 합세했던 형 방간은 2차 왕자의 난으로 방원을 죽이려다 패해 유배조치를 당했다. 역성혁명의 주역인 태조가 피튀긴 권력쟁탈에 얼마나 상심했으면 왕위를 던지고 함흥으로 떠나버렸을까. 그후 세조가 사육신을 필두로 수백명을 학살하고 단종을 죽인 사실도 널리 회자된다.

근현대에 들어 이승만이 김구 암살을 사주한 사실, 조봉암을 사법살인한 것도 독재권력의 잔인한 만행이었다. 박정희와 전두환이 야권의 거두 김대중을, 이명박이 노무현을 죽이려고 안달했던 사실은 국민들 뇌리에 새겨져 있다.

북한 세습정권도 반대파 숙청의 많은 기록들이 있다. 김일성 시절 남로당의 거물 박헌영과 이승엽 등 13명을 간첩과 정권 전복음모 등 혐의로 처형한 사건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김정은 정권 초기 실세였던 고모부 장성택과 그 일파를 처형한 사건도 정적을 두고보지 못하는 독재권력의 속성 그대로다.

 

나중에 자업자득의 비참한 말로로 귀결되기 일쑤지만, 전제군주나 독재자들이 정적 말살을 꾀하는 것은 정통성이 결여된 무소불위 권력의 취약과 불안감에 위기와 도전이 두렵기 때문이다. 서로 비판하고 견제하며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근간으로 하는 민주정치 하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다수 제1야당을 국정의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것도 모자라, 야당대표를 범죄자로 간주한 검찰권의 총동원 수사가 끝도없이 이어지고 있다. 바로 ‘검찰독재’의 실증일 뿐만 아니라. 명백한 정적제거 공작이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며 엄청난 국력 낭비가 아닐 수 없다.